3시간 40분 전 정확히 예측한 운명...최초 신고자는 알고 있었다

신진 기자 2025. 10. 29.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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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3주기-그 골목, 3개의 시선]
① 누군가 이미 말했다
- 112 최초 신고자


〈사진=JTBC〉

〈편집자 주〉 호수에 조약돌 하나 던진다 생각해 봅시다. 동심원 모양 파문이 퍼져나갑니다. 참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접 연관된 사람 수는 시작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고통과 슬픔은 번져 나갑니다. 운명은 구성원 모두를 조금씩 건드립니다. 결국 사망ㆍ생존자로 집계되는 숫자 범위를 아득히 넘어섭니다. 3년 전 이태원 골목에서도 우연과 필연은 뒤섞였습니다. 막을 수 있었고, 숨 쉴 수 없었고, 살 수 있었고, 빠져나가지 못했습니다. 그 날, 그 골목을 통과한 사람들의 시선을 쫓아가 봅니다. 챕터를 3개로 나눴습니다. 1장 :〈누군가 이미 말했다〉 우연히 운명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먼저 전합니다.

예언이 된 전화


단발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50대 여성 김씨. 중학생 여자 아이를 둔 엄마였다. 이태원에 담긴 세간의 편견을 걷어내지 않는다면, 그곳과 어울리지 않을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 여성은 150여 명이 숨지기 3시간 40분 전 운명의 신호를 정확히 읽었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참사의 전개 상황을 예측했다.

2022년 10월 29일 저녁 6시 34분. 김씨는 서울 용산 이태원 해밀턴 호텔 앞에서 112에 전화를 걸었다. 압사 사고가 어디서 발생할지, 어떤 형태로 전개될지,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1분 43초 동안 막힘없이 전달했다. 호소였지만 예언이 되어버렸다. 김 씨는 온 힘을 다해 묘사하고 소리쳤지만 그 날, 그곳에서 사람이 죽었다. 지난 20일, 3년 만에 그때 일을 다시 꺼냈다.

〈사진=JTBC〉


그 여자네 집



이태원동 110-10번지. 지금은 세계음식문화거리로 불리는 골목 끝에 김 씨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 있었다. 마당이 있는 2층 양옥이었다. 아홉 살부터 20년을 살았다. 마당에는 그네가 있었다. 자주 타고 자주 웃었다. 그 집에서 터울 많은 남동생이 태어난 날도 아직 기억난다. 동네 어른들이 괜시리 집을 들락날락했다.

결혼해 다른 지역에서 살게 됐지만 이번엔 이태원이 생업터가 되었다. 20년 살던 집 근처에 가게를 열었다. "그러는 사이 골목 모습이 바뀌어 가더라고요". 가정집 늘어섰던 골목엔 술집과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그 변화가 나쁘지 않았다. 청년들이 모였고 그걸 보는 게 기분 좋았다.

"젊은이들이 내뿜는 에너지가 예쁘잖아요."


고향에서 열린 축제



그래서 3년 전 그 날, 중학교 2학년 딸을 데리고 이태원에 간 건 새삼스럽지 않았다. 사람 많아 가기 싫다는 남편도 설득했다. “그런 에너지를 느껴야 젊어지지.” 아내는 눈을 흘겼고 남편은 따랐다.

“경찰 200명을 배치한다는 기사를 보여줬어요. 더 사람 많은 불꽃 축제도 가는데 여기라고 위험하겠어요?”

내가 잘 아는 동네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맛집도 가고 즐겨 봐요.”

오후 5시 30분 쯤. 세 가족이 이태원에 도착했다. 아직 하늘빛이 푸르스름했다.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기엔 한참 남은 시각이었다.

“그 시간에 아이들 데리고 온 가족들이 많았어요. 이태원 핼러윈은 다른 축제보다 훨씬 재미있거든요.”

다들 들떴고, 공기는 편안했다. “몇 개월 전부터 의상을 준비하잖아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옷들도 많아요.” 그런 발랄함, 다양성,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김씨가 참사 당일 오후 5시 50분 촬영한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 골목 모습.

조금씩 공기 흐름이 달라졌다. 위화감. 김 씨는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오후 5시 50분 쯤, 사람이 많다. 간격은 50cm도 안 될 정도로 붐볐다.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태원이잖아!”

김 씨와 남편은 아이를 가운데 두고 보호하며 걸었다. 위화감은 조금씩 실체가 됐다. 해밀턴 호텔 골목으로 가까워질수록 압력이 올라갔다.

“어느 시점에서 위험이 딱 감지됐어요. 누구 하나 넘어지면 무너지겠다, 이건 아니다.”

뒤를 봤다. “뒤에도 사람이 너무 많아요. 뒤로도 못 가요.” 공포감이 들기 시작했다.

넘어지면 끝이라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어요. 뒤부터 사람들이 쌓일 테니까요.

숨쉬기 힘들어졌다. 김 씨는 옆으로 아이에게 공간을 만들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이가 오히려 멀어지기 시작했어요. 정확히 말하면 낀 채 떠밀려가는 느낌이었어요.”

이제 김 씨는 멀어지는 아이의 머리와 어깨를 바라보며 완전히 공포에 질렸다.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딸을 찾아야 했다.

“저는 이 동네를 잘 알잖아요. 호텔에 뒷문이 있고, 호텔 내부를 통하면 큰길로 나갈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밀고 밀리던 세 가족, 우여곡절 끝에 해밀턴 호텔 앞에서 다시 만났다.

모든 게 운이었다. 그나마 김 씨는 지름길을 알았고, 겁에 질린 중2 딸을 보고 시민들은 “여기 아이가 있다”고 소리치며 길을 터줬다. 시계를 보니 저녁 6시 34분. 평소 30초 걸리는 내리막길, 30분이 걸렸다.

“이 시간에 이러면 앞으로는 어떡하지? 7시, 8시, 9시엔 물이 점점 고여 들어오듯 인파가 폭발할 텐데......” 소름이 끼쳤다. “누구 하나 걷다가 넘어지거나, 물건 떨어뜨려 주우려 한다면?” 경우의 수는 많다.

김 씨는 112에 전화를 걸었다.

〈112 최초 신고 녹취록 전문〉

-긴급신고 112입니다
=여기 이태원 메인 스트리트 들어가는 길인데요

-이태원 메인스트리트요.
=클럽 가는 길 해밀톤 호텔 그 골목에 이마트24 있잖아요.

-해밀톤 호텔 골목에 있는 이마트24요.
=네. 그 골목에 지금 사람들이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거든요. 사람이 내려 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 당할 거 같아요. 겨우 빠져나왔는데요. 인파 너무 많은데, 통제 좀 해 주셔야 될 거 같은데요.

-사람들이 교행이 잘 안되고 압사가, 밀려서 넘어지고 그러면 큰 사고 날거 같다는 거죠?
=네. 지금 너무 소름끼쳐요. 올라가는 곳이 굉장히 좁은 골목인데, 이태원 역에서 내리는 인구가 다 올라오는데. 거기서 빠져나오는 인구와 섞이고, 그 다음에 클럽에 줄 서있는 그 줄하고 섞여 있거든요. 올라오는 인구를 막고.

-클럽에 서 있는 줄하고, 서 있는 인파하고, 줄 서 있는 인파하고.
=네 그 다음에 그 메인스트리트에서 나오는 인구하고
그 다음에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사람들이 다 나와서 그 골목으로 다 들어가요.

-이태원역에서 나오는 사람들, 이태원역에서 빠져나가는. 그쪽에서 골목에서 빠져나가는 사람들 인파 섞여서
=네 지금 아무도 통제 안해요. 이거 경찰이 좀 서서 통제해서 인구를 좀 뺀 다음에
그 다음에 안으로 들어오게 해줘야죠. 나오지도 못하는데 지금 사람들이 막 쏟아져서 다니고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경찰관이 출동해서 확인해 볼게요.
=애들도...... 네.

가족은 이태원을 벗어났다. “왜 경찰이 안 막고 있는 거야? 왜 기동대가 없는 거지?” 택시 타고 돌아가는 길. 김 씨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런데 시야에 뭔가 들어왔다. 형광 옷 입은 대원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대통령실 있는 삼각지역 근처에 경찰 기동대가 몰려 있는 거예요. 이태원에선 그렇게 기다려도 오지 않았는데…….

대통령실 인근 집회 현장에 기동대 인력이 집중되었다는 건 2025년 현재 사실로 확인됐다. 서울 시내 전체 기동대에 경기도 일부 경력이 지원 나왔다. 이태원을 지킨 건 파출소 직원 20여 명이었다. 10만 명 넘는 인파 앞에서 파출소 대원들은 무력했다.
2022년 촬영된 용산 대통령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당선 열흘 뒤인 2022년 3월 20일,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 계획을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엄마, 이태원에서 사고 났어. 사람 죽었대." 딸이 내민 인스타그램 속 장면은 거짓말 같았다. 김 씨는 믿지 않았다. 사람은 쏟아진 성냥개비처럼 뒤섞였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는 거 아니야. 가짜뉴스야. 다칠 수는 있겠지. 다치고도 남았지."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불안했고 혼란스러웠다. TV를 켜 보니 현실 감각이 사라졌다. 50명, 80명, 120명……. “사망자가 늘어갔어요. 오보이길 바라지만 아니었어요.” 그 날 밤부터 김 씨는 악몽을 꾼다.

"통제가 안 됐어요. 설거지 하다가, 밥 먹다가…. 일상 생활을 하다가 순간 그 일이 떠올라요. 머릿속에 탁 치고 들어오면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화가 나고 무기력했다. 참사의 전개 상황을 정확히 예견했기 때문에 더 속이 탔다. “내가 좀 더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위치였다면…….”

〈사진=JTBC 보도 캡처〉


"범인은 따로 있어요"



매일 뉴스를 챙겨 봤다. 기동대를 안 보낸 사람들은 무사했고 현장 대원들은 수사를 받았다. 사람 살린 사람은 책임을 떠안고, 기동대 안 보낸 사람들은 무사했다. 무사한 정도가 아니라 떳떳했고, 단죄를 말했다.

“현직 경찰과 소방관이 기소된 걸 봤어요. 범인은 따로 있어요. 기동대 안 보낸 사람이에요.”

상담을 받고 약을 먹었다. 느닷없이 눈물 쏟는 일은 줄었다. “그래도 그 일 있기 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할 거 같아요.” 아직 화가 나서다.

현장 담당자들은 기소되고 재판 받는데 장관, 총리……. 시스템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사과도 안 했잖아요.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지만, 현장 대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당신들 잘못이 아닙니다”

그 순간, 목을 가다듬고 어깨를 바로 폈다. 선하게 처진 눈매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 골목에서 살아 나오지 못한 젊은이들에게도 매일 속으로 말한다.

"내 딸이 내려올 때 도와줬었지? 놀러 나온 건 잘못이 아니야. 그 골목을 방치한 높은 사람들 잘못이야.“

아무도 죽어선 안됐다. 이 여성은 한순간, 150여 명을 살릴 뻔했다. 운명은 거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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