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태원, 제주항공…참사 유족 두 번 울리는 ‘혐오’

최환석 기자 2025. 10.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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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커뮤니티·김미나 창원시의원 ‘막말’ 판박이
사회적 참사 겨냥한 ‘익명’ 혐오가 공론장까지 번져
전문가들 “사회적 재난” 경고에도 정치권은 손 놔
28일 서울 종로구 별들의집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외국인 유가족 기자간담회에서 노르웨이인 희생자 고 스티네 로아크밤 에벤센 씨의 아버지인 에릭 에벤센 씨가 발언을 마친 뒤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10.29 이태원 참사' 합동감사 결과를 지난 23일 발표하며 3년 전 그날 '국가 부재'를 되짚었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은 다른 온도였다.

"뭐 사람들은 꾸역꾸역 모이고 지들이 사고 치면 국가 탓하는 게 헬반도(지옥과 같은 한국이라는 뜻) 기본 옵션이라서요. 남 탓의 민족."

참사 원인을 오롯이 개인 책임으로 떠넘겼다. '혐오'와 '갈라치기' 정서가 짙은 댓글도 차고 넘쳤다. '시체팔이'라는 표현이 아무런 제재 없이 게시되고 있었다. 익명 공간 속 혐오는 일상처럼 자연스러웠다.

참사를 먹이로 몸집 불리는 '혐오'

온라인에서 뿌리를 뻗는 혐오는 비극적 참사를 먹이 삼아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최근 창원지방법원 형사2단독 정지은 부장판사는 절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사회봉사 80시간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연인의 목걸이 등 1300여만 원어치 재물을 훔친 혐의와 함께 '모욕'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모욕하던 '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지난해 12월 179명 목숨을 앗아간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 유족을 언급하며 이렇게 썼다. "보상금 받을 생각에 속으로는 싱글벙글일 듯."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2024년 12월 29일 무안 제주항공 참사…. 혐오는 대상만 바꿔가며 끝없이 참사 희생자와 살아남은 이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혐오는 이제 얼굴을 드러내고 벌어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발생 한 달도 지나지 않은 2022년 11월 '공인' 김미나(국민의힘·비례) 창원시의원은 누리소통망(SNS)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 사진을 게시하고 "자식 팔아 한몫 챙기자는 수작으로 보인다"는 글을 썼다. 그는 그해 12월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꽃같이 젊디 젊은 나이에 하늘로 간 영혼들을 두번 죽이는 유족들", "우려먹기 장인들", "자식 팔아 장사한단 소리 나온다", "제2의 세월호냐", "나라 구하다 죽었냐".

김 의원 발언은 명백한 '2차 가해'로 정의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인 정미라 씨는 김 의원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참사 직후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유족을 향한 말은 칼날로 돌아와 씻을 수 없는 아픔이었다"며 "공직자 책임을 망각하고 혐오를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이태원 참사 유족을 대신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한 김형일(법무법인 믿음) 변호사는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시체팔이' 같은 혐오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정말 끔찍한 현실"이라며 "희생자와 유족 인상이 혐오로 고스란히 고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벌해야 혐오에 동조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행위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며 사법부 판결에 '경고' 의미가 제대로 담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참사 현장의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이 적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혐오 부추기는 사회

전문가들은 이런 혐오가 벌어지는 현상을 일부 일탈이 아닌 '사회적 재난' 수준까지 치달았다고 진단한다. 이태원 압사 사고를 주제로 연구한 재난 분야 구창민 박사는 "재난이나 참사 이후 온라인 공간에서 무분별하게 확산하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 '섣부른 추측', '책임 전가성 발언'이 특히 우려스러운 수준"이라며 "명백한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구 박사는 "정신적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잊히는 슬픔이 아니라 사건 이후 지속되고 작은 자극에도 과거 고통이 재현될 수 있다"며 "온·오프라인 속 무심한 말 한마디나 비난 섞인 댓글은 당사자에게 끔찍한 기억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고립됐다는 절망감을 안기는 기폭제"라고 경고했다.

2007년부터 2021년까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나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법안이 12차례 발의됐지만 대부분 임기 만료로 폐기되거나 철회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 '국제 혐오표현 반대의 날'을 맞아 정치권에 혐오 표현 대응까지 당부했다. 정치권이 손을 놓은 동안 혐오는 들불처럼 번지고 말았다.

장상환 경상국립대 명예교수는 "국회에 표류 중인 생명안전기본법을 신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법안은 사회적 재난 발생 때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를 규명할 독립된 위원회 구성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 교수는 "참사 상황에서 피해 조사, 유가족 보상, 참사 유발자 처벌 등이 신속하게 처리돼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유가족이 도리어 모욕을 당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환석·안지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