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GDP 대비 부채, 5년 내로 ‘재정 문제아’ 이탈리아·그리스 추월... IMF, 나랏빚 폭증 경고
트럼프 감세·지출 확대에 이자 비용, 국방비 넘어서
“재정 위기 임박...4~5년 내 한계 봉착”
국제통화기금(IMF)이 27일(현지시각) 미국 국가 부채가 ‘재정 문제아’로 꼽히던 이탈리아, 그리스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교롭게도 이 경고는 미국 정치권이 예산안 합의에 실패해 연방정부 업무가 마비되는 ‘셧다운’ 사태 중에 나왔다. 미국에서는 다음달 1일부터 4200만 명에게 제공하던 저소득층 식량 지원(SNAP) 프로그램이 셧다운을 이유로 다음 달 1일부터 중단될 예정이다. ‘이론적 위기’로 여겨지던 부채 문제가 미국 사회를 직접 타격하는 ‘현실적 공포’로 나타났다는 평가다.

27일 IMF는 최근 전망에서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2030년 143.4%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125% 수준(2025년 회계연도 기준)에서 5년 만에 20%포인트 가까이 급증한다는 예측이다. 같은 기간 이탈리아 부채 비율은 137%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는 146%에서 130%로 하락할 전망이다.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2010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몰렸던 유럽의 재정 문제아다. 미국 국가 부채 비율이 이들 국가를 넘어서는 건 1946년 2차 대전 직후,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막대한 규모 국채를 찍어낸 후 처음이다.
미국 국가 부채는 이미 이달 기준 38조 달러(약 5경 3000조 원)를 넘어섰다. 2025 회계연도 재정 적자만 1조 8000억 달러(약 2500조 원)에 달한다. IMF는 미국이 2030년까지 매년 GDP 7%가 넘는 재정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단순히 빚 규모만 문제가 아니다. 빚이 늘면서 이자 비용도 폭발적으로 뛰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연방 정부 부채 평균 이자율은 2022년 1월 1.556%에서 올해 9월 3.36%로 두 배 이상 급등했다. 지난달 금리 기준 미국 정부가 매년 이자로 지출하는 비용은 1조 2160억 달러(약 1700조 원)에 달한다. 미국 전체 연방 지출 17%를 차지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이자 비용은 이미 국방 예산(8500억 달러)을 한참 넘어섰다.
더 큰 공포는 2030년 이후로도 좀처럼 국가 부채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 의회예산국(CBO) 장기 전망을 분석한 미국 재정책임위원회(CRFB)는 미국 국가 부채가 2055년 GDP 156%에 이를 것으로 봤다. 2030년 143%에서 25년 만에 13%포인트 더 악화한다는 뜻이다. 특히 2045년부터는 부채 이자율이 경제 성장률을 넘어서는 ‘부채 스파이럴(Debt Spiral)’이 시작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빚이 빚을 낳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집권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부채 증가에 무책임하게 대응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여름 의회를 통과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을 통해 대규모 지출을 승인했다. 이 법안은 2017년 도입한 공화당 감세안을 연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미 의회예산국은 이 법안이 향후 10년간 3조 4000억 달러(약 4700조 원) 규모 적자를 추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에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예산을 늘려 대규모 추방 작전 자금을 대고, 1조 달러 규모로 ‘골든 돔’ 방어막을 구축하는 등 국방비 지출이 늘어난 점도 부채 급증 원인으로 지목됐다.
조 개그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민주당은 지출 삭감을 원치 않고, 공화당은 증세를 원치 않는다”며 정치권 교착 상태를 꼬집었다. 현재 진행 중인 셧다운 사태가 이 교착 상태가 낳은 파국적인 결과물이다. 세계적 투자자 레이 달리오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CHIPS Act)에 대해 “필요한 수준을 넘어 돈을 지나치게 푼 무책임하고 과한 조치”였다고 비판했다.

세계적인 석학들은 일제히 경고음을 냈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경고했던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지금까지 미국 재정 위기를 경고한 적 없지만, 이젠 아니다”라며 입장을 바꿨다. 그는 “향후 4~5년 안에 미국이 부채를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은 기축통화국 지위 덕에 유럽 국가보다 차입 능력이 월등하다. 하지만 재정 건전화 노력으로 신용 등급이 오르는 이탈리아와 달리, 미국이 정반대 길을 간다는 상징성은 무시할 수 없다. 제임스 나이틀리 ING 수석 국제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정치인과 투자자들이 유럽을 무시하곤 했지만, 이런 지표가 나오면 대화가 달라진다”고 했다.
부채 위기는 달러 패권과 직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 인하를 위해 연방준비제도(연준)를 공개 압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미국이 이란·러시아 등에 강도 높은 금융 제재를 가할 수록 중국 같은 나라들이 달러 의존도를 지금보다 더 줄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업자 레이 달리오는 현재 상황을 “미국의 경제적 심장마비(economic heart attack)”에 비유하며 미국이 거대한 ‘부채 사이클’ 끝자락에 섰다고 진단했다. 달러화가 과거 네덜란드 길더화나 영국 파운드화와 대영제국이 쇠퇴했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미국이 (달러를 찍어낼 수 있어) 파산할 가능성은 낮지만, 가치가 떨어진 달러로 빚을 갚게 될 것”이라며 사실상 구매력 상실을 예고했다. 피터 G. 피터슨 재단은 “미국 신용등급이 세 차례 강등된 것은 리더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한다”며 “경로를 바꾸지 않으면 기축통화 지위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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