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공항에서 춤 추고, 리무진 태우고… 美 트럼프, 中 시진핑 앞마당서 동남아에 ‘파격 구애’

유진우 기자 2025. 10. 2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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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중국 전선’ 넓히는 트럼프
美 현직 대통령, 아세안 회의 8년 만에 등장
“美, 中 대신할 희토류 공급망 확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 2017년 이후 8년 만에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다자회의에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27일 일본 도쿄에서 사나에 다카이치 신임 총리와 회담하고, 29일 한국으로 날아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APEC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이재명 대통령과 연쇄 양자 회담이 예정돼 있다. 심지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깜짝 회동까지 타진하는 강도높은 일정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이던 2023년과 2024년, 미국은 정상회의에 대통령 대신 부통령을 보내며 ‘아세안 패싱(건너뛰기)’ 논란을 빚었다. 올해 트럼프 대통령이 없는 시간을 쪼개 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아세안 정상회의에 전격 참석한 배경에는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 구상에서 아세안 중요도가 그만큼 커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10월 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47차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도착해 환영식에서 공연자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가디언과 싱가포르 CNA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방문에서 특유의 ‘쇼맨십’을 십분 발휘했다고 평했다. 26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그는 환영 공연단 음악에 맞춰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와 함께 어깨를 으쓱하며 춤을 췄다. 23시간 장거리 비행 직후였지만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주요 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준 격의 없는 첫인상을 주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세안 리더들을 “천재(genius)” , “놀라운 지도자(spectacular leaders)” , “손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한다”고 극찬했다. 과거 아세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던 ‘위협적’ 태도에서 ‘협력적’ 태도로 급선회했다. 아세안을 대하는 미국의 전략적 시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안와르 총리를 대통령 전용 리무진 ‘더 비스트(The Beast)’에 태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에도 엄격한 경호 프로토콜을 깨고 외국 정상을 자기 차에 동승시키며 친밀감을 과시했다. 두 정상은 단순히 공항에서 행사장까지 이동하는 데 그치지 않고, 리무진 안에서 ‘1대1’ 독대 시간을 가졌다. 태국 매체 PBS는 “두 정상이 차 안에서 가자지구 평화 문제 등 다양한 글로벌 이슈를 논의했다”고 전했다. 리무진이라는 상징적 공간에서 사실상 비공개 양자 회담을 진행한 셈이다. 안와르 총리는 “규칙을 깨도 괜찮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호) 규칙을 깨서 기쁘다고 했다”며 “유쾌한 경험”이라고 화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더 비스트로 불리는 공식 차량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 /연합뉴스

두 정상은 리무진에서 친분을 쌓은 후 곧 격의 없는 농담으로 관계를 과시했다. 안와르 총리가 태국-캄보디아 평화 서명식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나는 감옥에 있었고, 당신은 거의 갈 뻔했다(you almost got there)”고 말하자 장내는 곧 웃음바다가 됐다. 과거 부패 혐의 등으로 수감됐던 자신과 2024년 ‘성추문 입막음’ 등 34개 중범죄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 처지를 빗댄 다소 과격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트럼프 방문 내내 분위기가 허물없고(chummy), 축하하며, 협력적이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박 2일 일정 중에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 분쟁 종식을 위한 ‘쿠알라룸푸르 평화 협정’ 서명식을 주재했다. 이 분쟁은 11세기 고대 사원 ‘프레아 비히어’ 영유권을 두고 100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아세안 지역에서 가장 해묵은 갈등이다.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사원을 캄보디아 영토로 판결했지만, 주변 영토 분쟁이 계속됐다. 지난 7월에는 양국 충돌로 40명 이상이 숨지고 30만 명이 피난하는 최악 사태로 번졌다. 일각에선 이번 서명식을 노벨상을 위한 포석으로 평가했지만, 현지 전문가들은 아세안에서 가장 뿌리 깊게 적대의식이 박힌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에 본보기로 평화를 중재해 역내 동반자 의식을 강화했다고 전했다. 백악관 역시 “역사적 평화 합의”라고 자평했다. 태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로 가는 길(pathway to peace)’을 열었다고 표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10월 26일 일요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47차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에 참석해 말레이시아의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왼쪽)와 함께 태국의 아누틴 찬위라쿨 총리(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캄보디아의 훈 마넷 총리(오른쪽) 간의 휴전 협정 서명을 감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순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핵심 광물’ 공급망을 챙겼다. 중국이 희토류 등 전략 자원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미국은 공급망 다변화가 절실했다. 말레이시아에는 호주 기업 라이너스가 운영하는 중국 외 세계 최대 규모 희토류 가공 시설이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트럼프 순방을 계기로 말레이시아가 미국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었다”며 “핵심 광물·희토류 부문 개발을 가속하며, 희토류 자석 판매를 제한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태국과도 핵심 광물 거래에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대급부로 아세안 국가에 관세 부담을 덜어줬다. 미국은 지난 8월 말레이시아 수출품에 19%라는 높은 상호 관세를 부과했다. 스트레이츠 타임스에 따르면 이번 합의로 말레이시아는 반도체, 의약품 등 미국 수출 주력 상품에 ‘제로(0) 등급’ 관세를 확보했다. 미국은 핵심 광물 접근권을 얻고, 말레이시아는 관세 장벽을 낮춘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 외에도 미국은 캄보디아와 무역 협정, 베트남·태국과 무역 프레임워크에 합의했다.

2025년 10월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28차 ASEAN+3 정상회의 참석자들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세안은 7억 명에 가까운 인구를 보유하고, 미국 수출을 통해 60만 개가 넘는 미국 내 일자리를 뒷받침하는 거대 시장이다. 하지만 최근 경제 성과는 부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MSCI 아세안 지수는 올들어 10% 상승에 그쳤다. 다른 신흥시장(Emerging Market) 전체 지수 29% 상승률에 크게 뒤처졌다. 지난 12개월 가운데 11개월 동안은 투자금이 순유출됐다. 이달 들어 빠져나간 자금만 9억 달러에 달한다.

BBC는 “이빨 빠졌다(toothless)는 비판을 받아온 아세안이 이번 방문으로 가장 큰 주목(moment in the sun)을 받았다”며 “여러 결점에도 아세안이 여전히 소중히 여겨질 여지가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명분(평화 중재)’과 ‘실리(핵심 광물)’를, 아세안은 ‘위상(대통령 참석)’을 나눠 가졌다는 분석이다. 로런스 웡 싱가포르 총리는 “동남아시아 평화와 안정, 번영에 미국은 계속 필수적” 이라며 “미국의 지속적인 행동과 리더십이 동남아를 번영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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