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다카이치 총리의 삶과 생각

최미화 기자 2025. 10. 28. 07:0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용수 한일문화관광연구소 대표
오용수 한일문화관광연구소 대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는 1961년 나라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샐러리맨, 어머니는 경찰관이었다. 나라에서 고교를 마칠 무렵, 부모는 2년제 단기대학을 졸업해서 지역 기업인 긴테쓰 전철이나 은행에서 일하다 결혼하길 바랐다. 그러나 큰 곳에서 꿈을 키워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네 뜻대로 하려면 학비 지원은 없다는 말에도 개의치 않고 도쿄 게이오대학, 고베대학 등에 합격했다.

먼저 게이오대 입학금은 납부했으나, 아르바이트로 학비, 생활비를 벌며 공부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고베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때는 오토바이도 타고, 헤비메탈 밴드부에서 드럼을 치며 자유롭게 학창생활을 보냈다.

4학년 때 취업을 알아보다 일본 정치, 경영 엘리트 양성기관인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経塾)을 알게 되어 시험을 보았다. 면접위원 자리에 경영의 신이라 불리던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을 보는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어 제대로 답변을 못했는데도 합격했다. 2년 차인 1985년 강연회에서, 마쓰시타 회장으로부터 일본경제가 최성기였던 당시, 5년 후인 1990년부터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정치에 입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1987년 마쓰시타 정경숙과 관계있는 미국 연방의회 펠로우(Congress fellow)로 파견되어 민주당 하원의원 퍼트리샤 슈로더 사무소에서 조사, 분석을 담당하였다. 1989년 귀국하여 고베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경제 단기대학 교원 생활과 함께 TV 아사히의 뉴스 캐스터로 활동했고, 이듬해 후지TV 아침 방송도 담당하며 지명도를 높였다.

1992년 참의원 선거에 자민당 공천을 신청했으나 실패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이듬해 중의원 선거 때 나라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첫 당선이 되었다. 1994년 자유당, 자유개혁연대, 신생당 창당에 차례로 참여했고, 1996년 나라에서 신진당 후보로 출마하여 2선이 되었다.

당선 후 신진당을 탈당하고 자민당에 합당했다. 이유는 선거 전 여러 차례 토의 끝에 정책으로 정한 '감세 불가' 당론을 오자와 이치로 대표가 선거 직전 뒤집고 대규모 감세를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명당은 신진당과 연합해 당선시켰는데, 곧바로 탈당하자 서운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자민당 세이와정책연구회(후 아베파)에 소속하여 1998년 오부치 내각 때 산업통산성 정무 차관을 맡았고, 3선 후 2002년 고이즈미 1차 내각 때 산업통산 부대신이 되었다. 2003년 낙선하여 이듬해 긴키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 야마모토 타쿠 중의원과 결혼했다. 다카이치 씨는 초혼이었고, 야마모토 씨는 재혼이었다.

2005년 중의원 선거에서 당선, 4선이 되었다. 이듬해 아베 1차 내각에서 오키나와, 북방 지역 담당 대신이 되었고, 8월 15일 대신으로 유일하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했다. 2007년 후쿠다 내각과 2008년 아소 내각에서 경제산업 부대신을 맡았다.

201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파벌 회장 마치무라 씨가 아닌 아베 씨를 지원하기 위해 세이와회를 탈퇴했다. 2012년 총재 선거에서 아베 씨가 승리했고 12월 총선에서 당선, 6선이 되어 당 4역인 정무조사회장에 여성 최초로 취임했다.

2014년 아베 2차 내각에서도 여성 최초의 총무 대신이 되었고 내리 3 내각에서 계속 맡아 최장수 총무 대신이 되었다. 2017년 야마모토 타쿠 씨와 이혼한 뒤, 2021년 야마모토 씨가 낙선하고 재혼했다. 첫 결혼 때는 다카이치 씨가 야마모토 성을 따랐지만, 재혼 후 야마모토 씨가 다카이치 성을 가지겠다고 했다.

2018년 여성 최초 자민당 중의원 운영위원장이 되었고, 이듬해 아베 4차 개조 내각에서 다시 총무 대신 겸 특명 대신(마이 넘버 카드, 우리 주민등록번호)을 맡았다.

202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여 1차 투표에서 기시다 후미오, 고노 다로 씨에 이어 아베 전 총리의 지원으로 3위가 되었다. 기시다 총재 때는 당 정조회장을 다시 맡았고, 그해 총선에서 9선이 되었다. 2022년 기시다 1차 개조 내각에서 경제안전보장 담당 대신이 되었다.

2024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다시 도전했다.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 투표에서 기시다, 스가 전 총리의 지원을 받은 이시바 시게루 씨에게 패했다. 이시바 총리 때는 당과 내각에서 직을 맡지 않고 당원과 국민과의 소통에 주력했다.

2021년 총재 선거 패배 때는 지지자들에게 노고 인사도 거의 생략하고 패인 분석에 몰두했으나, 2024년 결선 투표에서 패한 뒤에는 지지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했다. 이때 아소 다로 씨를 찾아갔더니 '이제 공부는 충분하니 사회활동에 집중하라'는 충고도 받았다. 그리고 1년 동안 전국 각지 강연회, 세미나의 연사로 나섰다.

1년 후인 2025년 10월 4일 열린 세 번째 당 총재 선거에서 1차 1위, 결선에서도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을 꺾고 여성 최초의 자민당 총재가 되었다. 그리고 10월 21일 중·참의원 선거에서 최초의 여성 총리로 등극하였다.

다카이치 총리의 걸어온 길과 특성을 종합해 보면, 첫째, 옳다고 생각하면 굽히지 않고 관철하는 소신파다. 이는 대학 입시 때 부모 뜻을 거슬리며 고베대에 진학했고, 당 대표가 당론을 어기는 신진당을 떠나 자민당으로 갔다. 또 아베 신조 씨를 지원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소중한 소속 파벌도 탈퇴하고 도왔다.

둘째, 적확한 판단으로 유연하게 대처하는 전략가다. 공로가 큰 아소파와 총재 경쟁자 모두에게 중책을 맡기며 내부를 굳건히 했다. 공명당이 떠나자 일본유신회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며 연립을 이뤄냈다. 한·중과의 관계를 위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피할 것이다.

셋째,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을 걷는 진보적 보수 정치가다. 국가 경제와 발전을 걱정하여 정치에 입문했고, 국가 안보를 위해 방위력 강화, 헌법 개정 등 보수를 지향하지만, 소비세 감세, 국회의원 정수 감축 등 진보적 정책도 국민이 원하면 받아들이고 있다.

넷째, 열정적 실행력과 인간미를 겸비한 노력가다. 연립 상대 유신회의 정책, 요구를 밤새 철저히 파악하여 상대방이 감탄케 하였고, 총재 당선 연설에서 일하고 일하겠다고 밝혔다. 또 매주 나라의 부모를 찾고, 남편 뇌경색 간호를 하는 등 인간미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 미루어, 다카이치 총리는 국내 정치도 물가 안정, 경제 성장을 도모하여 지지율이 오르고 자민당의 승리 확신이 섰을 때, 중의원 해산, 선거를 통하여 안정 의석을 확보코자 할 것이다.

대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는 아베 총리에 버금가는 유대관계를 맺으려 하고, 중국과도 안보는 강경, 경제는 유연한 입장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는 우호 관계를 유지하되 의견이 상반될 때는 유연하지만 단호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한다.

오용수 한일문화관광연구소 대표

Copyright © 대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