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이 ‘억울하다’는 김현태 대령에 대하여

김현태 대령은 12·3 쿠데타 당시 국회에 난입한 계엄군 현장지휘관이다. 당시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특임단 단장이었던 그는, 2024년 12월3일 밤 11시49분 헬기를 타고 가장 먼저 국회에 도착했다. 그 뒤 국회 본회의장이 있는 본청을 봉쇄하기 위해 부대원들과 작전에 돌입했다. 국회 관계자들이 계엄군을 막기 위해 저항하자, 유리창을 깨고 본청 안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한 것도, 전기를 끊을 방법을 찾으라고 명령한 것도 모두 김현태 대령이다. 그는 2월28일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행정부와 입법부 싸움에 군이 이용되고 피해당하고 있다.” “나는 복귀하는 그 시간까지 건물 봉쇄만 하다 왔다.” 10월13일 김현태 대령은 법정에 나와 12·3 그날 밤에 대해 ‘억울하다’고 증언했다. 이날 김 대령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가 심리하는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재판 2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앞서 윤석열 변호인단은 김 대령을 서둘러 증인으로 불러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다. 김 대령이 피고인 윤석열에게 유리한 증언을 할 거라는 판단 때문이다.
내란 특검(특별검사 조은석)은 윤석열이 국회에 계엄군을 침투시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을 막고 국회를 무력화하는 등 국헌 문란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폭동을 일으켰다고 본다.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2024년 12월4일 0시31분 윤석열에게 “아직 의원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다.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김현태 대령은 윤석열의 위법적인 국회 활동 방해 지시가 곽 전 사령관을 통해 현장에까지 하달됐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증인 중 하나다.
10월13일 내란 특검은 법정 증인석에 앉은 김현태 대령에게 ‘국회 본회의장을 차단하라’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았느냐고 수십 차례 물었다. 김 대령은 “기억나지 않는다”라거나 “나는 국회 봉쇄만 생각했다”라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열 달 전 자신이 한 이야기를 송두리째 뒤집는 발언이다. 2024년 12월9일 김 대령은 “내가 모두 책임질 테니 부대원들을 용서해달라”며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신원 자체가 기밀에 해당하던 그는 얼굴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 카메라 앞에 섰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김현태 대령은 작전 중 ‘국회의원을 끌어낼 수 있냐’는 지시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처음 (곽종근 전 사령관에게) 지시받은 게 ‘국회로 가라’ ‘아무도 들어오고 나가지 못하게 국회 2개 건물(본청·의원회관)을 봉쇄하라’였다.” “(2024년 12월4일) 0시에서 0시30분 사이 (곽 전 사령관이) 말한 건 ‘국회의원들이 모이고 있단다. 150명 넘으면 안 된단다. 막아라. 안 되면 들어가서 끌어낼 수 있겠냐?’ 뭐 이런 뉘앙스였다.” “최종적으로 본회의장에 들어가야 한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정문을 못 들어가는 상황에서 정문 내용만 얘기했다.”

“기자들 질문에 말실수 했다”?
10개월 뒤 김현태 대령은 말을 바꾸었다. 10월13일 윤석열 재판 법정에서는 해당 기자회견 발언을 ‘말실수’로 취급했다. 당초 기자회견문만 읽으려고 했는데 예상치 않게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말실수를 많이 했고, 12·3 쿠데타 당시 현장과 이후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뒤섞이면서 기억에 혼선이 왔다고 해명했다. 작전 중 곽종근 전 사령관에게 ‘150명’이라는 숫자를 들은 기억은 나지만, 그게 국회의원인지는 몰랐다는 식이다.
하지만 기자회견 한 번이 아니었다. 김현태 대령은 2024년 12월19일 검찰 참고인 조사에서도 “곽종근 사령관이 말하는 150명이 국회의원을 의미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국회의원 150명이 모이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2월6일 윤석열 탄핵심판 6차 변론 증인으로 출석해서는 “‘150명 넘으면 안 되는데 들어갈 수 없겠냐(라는 지시)’에는 ‘끌어내라’와 ‘국회의원’이란 단어는 없었다”라고 말을 바꿨다. 2월10일 검찰 피의자 신문 조사에서도 “‘150명’ ‘들어갈 수 있겠냐’라는 말을 들은 기억밖에 없다”라는 답으로 일관했다.
김현태 대령은 10월13일 윤석열 재판 법정에서는 도리어 계엄 당시 707특임단 작전 수행이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707특임단 부대원이 케이블타이로 포박을 시도한 〈뉴스토마토〉 기자를 향해 “정말 한심하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군인이 대테러 작전을 하는데 기자라면서 사진 찍고 작전을 방해하면 작전 보안 차원에서 제지해야 하지 않겠느냐. 테러가 발생했을 때, 테러범이 인질을 데리고 있으면서 제일 먼저 모니터링하는 게 언론이다. 실제 테러 상황에서 저 기자가 촬영한 게 언론에 나갔다면, 그 안에 있는 인질과 우리 작전 인원의 생명이 엄청 위험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12·3 쿠데타 당시 대테러 부대인 707특임단이 국회에서 정상적으로 대테러 활동을 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때 국회 인근에서 테러 상황에 대한 징후는 없었다. 전시·사변이나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도 없었다. 따로 테러 관련 첩보를 받았느냐는 서성광 검사의 질문에 김현태 대령은 “일절 보고받은 게 없다”라고 답했다. 서 검사가 재차 대테러 활동이나 첩보가 없는 상황에서 계속 임무를 수행하는 게 정상적이냐고 묻자, 김 대령은 이렇게 답했다. “왜 테러가 없다고 확신하는지 잘 모르겠다. 테러 발생 유무를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주어진 봉쇄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그러면서 김현태 대령은 “이 부분은 많이 억울하다”라고 길게 토로했다. “행정부와 입법부 싸움에 군이 이용되고 피해를 당했다. 지금 다시 입법부와 행정부 재판에 군이 이용당하는 것밖에 더 있겠나. 우리가 사전에 개입한 건 아무것도 없다. 실(實)대테러 작전이나 실전쟁이면 군인들 다 죽었다. 이 개판인 작전을 왜 추진했겠나. 국군통수권자가 지시하고, 국방부 장관이 ‘합법적이다. 안 하면 항명이다’ 지시하는데 안 하는 게 군인인가? 군은 국가의 합법적인 무력 집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지도자의 도덕성이 중요한 거다.”

“내란 가담자 진급 결단코 없을 것”
2024년 12월3일 밤, 위법한 명령을 받은 계엄군 지휘관은 시험대에 섰다. 부당한 명령을 따르거나 거부하거나, 두 가지 선택지였다. 명령을 거부한 군인도 있었다. 김현태 대령과 마찬가지로 국회 본청 내부로 진입한 김형기 특전사 1공수 1특전대대장(중령)이 그랬다. 김 중령은 ‘문짝을 부숴서라도 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하려는 국회의원을 다 끌어내라’는 이상현 당시 특전사 1공수여단장의 지시를 부하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간인과 접촉하지 마”라며 부하들을 철수시켰다. 김형기 중령은 4월21일 김현태 대령과 같은 법정 증인석에서 “12월3일 받은 임무는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라고 증언했다.
국가와 국민을 지킨다는 사명으로 복무하는 군이 내란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흔을 남겼다. 정부는 내란에 가담한 군인을 단죄하고, 이를 막은 군인을 끌어안는 방식으로 군을 재건하고 있다. 10월13일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총칼로 국회를 유린하고 헌법과 법질서를 위반했기에 반드시 내란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라며 12·3 비상계엄을 내란이라고 규정했다. “내란 가담자의 진급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반면 10월1일 정부는 김형기 중령 등 국회 계엄 해제 의결에 기여하고, 군병력과 시민의 충돌을 막은 군인 10명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김현태 대령과 김형기 중령의 처지가 엇갈렸다. 이번 정부 포상은 ‘명령을 거부한 군인’의 공로를 인정한 최초 사례다. 이를 두고 김현태 대령은 10월13일 법정에서 “군은 명예와 사기로 먹고사는 조직이다. 합리성보다는 충성과 복종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정부가) 계엄 사태 이후로 말도 안 되는 훈장과 특진을 살포하면서 (군을) 내부 분열시키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김 대령의 주장대로라면, 불법 계엄이 반복되더라도 군은 또다시 그 명령을 따라야 한다. 4월21일 김형기 중령은 같은 법정에서 “누군가는 상부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것이 항명이라고 하는데, 군인이 명령을 따르는 건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는 고유한 임무 안에서만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3월1일 곽종근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 당시 707특임단장만이 유일하게 나에게 현장 상황을 정확히 보고하고 ‘하면 안 된다. 무리하면 안 된다’고 건의한 지휘관”이라며 김현태 대령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공포탄 및 테이저건 사용 가능 여부 논의 시 김현태 단장이 ‘사람이 많아서 사용하면 안 된다. 위험하다’고 건의해 나도 사용을 중지시켰다. 국회 본회의장 진입 시도 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냐?’는 내 질의에 ‘더 이상 진입이 안 된다. 무리하면 안 된다’고 건의해 당시 진입을 중지시켰다.” 정작 김현태 대령은 10월13일 법정에서 “국군통수권자와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안 따르는 군인이 군인인가?”라고 되물었다.
12·3 그날 밤처럼 김현태 대령을 비롯한 계엄군에게는 여전히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다. 내란의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10개월 전인 2024년 12월9일, “부하를 지키기 위해” 기자회견을 자청한 김 대령은 “작전하면서 주변 부대원들이 ‘우리가 여기에서 지금 뭐 하는 짓이냐’ 하고 자괴감 섞인 말로 나눈 대화도 많이 들었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국가의 군인으로서 잘못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다하겠다”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지금은 억울할 뿐이라는 김현태 대령이 역사에 어떤 군인으로 기록될 것인지는 자신의 몫이 됐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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