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99.9%다” 거리 나선 전 세계 젠지, 정치 개혁 물꼬 틀까
부패·불평등·청년 실업률에 분노
SNS 통해 자발적 결집 ‘기본권’ 요구

“우리는 권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해할 권리, 알권리, 감시할 권리를 요구합니다. 총리 임명은 어떠한 대화도, 투명성도 없이 이뤄졌습니다. 이는 우리가 규탄해온 과거 관행으로의 회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혁명이 빼앗기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다가스카르 청년단체 ‘제트 세대 마다’(Gen Z Mada)는 지난주 소셜미디어에 올린 성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20일 마다가스카르 임시 대통령 마이클 란드리아니리나가 전 비엔아이(BNI) 은행 회장 헤린찰라마 라자오나리벨로를 신임 총리로 임명한 뒤였다. 마다가스카르를 뒤흔들었던 청년들의 시위로 지난 14일 탄핵된 안드리 라조엘리나 대통령의 자리는 군 엘리트 조직 캡사트(CAPSAT) 지휘관이던 란드리아니리나 대령이 차지했다. 17일 임시 대통령에 오른 그가 의회와 협의해 발탁한 신임 총리를 두고 ‘제트 세대 마다’는 “이번 결정은 국민이 요구한 ‘(부패) 단절의 정신’과 ‘신뢰할 수 있는 전환’을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마다가스카르 청년들은 지켜보고 있으며 다시 움직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군부와 비즈니스 엘리트가 다시 결탁하면서 쿠데타에 따른 군정 수립과 정세 불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제트(Z) 세대’(1997~2012년생·젠지) 청년 주도의 반정부 시위가 아프리카와 남미로 번지며 전 세계적 물결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 8월 말 네팔에서 ‘네포 키즈’(Nepo Kids)라 불리는 특권층 2세들의 사치 행태와 정부의 소셜미디어 차단에 분노한 제트 세대의 시위가 정권 교체로 이어진 지 두달. 이제는 마다가스카르·모로코·페루·파라과이 등지에서도 같은 세대가 “청렴·공정·기회·민주주의”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시위가 촉발된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청년층 비중이 많고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특권층의 부패와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돼 있다는 점이 지목된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마다가스카르는 세계 최대 바닐라 생산국이지만, 수도 안타나나리보조차 단전·단수가 일상이다. 10년째 현지에 사는 교민 황종연(56)씨는 “물은 사서 써야 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정전이 나는데 정부는 교통체증 해소를 명분으로 아무도 안 쓰는 도심 케이블카를 세워 ‘돈잔치’를 벌였다”며 “온화하던 국민들이 더는 불공정과 부패를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위 참가자 로버트(가명·20)는 국제앰네스티에 “너무 오랫동안 젊은이들이 무시당해왔다. 우린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기본권을 외친 것”이라며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면 소수의 부패한 정치인과 사업가들은 계속 부를 축적하고, 마다가스카르 국민들은 세대를 거쳐 계속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마다가스카르는 평균 연령이 19살인 젊은 국가인데, 국민의 75%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사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조준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아시아·아프리카센터 선임연구원은 “결국 이번 사태도 군부가 어느 편을 드느냐에 따라 정국이 쉽게 흔들리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며 “특히 군부와 비즈니스 엘리트가 결탁된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근본적인 변화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번 청년 시위대의 편에 선 캡사트 부대는 2009년 라조엘리나 전 대통령을 지지해 정권 교체를 도운 바 있다.
다만 조 선임연구원은 “기술 발달로 정보 차단이 어려워지면서 청년들이 객관적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며 “정부가 민생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도 지난달 27일부터 ‘제트 세대 212’가 주도한 청년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졌다. 이들은 정부의 2030 월드컵 등 대회 유치 예산 낭비를 비판하며 교육·의료 등 기본 서비스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경고’를 받아든 모로코 정부는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을 늘리는 데 국가 예산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페루와 파라과이에서도 젊은 세대가 부패한 권력 구조에 맞섰다. 파라과이 청년들은 “우리가 99.9%다”를 외치며 예산 투명성과 치안 개선을 요구했다. 페루에서는 정부가 청년에게 민간 연금 기금 납입을 의무화하는 법을 통과시키면서 시위에 불이 붙었다. 지난 10일 대통령이 탄핵당한 뒤에도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면서 사망자와 수백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결국 22일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됐다. 하상섭 외교안보연구소 조교수는 “정당 정치가 무너진 사회에서 분노가 거리로 분출됐다”며 “비정규직이 80%를 넘는 노동 구조 속에서 연금 의무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조치였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들이 온라인에서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며 사회문제를 ‘자기 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올해 2월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는 페루의 전체 노동력 중 72%가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의원 주택수당이 자카르타 최저임금의 10배에 이른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시위가 시작됐고, 20대 오토바이 배달 청년이 장갑차에 치여 목숨을 잃으면서 전국적으로 퍼졌다. 인도네시아 학생 데리(25)는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한 항의 행위가 아니라 양심선언이다. 우리에게 침묵은 공범이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권위주의적 관행의 부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국제앰네스티에 말했다.
이외에도 필리핀에서는 정부의 공공사업 예산 비리 문제로, 동티모르에서는 의원 차량 지급 및 평생 연금 제공에 분노해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나라마다 조금씩 달라도 제트 세대들은 기득권층의 부패, 사회경제적 불평등, 높은 청년실업률에 분노하며 거리로 나섰다. 특정한 정치 지도자 없이 틱톡 등 소셜미디어와 디스코드(게임 메신저 앱) 등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자발적으로 결집해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기존과는 달리 스마트폰을 전략적 정치 도구로 활용해 빠르게 디지털 시민운동으로 전환시켰기 때문에 부패한 정권을 밀어낼 수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소셜미디어와 정보의 세계화로 저개발국의 젊은 세대가 보편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게 됐다. 현 정부의 잘못된 거버넌스를 훨씬 더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이러한 힘이 실제 정치개혁으로 이어지려면 제도권 정치와 연대해 청년들의 목소리가 제도권 내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초기에 정치적 기반을 잘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팔 언론 카트만두포스트는 지난 12일 “임시 정부가 제트 세대 구성원들이 여러 집단으로 나뉘어 서로 상충되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 분열 조짐이 보인다”며 “초기 제트 세대를 대표해 임시 총리를 지명한 수단 구룽이 이끄는 하미네팔 단체에 다른 제트 세대 집단들이 ‘외부 세력’, ‘반국가적’이라고 비난하며 시위를 이어갔다”고 보도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제트 세대 운동의 리더로 알려진 수단 구룽 하미네팔 리더는 소셜미디어에 “더 큰 의제에 집중하는 것보다 먼저 한달 동안 다양한 제트 세대 그룹을 통합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직 성과가 없다”고 올렸다.
일각에서는 네팔과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곳곳에서 일어난 일련의 청년 시위를 두고 ‘아시아의 봄’이라고 부르지만, 조 센터장은 “기득권 구조에 대한 분노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민주주의의 새 물결로 단정하긴 이르다”며 “아랍의 봄이 제도적 민주주의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과 달리, 이번 움직임이 제도적 개혁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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