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업 유치 사활 건 태국… 전 세계 ‘쏠린 눈’ [돌아오지 않는 기업들③]

이연우 기자 2025. 10. 28.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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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등 싸고 아세안 진입 유리...태국, 관광 외 안정적 수입원 필요
한진·금호타이어 등 대기업은 물론 도내 중소·중견기업 350여개 진출
전자·전기·車 차세대 공급망 확대...글로벌 생산기지로 성장 동력 확보
세계 1위 수준의 의료 관광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태국 방콕 중심가 모습. 이연우기자

돌아오지 않는 기업들③ 태국 글로벌 생산 허브화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 체제에서 해외투자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된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문화가 비슷하고 거리가 인접한 중국·일본 등의 동북아시아권, 그리고 상대적으로 인건비와 원자재비 등이 저렴한 태국·베트남 등의 동남아시아권이 주된 투자의 대상이었다.

특히 올해엔 미·중 무역 경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면서 ‘아세안’을 향한 관심도가 더 뜨거워진 상황이다.

27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1967년 창설된 동남아시아 10개국 연합체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은 현재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등 3대 공동체를 공유한다. 여기서 재정적, 문화적 여건을 공유하고 언어·지리적 기반이 되는 중심지가 바로 태국이다.

㈜한진, 금호타이어, 현대글로비스 등 대규모 기업은 물론이고, 염장품 제조업체, 축전지 제조업체 등 경기도 중소·중견기업까지 350여개 기업이 태국으로 진출한 이유 역시 태국이 아세안 진출의 교두보이기 때문이다.

올해 태국은 2.7~3.1% 경제 성장을 목표로 ‘중소기업 및 기업가 지원’, ‘공공 유틸리티 가격 인하’, ‘지하 경제의 양성화’, ‘디지털 지갑 프로젝트’ 등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특히 세계적인 관광 대국이자 전자·전기·자동차산업의 차세대 공급망으로서 그 특성을 살려 ‘글로벌 생산기지로 부상하겠다’는 목표다.

실제로 일본의 사무기기 및 산업용품 제조업체 리코(Ricoh)와 가전제품 제조업체 파나소닉(Panasonic)은 미국 시장을 겨냥해 태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했고, 중국의 화웨이 기술에 인쇄회로기판을 공급하는 WUS Printed Circuit도 태국 내 신규 생산 시설을 구축하는 데 2억8천만달러를 투자했다.

세계 각국 기업들이 태국에 집중하듯, 태국도 해외 기업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주된 이유는 ‘높은 가계부채’에 있다.

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기준 90.9%로 아세안 국가 중 가장 높다. 정부와 시중은행이 가계 대출 줄이기에 나선 상황이고 국민들의 구매력이 낮아져 건설·자동차 산업 등이 전반적으로 침체되고 있다. 즉 관광산업 외에도 안정적이고 부수적인 외부 수입원이 필요한 상황인데, 그게 해외 기업의 투자이자 글로벌 공급망 속 생산 허브화다.

태국 투자청(BOI)이 집계한 지난해 상반기 외국인 투자는 승인 건수 기준 913건, 3천598억 바트(한화 약 15조7천16억 원)로 전년 대비 각각 62%, 40% 증가했다. 상위 3개 투자국은 ▲중국(329건, 1천18억 바트) ▲싱가포르(125건, 945억 바트) ▲일본(163건, 385억 바트) 순으로, 우리나라(16건, 49억 바트)는 8위 수준이다.

김영표 글로벌비즈니스센터 방콕 소장은 “아세안에서 국가 GDP 규모가 큰 건 인도네시아, 국민소득이 높은 건 싱가포르다. 두 조건이 동시에 맞는 나라가 태국인데 최근에는 경제 성장이 낮아지면서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고들 한다”면서 “태국은 2036년까지 세계 10대 스마트시티 국가로 도약하는 게 목표여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해외 투자를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태국이 ‘외국인사업법’ 등 제한을 풀기 시작하면 중국, 캄보디아, 미얀마 라인으로 이어지던 생산공장들이 태국으로 올 수 있고, 국내기업들이 한국으로 리쇼어링(Reshoring·외국에 나간 자국기업이 다시 국내에 돌아오는 현상)하는 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값싼 인건비·글로벌 유통망… 아세안 진출 교두보
태국 방콕의 한 드럭스토어에서 다양한 제품의 의약품과 의료기기 등이 판매되고 있다. 이연우기자

값싼 인건비와 안정된 부지, 빠르게 성장하는 내수 시장까지 아세안(ASEAN)은 여전히 한국 기업들에 ‘기회의 땅’이다.

정부가 각종 유턴(국내 복귀) 지원책을 내세우고 있지만 많은 중소기업은 “돌아갈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인프라와 시장 접근성이 뛰어난 태국, 제조 경쟁력이 돋보이는 베트남 등 아세안 현지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기업은 새로운 생존전략을 모색 중이다.

김영표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방콕 소장이 에코트㈜ 상품이 놓인 진열장을 정리하고 있다. 이연우기자


■ “의료 강국 태국에서 새 길을 찾다”… 에코트㈜의 현지 생존전략

태국 방콕 중심가인 프롬퐁(Phromphong) 인근에 드높은 빌딩들이 자리하고 있다. 화려한 쇼핑타운 주변으로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방콕 사무실이 위치한 가운데 에코트㈜의 태국 사무실도 이 안에 있다.

2014년 7월 설립된 에코트㈜는 양주에 본사를 두고 의료기기 도매업과 전자상거래업을 하는 기업으로 2023년 10월20일 태국에 진출했다. 명실상부 세계 관광 대국이자 의료 대국인 태국에서 경기도 중소기업으로 머무는 것 이상의 ‘새로운 살 길’을 찾아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사무실에는 현지 직원 다수가 상주하며 주력 의료기기 상품을 유통하기 위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박현진 에코트㈜ 대표(48)는 “국내 의료기기 시장이 포화 상황이라 저희는 생존을 위해 해외로 나가 운신의 폭을 넓혀 보자고 결심하게 됐다”며 “현재 태국의 거점 병원들에 우수 의료기기를 소싱(Sourcing)해 판매하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저희가 국내에서 보유 중인 판권을 태국으로 가지고 가 현지에서 제조와 판매를 동시에 해내는 모습을 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콕 중심부에 위치한 태국 내 중심병원인 범룽랏 국제병원(Bumrungrad International Hospital) 응급실 앞 입구. 이연우기자


태국은 의료관광 분야에서 세계 1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나라다. 범룽랏 국제병원 등 주요 의료기관은 연간 66만명 이상의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있고 아시아 최초로 국제의료기관평가(JCI) 인증을 받은 병원을 포함해 8개 이상의 병원이 국제 인증을 받은 상태다. 에코트㈜가 태국 진출을 택한 이유도 이러한 여건과 무관하지 않다.

박 대표는 “동남아에서 국내총생산(GDP)이 높은 국가 중 하나이면서 우리나라 못지않게 의료 강국인 곳이 태국”이라며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네트워크와 제품 리소스, 비즈니스 모델 등을 해외에도 제공해야 하는데 그 여건이 태국이 적합했다. 또 한편으로는 태국이 한국 제품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 관련 경험이 풍부해 편의성 차원에서도 다른 나라보다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박현진 에코트㈜ 대표가 해외 진출을 하는 과정에서 태국을 선택하게 된 배경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연우기자


한국과의 시너지를 고려했을 때 수많은 나라 중에서도 태국이 가장 적절한 대상지였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해외 진출’을 한다는 건 국내 시장의 어려움이 있다는 게 아닐까. 이에 대한 의견을 묻자 박 대표는 “해외에 진출하려는 기업 상당수가 단위노동당 생산단가, 기업 규제, 신규 사업 투자 장벽 등에서 고민한다. 저 역시 비슷한 고민을 했다”며 “임금이 저렴한 나라, 법인세 등 세제 혜택이 많은 나라 등이 있겠지만 그게 절대적 이유가 될 수 없고 그 누구도 섣부르게 도피성으로 나오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경영 환경이 너무 안 좋아 내수도 살아남기 힘든데 해외 진출을 통해 K-브랜드를 알려 ‘판매 국가를 늘리자’는 게 중소기업들의 전략이지 않을까”라며 “국내 기업이 세계 마켓에서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 그게 해외 진출”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방콕에 에코트㈜ 사무실 등이 입주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공유오피스에서 현지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연우기자


아직 사업 초창기인 만큼 다양한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겪어야만 하는 입장. 그 역시 ‘유턴기업’을 익히 알고 있다.

박 대표는 “사업을 멋지게 영위하겠다는 게 목표가 아니라 오로지 ‘돈’ 관점에서 보면 실패한다. 유턴기업 지원정책도 마찬가지로 기업을 국내로 복귀시켜 무엇을 어떻게 시킬지가 중요하지 어떠한 베네핏(benefit·혜택)을 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뚝심 있게 해외로 나아가는 업체들, 그리고 본인의 결정으로 복귀를 결정하는 업체들, 이 각각을 퍼뜨리는 육성정책이 필요한데 현재 방향은 다양성이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끝으로 박 대표는 “외과, 정형외과 등 모두를 아우르면 좋겠지만 우선 태국에선 외과 쪽 수술에 방향을 잡고 세일즈를 이어가고 있다”며 “그대로 멈춰 있으면 안 되므로 향후엔 제조업은 물론이고 한국 제품의 수출 인허가 컨설팅을 하는 비즈니스까지 사업을 확장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김영수 ㈜링크일렉트로닉스 대표이사가 자사 디지털 도어락 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연우기자


■ “인건비·원자재비 낮은 게 강점”… ㈜링크일렉트로닉스의 베트남 공장 이야기

또 다른 아세안 진출 기업도 있다. 태국보다 인건비와 원자재비 등이 더 저렴한 ‘베트남’ 이야기다.

안양 등에서 2001년부터 무선 모듈 및 디지털 도어록 관련 제조·수출업을 하고 있는 김영수 ㈜링크일렉트로닉스 대표이사(61)는 2017년 베트남 하노이에 공장을 설립하고 이듬해 본격 가동을 시작했다. 해외에 발을 딛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수출로 먹고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한평생 해외 진출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김 대표이사는 끊임없이 원가 절감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품질 개선, 기술개발까지 이어 가는 데 고민이 있었다. 그렇다고 무엇 하나 놓을 순 없는 일, 시장을 한층 넓혀야겠다는 다짐이 그를 해외로 이끌었다.

㈜링크일렉트로닉스의 안양 공장에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이연우기자


중국, 우즈베키스탄 등을 고민하다 결국 베트남을 고른 그는 ‘월드와이드한 가능성’을 봤다.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다른 아세안과 비교해도 베트남이 ‘열린 시장’이었다는 의미다. ㈜링크일렉트로닉스의 베트남 공장에선 SMT, 수삽, 기능 검사, 코팅 등의 작업이 진행된다.

김 대표이사는 “대기업과 1차 벤더들이 2005년 이후 하노이로 진출하며 베트남 내 ‘한국 기업’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었고 현지에서 금전 거래를 할 때 달러를 쓰게 되는데 그에 맞춘 송금 시스템도 베트남이 제격이었다”며 “타국과 비교했을 때 원가 경쟁력 부분도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전했다.

원가 경쟁력을 고려할 때 비교 대상이 됐던 ‘타국’엔 당연히 우리나라도 포함된다.

김 대표이사는 “국산이건 중국산이건 미국산이건 모든 제품은 서로 경쟁한다. 그 과정에서 인건비도, 재료비도 오르게 되는데 몇 국가는 제조원가 등 비용 일부분을 기업인에게 보전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나라엔 그런 게 없어 기업이 경쟁하면서도 막상 판매가격을 올리지 못한다. 점유율을 뺏기니까 그렇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최저임금은 오르고, 고용은 쉽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도 장기 근속이 어려운 문제 등도 더해져 결국 중소기업들이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라며 “책상에 앉아 나오는 정책은 현장에 맞지 않는데 유턴기업 지원 제도도 어느 정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영수 ㈜링크일렉트로닉스 대표이사가 안양 공장에서 장비의 쓰임새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연우기자


㈜링크일렉트로닉스는 태국, 브라질, 페루, 멕시코, 칠레 등에 자사 완제품을 수출(2023년)하며 지금도 ‘한발 앞선 제품’을 위해 노력한다.

김 대표이사는 “저는 해외 진출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반대로 국내 복귀를 원하는 기업들도 적절한 지원기관이 있길 바랄 것”이라며 “현재 관세로 인한 전 세계적 소비심리 위축, 해외시장에서 국내업체 간 가격경쟁 심화 등이 위협 요소라 할 수 있는데 정부나 지자체, 기관 등이 함께 고민을 나눠주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특별기획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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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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