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 이주배경 주민과 성장하는 공동체를 꿈꾸다” [경기도 평생학습 기회특구④]

이나경 기자 2025. 10. 27. 18:5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시흥시 오이도문화복지센터에서 경기도 평생학습 기회특구 사업 가운데 시흥시의 이주배경여성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수업이 열리고 있다. 이나경기자


“이번 명절엔 무엇을 했나요?” 언뜻 평범해 보이는 선생님의 질문에 자수가 새겨진 흰색 히잡부터 꽃무늬 가득한 하늘색 히잡을 두른 여성들이 차례로 손을 들었다. “친구랑 놀았어요”, “집에서 쉬었어요”. 서툰 발음이었지만 또렷하게 내뱉는 한국어 속에 진심이 묻어났다. 추석을 보내고 모인 지난 14일, 시흥시 오이도문화복지센터엔 이주배경 여성 16명이 함께 ‘시흥에서 배우는 한글 교실’라는 이름의 평생학습 프로그램에 몰입하고 있었다.

“오늘은 약속하기를 배워볼 거예요.” 강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적을 깨는 웃음소리가 교실 안에 번졌다. 하얀 칠판 앞, 삼삼오오 모여 앉은 수강생들은 태국·베트남·방글라데시·파키스탄 등 국적도 다양하다. ‘외식’, ‘회식’, ‘약속’ 발음을 따라 하며 서로의 입 모양을 확인하고, 틀리면 웃고 다시 연습한다. 노트에는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받아 적은 한글 문장이 빼곡했다.

수업이 무르익자, 이들은 잠시 펜을 내려놓고 칠판 앞으로 나와 짝을 지어 실제 상황을 연기했다. “내일 시간 있어요?” “좋아요, 약속!” 발음은 서툴지만, 표정만큼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한참을 연습한 후, 교실이 한껏 달아오를 즈음 수강생들이 곱게 한복을 갈아입고 나섰다. 25일 열릴 주민들의 축제인 ‘어울림 한마당’ 무대에서 부를 ‘아리랑’을 연습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은 단순한 수업 공간이 아닌 한국의 문화에 녹아드는 ‘작은 공동체’였다.

지난 14일 시흥시 오이도문화복지센터에서 열린 경기도 평생학습 기회특구 사업 가운데 시흥시의 이주배경여성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교육수업 수강생들이 색색의 한복을 갖춰 입고 기념 촬영에 나섰다. 이나경기자


시흥시는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이 지난 3월 공모한 ‘경기도 평생학습 기회특구’ 사업에 ‘외국인 정주지원 : 평생교육으로 사회통합’을 주제로 신청해 참여하고 있다. “외국인 주민의 정착을 넘어,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 실현”을 지향하는 시흥시의 비전엔 수년간 마주해 온 지역의 변화에 따른 고민이 담겼다.

시흥시 인구 59만 여명 가운데 외국인 주민은 약 7만 명(12%)에 달한다. 주민 10명 중 1명 이상은 외국인인 ‘다문화 도시’다. 이는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세 번째로 많은 수치다. 이들 중 85% 이상은 시화산업단지가 위치한 정왕권에 거주하며, 대규모 제조업 단지가 제공하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외국인 유학생을 보유한 대학 캠퍼스, 외국인 전담부서 등 지역 자원은 외국인 유입을 가속화했다.

지난 14일 시흥시 오이도문화복지센터에서 열린 경기도 평생학습 기회특구 사업 가운데 시흥시의 이주배경여성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교육수업의 수강생들이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이나경기자


하지만 인구의 변화만큼 지역이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도 생겼다. 언어 장벽으로 인한 소통 단절, 산업재해, 아동 학업 부진, 문화 충돌과 고립, 여성 이주민의 사회참여 제약 등이 대표적이다. 시흥시가 외국인 주민 3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언어·문화 교육’(29.4%)과 ‘취업 및 일자리 연계’(27.8%)가 꼽혔다. 단순한 복지 제공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기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예전엔 시어머니께 ‘밥 먹어’라고 말했어요. 존댓말을 몰랐거든요.” ‘시흥에서 배우는 한글교실’의 수강생인 베트남 출신 가오 티 임진씨(33)의 익살스러운 일화엔 쑥스러움과 뿌듯함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한국에 온 지 12년,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키우며 살아왔지만 말 한마디, 억양 하나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지금은 ‘식사하세요’라고 말해요. 남편이랑 아들 말도 예전보다 훨씬 잘 들려요.”

(왼쪽부터) 경기도 평생학습 기회특구 사업 가운데 시흥시의 이주배경여성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교육수업의 수강생이자 시흥시 주민인 완 통 첼리씨와 가오 티 임진씨가 인터뷰에 앞서 활짝 웃고 있다. 이나경기자


태국에서 온 완 통 첼리씨(44)는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를 천천히 발음한 뒤, “아이가 아플 때 병원에서 말이 안 통해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증상을 설명할 수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두 아들을 키우는 그녀에게 언어는 곧 ‘엄마의 힘’이었다. “예전엔 무서워서 놀이터에서도 말을 못 걸었어요. 지금은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할 수 있게 됐어요.”

두 사람은 모두 ‘시흥에서 배우는 한글교실’을 수강 중이다. 일상에서 바로 쓰는 표현을 배우는 이 수업은 이주배경 여성들에게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첫 관문이 된다. “수업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단순한 언어교육을 넘어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다잡고 싶다는 간절함이다.

이날 박승희 강사는 “생활 표현을 중심으로, 동요를 개사해 노래로 가르치면 훨씬 빨리 익힌다”며 “수강생들이 스스로 수업 확대를 요구할 정도로 몰입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어는 곧 삶의 질”이라며 “언어를 배우는 건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삶의 영역을 넓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시흥시 관계자는 “외국인 주민이 시흥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려면 언어와 일자리, 두 가지 축이 필요하다”며 “평생학습은 그 둘을 가장 실질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경기도 평생학습 기회특구 사업 가운데 시흥시의 이주배경여성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교육수업의 수강생 완 통 첼리씨가 인터뷰를 위해 전날 직접 작성한 자기소개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나경기자


시흥시는 외국인 주민을 크게 4개 그룹으로 나눠 맞춤형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이주배경 여성·아동을 위한 생활밀착형 한국어 교육 ▲근로자를 위한 TOPIK(한국어능력시험) 준비반, PLC 자동제어 교육 ▲청소년·유학생을 위한 TOPIK 집중 캠프(대학 진학·졸업 연계) ▲성인을 대상으로 한 요양보호사·장애인 활동지원사 자격증 과정이다.

TOPIK 과정은 외국인 고등학생과 유학생이 한국에서 대학에 진학·졸업하거나 비자를 연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 PLC 교육은 경기과학기술대학교와 협력해 실제 제조업 취업으로 이어지는 실용적 경로를 제공한다. 요양보호사와 장애인 활동지원사 자격 과정은 여성 이주민이 경제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첫 관문이다. 이와 함께 온라인 학습 플랫폼 ‘쏙(SSOC)’을 통해 시간·공간 제약을 낮춰 참여 접근성을 높였다.

경기도 평생학습 기회특구 사업 가운데 시흥시의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토픽 준비반 수업이 열리고 있다. 시흥시 제공


정책은 교실 안의 작은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 가오 티 임진씨는 “남편과 아들의 말을 더 잘 알아듣게 됐다”고 말했고, 완 통 첼리씨는 “드라마를 따라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시가 목표로 한 ‘언어 습득-자격 취득-경제활동-공동체 참여’라는 외국인 주민의 정주 지원이 효과를 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어를 배우고 자격증을 따고 취업해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는 ‘정주의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시의 목표는 TOPIK 합격률 60%, 자격증 취득률 70%, 학습자 100명 이상 참여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 실현이다. 언어를 익히는 이주민은 단순한 ‘외국인’이 아니라, 학교 학부모가 되고, 이웃이 되고, 직장 동료가 된다. 특히 여성 이주민에게 한국어 능력은 가족의 소통력을 키우고, 아동 교육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처음엔 수업에 참여만 하던 분들이 이제는 동네 주민센터 행사에 자원봉사로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박 강사의 말은 현장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시 관계자는 “평생학습을 통해 시흥을 외국인 주민이 머무르고 싶어 하는 도시,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도시로 만들고 싶다”며 “경기도 기회특구 사업을 적극 활용해 향후 시흥과 생활권이 겹치는 외국인 밀집 도시와 협력해 광역 거버넌스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외국인 밀집도가 높은 서부권역을 하나의 생활·학습권으로 엮어 실질적인 사회통합 모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
평생교육 질 높이고... 지역 혁신 견인 [경기도 평생학습 기회특구①]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929580449

배움엔 끝이 없다... 직장인들 ‘학구열’ 활활 [경기도 평생학습 기회특구②]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1013580386

환경문제 해결하고 일자리 창출 ‘일석이조’ [경기도 평생학습 기회특구③]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1020580520

위영은 교수, “시흥시 평생학습 정책, 지역경제 견인 선도사례 될 것” [인터뷰]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1027580465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