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APEC 앞둔 경주 보문관광단지 부분 교통통제 첫 날 가보니
불편 호소 속에도 “경주가 세계의 중심으로 주목받는 역사적 순간” 반응 교차

27일 오전, 경북 경주시 보문관광단지 진입로. 차들이 줄지어 멈춰 섰다.
찬 공기 속에 경광등 불빛이 도로를 붉게 물들이고, 사이렌 소리와 무전음이 교차했다.
휴대전화엔 같은 문자가 동시에 울렸다.
"오늘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보문관광단지 일대 교통통제가 예상되오니 차량 우회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뜻 보기엔 경주 시내는 평온했다. 관광객 몇 명이 카메라를 들고 황리단길을 거닐었고,
상가마다 평일 오전의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보문단지 입구를 넘는 순간 풍경은 바뀌었다.
도로는 멈춰 섰고, 승용차와 관광버스가 한 줄로 엉켜 있었다.
한 택시기사는 "평소 20분 거리인데 한 시간 넘게 걸렸다"며 "이건 축제도 아니고 시험도 아니고, 그냥 버티는 날"이라 말했다.

△ 통제선 안팎의 공기.
보문단지 일대는 오전 10시부터 1시까지 부분 통제에 들어갔다.
서라벌대로와 산업로, 보문로 등 9km 구간이 행사 전용구역으로 묶였고,
비표가 없는 차량은 진입이 불가했다. 교차로마다 배치된 경찰관들은 우회로를 안내했지만
운전자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이 구간은 통제라고 하니 다른 길로 돌아가시죠."
경찰의 안내가 이어졌고, 창문 사이로 긴 한숨이 흘렀다.
경주화백국제컨벤션센터(HICO) 주변은 긴장감이 팽팽했다.
자율주행버스가 느리게 움직이며 셔틀버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갔다.
행사 관계자들은 참가국 대표단 수송을 위해 셔틀버스 300여 대를 투입했고,
김해공항과 경주역, 행사장을 잇는 KTX도 하루 46회 추가 정차하도록 편성됐다.
△ 혼잡과 대비의 교차.
시내 전역에 자율 2부제가 시행됐고, 경찰은 주요 교차로 222곳에 인력을 배치했다.
그럼에도 차량 흐름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출근길을 막힌 채 버스 안에 앉아 있던 시민 이모(34) 씨는 "어제부터 문자만 수십 통 왔어요.
행사야 좋지만, 주민 입장에선 그냥 불편 그 자체"라고 말했다.
SNS에는 "택시 안 잡히고 출근길 두 시간", "학교는 쉬는데 가게는 연다"는 불만이 이어졌다.
반면 행사 관계자들은 "2만 명 가까운 인원이 움직이니 불가피하다"고 했다.
△오후, 도시의 숨이 돌아오다.
정오를 넘기며 도로는 조금씩 숨을 돌렸다.
오후 1시가 가까워지자 차량들이 서서히 속도를 되찾았다.
통제선이 걷히고, 시민들은 차창을 내리고 가을 바람을 맞았다.
보문호를 따라 걸어가던 관광객 한 명은 "길이 막히니 차라리 걸어서 가는 게 낫다"며 웃었다.
하지만 해가 기울 무렵에도 도시는 여전히 긴장 속에 있었다.
보문호수 위에선 해경 순찰정이 천천히 돌았고,
하늘은 비행금지구역으로 묶였다.
회의장 안에서는 최종고위관리회의(CSOM)가 계속됐고,
IMC(국제미디어센터)에서는 기자들이 속보 경쟁에 몰두했다.
△ 불편 속의 자부심.
시민 불만은 분명했다.
"이틀째 이러면 도심이 마비된다", "손님은 없고 통제만 있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동시에 "경주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순간"이라며 휴대폰을 꺼내 현수막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황리단길 한 상인은 "길이 막혀도, 이런 날은 평생 몇 번 없어요. 그냥 경주가 세상 뉴스에 나오는 게 신기해요"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