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에세이〉‘안동을 넘어 광주로’…지역이 영화가 되는 순간

전남일보 2025. 10. 2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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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익 감독의 '안동'
김정숙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영화 '안동' 포스터. 네이버 영화

필자는 안동을 가보지 못했다. 언젠가는 가보겠지만 그동안은 계기가 없었다. 1999년 가장 한국적인 곳을 찾아 안동 하회마을에 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덕에 안동의 명성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궁금증이 커졌다. 그렇지만 아직 가보질 못해서 안동에 대한 이끌림이 기본적으로 있던 터였다. 영화 〈안동〉은 아름다운 고택과 월영교의 낮과 밤, 하회탈과 춤사위 등을 환상적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영화는 강렬한 인트로로 시작한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이 즈음, 취준생이 갖는 우울증이 심해지면 극단의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밤이다. 소줏병이 나뒹구는 자췻방 안에서 민아(가수 겸 배우 박수빈)는 로프에 목을 매단 채 자살을 시도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로프를 매단 고리의 못이 빠지면서 방바닥에 쓰러지고 만 민아. 그 순간, 엄마(배우 노현희)에게서 온 전화 한 통. 집으로 내려오란다. 민아는 치열한 서울살이로부터 도망치듯 고향 안동으로 돌아온다. 대문 위에 걸린 현판 '恥巖古宅(치암고택)'이 눈에 들어온 순간, 민아는 "집이다"를 뇌며 쓰러진다. 며칠인지도 모르게 앓는 민아를 엄마는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온유한 삶의 훈기를 불어넣는다. 엄마의 정성 덕에 민아는 몸을 회복하고, 엄마는 민아의 목에 빨갛던 멍자국이 푸르딩딩, 거무튀튀 뚜렷해져가도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집안일을 이것저것 시킨다. 아무래도 엄마는 마음이 까맣게 타버리고 머릿속이 뒤엉킬 때에는 단순노동이 약이라는 것을 아는 것 같다.

종부로서 살아온 엄마가 고택을 게스트 하우스로 변모시켜놓아 민아로서는 별수없이 손님을 맞고 직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게스트 하우스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들고 난다. 포맷이 필요해서 고택에서 종일 잠만 자는 셰프 정우(배우 허진우)는 벌써부터 투숙중이다. 죽음을 앞두고 결혼을 선택한 나어린 신혼부부가 다녀감으로써 민아는 자신의 삶과 죽음 사이를 반추해본다. 신혼부부는 신혼부부대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민아를 통해 얻어가는 것이 있다. 혈육의 정으로 갈등하는 딸과 아버지는 이 게스트 하우스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고택에 머무르는 동안 게스트들은 삶의 상채기를 품은 채 각자의 이야기를 교차한다. 이야기는 엄마를 중심축으로, 죽음에 한발 내딛어보았던 민아의 시선을 통해 치유의 서사를 담아나간다.

삶에 지친 모두에게 고향의 품과도 같은 고택에서 자연과 사람으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고 삶의 쉼표로써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면 이 영화로서는 소임을 다한 것과도 같다.

타지역과 서울이 생활권이었던 필자는 월2회 정도는 어머니를 위한 광주행을 했다. 운전대를 남녘으로 향하다 장성 고갯길을 넘으면 톨게이트가 바라다보이는 지점에 무등산이 우뚝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무등산을 바라보며 내리막길을 닫다 보면 안도감이 가슴 가득 뻐근하게 차오르곤 했다. 바로 고향의 힘이다….

우리 귀에 익숙한 경상도 사투리는 경남보다는 경북이 좀더 억세게 들린다. 특히 어미를 '~대이'로 마치곤 하는데 경북지역일수록 "~이칸다 카이"로 마치는 편이다. 존댓말 '~습니다'보다는 평어 '~다' '~라'를 더 많이 쓰고 윗사람에게까지 평어 어미를 사용하는 사례가 더 많이 들린다. 그런데 이 영화를 통해 경상도의 존칭 어미가 따로 있구나 싶게 '~하니다' '~니께?'가 새롭게 들려서 좀더 안동스러웠다.

안동 하면 하회마을, 양반, 안동포, 영화의 단골 로케이션 등이 떠오르듯 광주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예전부터 드라마의 등장인물 중 낮은 경제계급, 깡패급 인물의 대사에 전라도 사투리를 입혔다. 그러다 너무 아픈 5·18을 겪은 후, 광주는 5·18민주항쟁지로 대변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전라도는 예로부터 맛과 멋 그리고 정의 역사를 지녀왔다. 예술과 음식이 사람에게 스미는 힐링 감성 외에도 서해안과 남해안을 끼고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도 덜 알려져 있다는 생각이다. 영화 〈안동〉이 보여주는 장점을 뛰어넘는 장점이 광주·전남 곳곳에 잠재해 있는 한, 영화 〈광주〉가 새로운 시각에서 만들어질 법도 하다.

지역홍보 차원에서 경북문화재단에서는 후속 영화 〈안동2〉도 기획중이라 한다. 안동처럼 광주의 지자체가 나서서 새로운 관점의 멋과 맛, 정이 듬뿍 담긴 영화 〈광주〉가 만들어진다면, 후속 영화 〈나주〉 〈장성〉 〈해남〉 〈순천〉 〈완도〉 〈여수〉 〈장흥〉… 들에서 숨어 있는 내·외적 아름다움이 잘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안동' 속 한 장면.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