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낮추고 문턱을 없앴다”…독일, 모두를 위한 고속열차 ‘ICE L’ 도입
속도 줄이는 대신 이동약자 위해 ‘無계단’ 선택한 독일 고속열차
12월 투입, 내년 노선확대 예정…철도 이동 패러다임 대전환


독일철도청(DB)은 최근 베를린 오스트반호프역에서 신형 고속열차 'ICE L'을 공식 공개했다. 'L'은 Low-floor(저상형)을 뜻한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저상형 KTX'에 해당한다.
ICE L의 가장 큰 의의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닌 '접근권의 평등'에 있다. 기존 ICE보다 최고 속도를 시속 약 300㎞에서 230㎞로 낮췄지만, 대신 전 좌석에서 단차 없는 탑승이 가능한 완전 저상형 구조를 도입했다. 속도보다 '누구나 쉽게 탈 수 있는 열차'를 목표로 한 것이다.
ICE L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열차 입구에 계단을 없앴다는 점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일한 조건으로 이동할 수 있고, 자전거나 유모차 이용객, 노약자도 불편 없이 승하차할 수 있다. 이는 기존 ICE가 플랫폼보다 바닥이 높아 계단 두 세 칸을 오르내려야 했던 구조적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소한 것이다. 지난 9월 영남일보 취재진이 현지에서 ICE를 탑승했을 당시에도 휠체어 이용객은 DB의 이동지원서비스를 통해 별도의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해야만 승차할 수 있었다.


ICE L은 무단차 출입문뿐만 아니라 휠체어 이용객을 위한 넓은 좌석, 높이 조절 테이블 설치, 장애인을 비롯한 누구나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넓은 화장실 등을 마련했다. 또한 가족석과 유아동반석, 자전거 거치대 등 다양한 이용자층을 배려했다.
이 같은 접근성 중심 설계는 한국의 KTX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KTX는 여전히 플랫폼에서 객실로 진입하려면 계단을 올라야 하는 '고상형 구조'를 유지하고 있어 휠체어 이용객은 승무원 등의 도움을 받고 리프트 장비를 이용해야만 탑승할 수 있다. ICE L은 이러한 구조적 제약을 완전히 해소하며, 휠체어 이용자도 '혼자 타고 내릴 수 있는' 고속열차라는 새로운 표준을 제시한 셈이다.
지난 17일(현지시각) 열린 공개 행사에서 파트리크 슈나이더 연방교통부 장관은 "고객이 철도 위에서 다시 왕이 돼야 한다"며 "단차 없는 접근, 가족 친화적 좌석, 향상된 통신환경 등 새로운 ICE는 수 백만명의 이동 경험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에블린 팔라 DB AG 대표는 "새 ICE L은 승객에게 더 큰 편안함과 신뢰성을 제공하겠다는 DB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모든 신형 열차는 안정적 운행에 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ICE L은 오는 12월14일부터 베를린~쾰른 구간에 투입되며, 이후 내년에는 베를린~함부르크~슈투트가르트, 프랑크푸르트~기센, 쾰른~뮌스터 등 관광 노선으로 확대된다. 장기적으로는 암스테르담·코펜하겐·빈 등 국제 노선에도 운행될 예정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