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익수의 닥치GO] '잊혀질' 계절, 가을

2025. 10. 2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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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까지 폭염 이어지며
국화축제 한달 미뤄지고
붉은 단풍은 점점 실종
나들이 하기 좋은 계절
더 짧아지지 않도록…
탄소저감 위한 노력을

내 별명은 '추남(秋男)'이다. 못생겨서라는 오해는 마시길. 가을 하고도 10월에 태어난 가을 남자여서, 어쩔 수 없이 붙은 애칭이다. 어감은 이상해도 난 이 별명이 좋다. 남자의 계절, 가을. 바바리코트 깃을 세운 가을 남자라니, 얼마나 멋진가.

그러고 보니 '생일송'처럼, 10월의 마지막 밤을 앞둔 이 즈음, 꼭 들어야 하는 노래가 있다.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만 나와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가사가 떠오르는 세대라면 안다. 10월만큼은 이 노래 앞에 모든 가요들이 무릎을 꿇었다는 걸. 기록도 전설이다. 단일 국가에서 하루 137회 방송을 기록, 최다 방송(하루)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폭주하는 10월 스케줄에 헬기를 임대해 서울, 대전, 부산 찍고 제주 무대까지 서기도 했으니. 오죽하면 이용이 직접 1년 수입의 90%를 10월에 번다고 했을까.

'잊혀진 계절' 얘기를 꺼낸 건 이유가 있다. 가을이 심상치 않다. 노래 제목처럼 '잊혀지고' 있다. 올해만 해도 그렇다. 사상 처음 9월에 폭염경보가 내려지는 등 이상고온현상이 끝까지 기승을 부렸다. 9월 첫주 온열질환자가 전국적으로 무려 83명이 쏟아지는 이례적인 현상도 나타났다.

가을 대표 나들이 코스가 되는 지역 축제도 잇따라 비상이다. 9월 말 예정이었던 신안 퍼플섬의 아스타(국화) 꽃축제는 10월 말로 한 달가량 연기됐다. 정원 내 3만2500㎡ 용지에 국화종인 '아스타' 24만그루를 심었지만 개화율이 10% 수준에 그쳐버린 탓이다.

이미 작년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경북 봉화의 대표 축제인 송이 축제는 송이 없이 개최되는 해프닝을 빚었고, 불갑산의 대표 상사화 축제는 '뒷북 개화'하면서 나들이객들의 불만이 쏟아지기도 했다. 단풍 구경도 예측불허다. '피아골은 특히나 유별났다. 주황빛이나 주홍빛의 단풍들 사이에서 핏빛 선연한 그 단풍들은 수탉의 붉은 볏처럼 싱싱하게 돋아 보였다'는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 속 표현도 말짱 뻥이 되고 있다. 이상고온에 붉은 단풍은 자취를 감췄다. 붉은 색소를 만들어 내는 안토시아닌은 열에 약하다. 열에 강한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발현되면 노란색이 된다. 이러니 물드는 시기도 들쭉날쭉이다. 최근 5년간 첫 단풍 시기는 1990년대보다 12일 늦어졌고, 오대산과 내장산은 단풍 시기가 약 8일가량 밀렸다.

'잊혀지는 가을'에 바빠진 곳은 기상청이다. 최근 기상청은 우리나라 계절별 길이를 재조정하는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계절별 길이에 변화를 주는 것은 우리나라 근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무려 117년 만의 일이다.

우리나라 계절은 비교적 규칙적이다. 봄(3~5월), 여름(6~8월), 가을(9~11월), 겨울(12월~2월) 3개월 단위로 딱딱 구분된다.

변수가 생긴 건 이상 고온으로 인한 여름의 팽창 탓이다. 과거 여름 평균 일수는 1년 중 98일이었는데, 최근 10년 사이 이 일수가 127일로 늘어난 것이다. 여름 시작일부터 종료일을 보면 이해가 쉽다. 과거엔 6월 11일~9월 16일이던 것이 최근 10년 사이엔 5월 25일~9월 28일로 더 길어졌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기상학자들의 예상 시나리오는 이렇다. 한반도는 점점 봄 시작 시점이 빨라진다. 여름은 길어지고, 겨울은 짧아진다. 2050년이 되면 현재 97일 안팎인 여름이 117~131일까지 늘어나고, 21세기 말인 2100년쯤엔 최대 169일까지 확장된다는 관측도 있다. 핵심은 가을의 소멸이다.

이거 꽤나 충격적이다. '뽀송뽀송' 최적의 나들이 계절, 가을이 여름에 밀려 사라진다니. 바스락 낙엽소리도, 기분 좋게 서늘한 밤공기도 잊혀진다니. 그러고 보니 내 별명 '추남'까지 사라질 위기다. 이러다 '추남'이 아니라 '여름남'이 되게 생겼다.

기후변화, 이거 무섭다. '잊혀진 계절'이 될지 모를 '가을', 아니 내 별명 '추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온실가스,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작은 노력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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