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슈퍼 어게인’을 쓰겠습니다

"재능은 오랜 인내다." 프랑스의 사실주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남긴 이 말은 영국 소설가 서머싯 모옴을 거쳐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플로베르는 문장을 한 줄 쓰는 데도 며칠을 들일 만큼 완벽을 추구했고, 모옴 역시 의대 공부를 하면서 밤마다 글을 쓰는 오랜 습작 시절을 거쳐 작가로 자리 잡았다. 그들에게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견디고 쌓아 올린 결과였다.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jtbc)의 심사 방식 중 '슈퍼 어게인'이라는 게 있다. '슈퍼 어게인'은 심사위원이 탈락 위기의 참가자에게 사용하는 특별 찬스다. 심사위원이 자신의 권한을 써서 탈락 직전의 참가자에게 "이 사람은 다시 볼 가치가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 가능성과 진심을 알아보는 직관이자, 인내의 시간에 대한 최상의 찬사다. 무대에 선 참가자들은 대부분 무명, 혹은 잊힌 가수들이다. 그들은 오랜 시간 무대 밖에서 음악을 갈고닦아왔다. 슈퍼 어게인을 사용하는 순간은 심사위원으로서 내가 그 인내의 무게를 감지했다는 의미이고 동시에 누군가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용기다.
우리의 교육제도와 인재 선발 제도에도 슈퍼 어게인이 절실하다. 성과주의와 오도된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는 슈퍼 어게인은 고사하고 어게인 기회도 드물다. 오디션 프로그램 기획자들은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목말라 하는 지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관점에서 도입한 제도라 해도 실패의 서사를 다시 들려주고, 재도전의 기회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박수받을 만하다.
경기 재도전학교가 올해 4차례 진행되어 200명이 수료했다. 이 가운데 25%는 스마트스토어, 무역업, 교육, 서비스, 복지 분야에 취업했거나 창업에 성공했다고 한다. 도전 경쟁률이 1300명이었고, 재도전 성공은 50명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좁디 좁은 문이지만, 슈퍼 어게인이 한 차례라도 더 작동한 사례일 것이다.
교육제도가 성공하려면, 재능 있는 인재는 언젠가 반드시 슈퍼 어게인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사회 저변에 흐르는 게 중요하다. 그럴 때 슈퍼 어게인은 우리 사회의 정서적 자산이자, 문화적 자본이 된다. 슈퍼 어게인이 살아 있으면 사회는 따뜻해지고 회복력이 커진다. 삶의 어느 단계에서든 "다시 한 번"을 절박하게 외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그 믿음을 퍼뜨리는 방법은 내가 먼저 가족의 울타리 너머 누군가에게 슈퍼 어게인의 시선을 보내는 게 아닐까.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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