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기업의 '개명'에는 다 이유가 있다

김아름 2025. 10. 2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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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이름 바꾸는 유통사 늘어
롯데제과·삼양식품그룹·BHC·한국야쿠르트 등
사업 확장과 함께 사업 포괄하는 이름으로 변경
그래픽=비즈워치

My name is

여행이나 출장 등으로 낯선 곳에 가서 처음 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나에 대해 가장 먼저 알리는 정보는 아마 이름일 겁니다. 그만큼 이름은 '나'를 가장 짧은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상징입니다. 유명인과 이름이 같은 동명이인들에게 그 유명인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도 비슷한 이유겠죠. 이름이 '차은우'면 왠지 잘 생겼을 것 같은 거죠. 

그런데 '나'를 구성하는 다른 요건과 달리 이름이 영원불멸한 건 아닙니다. 예전에야 이름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이라도 평생을 안고 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개명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습니다. 제 주변에도 이름이 유달리 촌스럽거나 자신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개명을 한 경우가 있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기업들은 창립 당시 지은 이름을 이어가며 '헤리티지'를 말하지만 또 어떤 기업은 원래 어떤 기업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쉴 새 없이 이름을 바꾸기도 합니다. 이름을 자주 바꾸는 기업이라면 '블랙 기업'일 가능성이 높으니 피하라는 취업 팁도 있을 정도죠.

사진=pexels

유통업계에도 최근 이름을 바꾼 기업들이 꽤 있습니다. 물론 '블랙 기업'은 아닙니다. 롯데제과, bhc, 한국야쿠르트 등 오히려 누구나 알 만한, 잘 나가는 기업이 대부분입니다. 전국민이 아는 이름을 가진 기업들이 이름을 바꾼다면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같은 이유는 아닐 겁니다. 이들은 왜 수십년 간 써 왔던 회사의 이름을 바꾼 걸까요. 

우선 최근 들어 이름을 바꾼 기업들이 어디인지 짚어 보겠습니다. 가장 큰 기업으론 롯데제과가 있습니다. 1967년부터 써 온 이름이고 우리나라에서 한 손에 꼽히는 그룹인 롯데그룹의 모태입니다. 롯데제과는 지난 2023년 4월 롯데웰푸드로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롯데푸드와 합병한 후 새 이름을 고민하다가 '웰푸드'로 결정했죠. 전세계의 K푸드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삼양식품의 지주사인 삼양식품그룹도 같은 해 7월 이름을 삼양라운드스퀘어로 바꿨습니다. 

이전 이름을 찾아볼 수 없게 완전히 새로운 이름을 쓴 기업들도 있습니다. '뿌링클'로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시장의 트렌드를 바꿔 놓은 bhc는 원래 모태인 '별하나치킨'의 영어 약자를 딴 이름이었는데요. 지난해 8월 사명을 '다이닝브랜즈그룹'으로 바꿉니다. '야쿠르트 아줌마' 하면 떠오르는 한국야쿠르트는 2021년 사명을 '에치와이(hy)'로 변경했습니다. 최근엔 주방용 랩 하면 떠오르는 '크린랲'이 사명을 '크린랩'으로 바꿨습니다.

난 이제 더이상 OO가 아니에요

이들의 '개명'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사업의 확장입니다. 기존 사명이 현재의 사업 범위를 다 담지 못하고 있어 사명 변경으로 사업 확장의 의지를 널리 알리겠다는 겁니다. 롯데제과를 볼까요. 이름부터 '과자 만드는 곳'이라고 돼 있죠. 실제 롯데제과의 주력 사업은 제과였습니다. '였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지금 혹은 앞으로는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우선 빙과류와 간편식이 주 사업인 롯데푸드와의 합병이 있습니다. 롯데푸드와 합병하면서 롯데제과의 사업 범위가 크게 넓어졌죠. 이름만 생각하면 롯데제과보다는 롯데푸드 쪽이 더 적절하게 보입니다. 여기에 미래에 대한 고민이 더해집니다. 출산율 저하, 건강 중시 트렌드 등의 영향으로 제과 사업은 수 년째 정체 중입니다. 반면 가정간편식, 대체단백질, 케어푸드 등은 미래 성장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죠. 사명을 '웰푸드'로 정한 건 롯데가 앞으로 이 사업들을 키워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겁니다.

bhc 역시 비슷합니다. bhc는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뒤 다양한 외식 브랜드를 인수했습니다. 스테이크 전문점인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한우 전문점인 창고43, 수입 소고기 브랜드 그램그램, 순대국 전문점 큰맘할매순대국 등 영역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기업명인 bhc는 '치킨집'으로 각인이 돼 있죠. 이 때문에 다양한 외식사업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다이닝브랜즈'를 선정한 겁니다.

윤호중 hy 회장./그래픽=비즈워치

'유산균 대표 기업' 한국야쿠르트도 유산균 음료를 넘어 냉장 물류·채널·플랫폼 등 유통 사업과 마이크로바이옴 등 기능성 소재 등 사업 확장을 염두에 뒀습니다. 원래 사명으로는 아무래도 '야쿠르트 파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생길 수밖에 없죠. 창업주인 고(故) 윤덕병 회장이 2019년 사망한 뒤 장남 윤호중 회장이 주도한 개명입니다. 눈에 띄는 건 한글 사명 '에치와이'인데요. 이미 '에이치와이'라는 기업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양식품그룹은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아예 '식품'을 떼고 '라운드스퀘어'라는 다소 알쏭달쏭한 이름을 지었습니다. 라운드는 '원(circle)'을, 스퀘어는 사각형을 의미하는데요. 브랜드 CI에도 두 도형을 형상화했죠. 식품, 그것도 라면에 치중돼 있는 사업을 푸드케어와 이터테인먼트라는 두 축으로 확대하겠다는 포부를 담았습니다. 불닭볶음면에 매출 대부분을 의존하는 지금은 다소 뜬구름잡는 이야기지만, 10년 혹은 20년 후엔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요.

삼양식품그룹의 새 이름과 로고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는 전병우 본부장./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한 곳만 더 살펴볼까요. 주방용품인 '랩'의 대명사인 '크린랲'입니다. 지난해 사명을 '크린랩'으로 바꿨습니다. 일단 랩(wrap)을 일반적으로 '랩'이라고 쓴다는 점이 중요하겠죠. '랲'이라는 글자가 아예 깨져서 보이는 웹 페이지도 많습니다. 여기에 랩을 'lab(연구소)'로 해석해 랩(wrap) 뿐만이 아닌 위생용품 전반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의미도 담았습니다. 현재 크린랩은 랩이나 플라스틱 백 뿐만 아니라 장갑이나 물티슈, 위생용기, 청소 세제까지 판매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을 바꾸는 것도 수많은 고민이 있은 후에야 가능한 일입니다. 삶의 방향성을 바꾸거나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 위한 결정일 수도 있습니다. 수천, 수만 명의 삶이 엮여 있는 기업이 이름을 바꾸는 것에도 그만한 이유와 논리가 있습니다. 앞으로 '개명'하는 기업을 보게 된다면 뭔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다음 개명 기업은 어디일까요? 예상해 보시죠.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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