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싱 랠리’의 끝, 인플레이션이 문을 두드린다 [김학균의 시장 읽기]
돈의 힘으로 부풀려진 호황이 꺼질 때, 시장의 민낯이 드러난다
(시사저널=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금(金)은 역사적으로 세상이 어수선할 때 빛을 발하곤 했다. 세계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경기 침체)'으로 신음했던 1970년대에 금 가격은 장기 상승했고,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의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도 금값은 상승세를 나타냈다. 스태그플레이션 시기로 볼 수 있는 1971년 8월부터 1980년 1월까지 미국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S&P500지수가 17.2% 상승에 그치는 동안 국제 금 가격은 1975%나 급등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정점에 달했던 2008년 11월에서 2009년 3월까지의 기간에도 S&P500지수가 20% 하락하는 동안 금 가격은 29% 상승했다. 때때로 금 가격은 불안을 먹고 자란다. 금이 안전자산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도 금 가격 상승세가 놀랍다. 10월21일까지의 연간 상승률이 65.5%에 달한다. 금 가격 급등세는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불길한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전조일까. 미·중 갈등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 대충격 혹은 보호무역과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도래 또는 구미권 정부의 재정위기 서막일까. 모두가 현실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인들이지만, 최근의 금 가격 급등세는 '안전자산'으로서의 금의 특성에 기인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과잉 유동성'이 모든 자산 밀어올려
금뿐만 아니라 위험자산을 대표하는 주식 가격도 함께 상승하고 있다. 주식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유형의 주가가 더 강하게 상승하고 있다. 선진국 주식보다는 신흥국 주식이, 가치주보다는 성장주 주가가 더 빠르게 오르고 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한국 코스피는 연일 상승세를 나타내면서 3800포인트대라는 미증유의 고지에 올라섰다. S&P500과 다우·나스닥지수 등 미국 3대 주가지수가 이번 달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심지어 재정 건전성 악화가 부각되고 있는 영국 FTSE100지수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이 좌초 위기에 몰리면서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프랑스 CAC40지수도 사상 최고치에 거의 근접하고 있다. 주식뿐만 아니라 안전자산의 상징인 미국 국채 가격도 상승(금리 하락)하고 있다.
최근에는 안전자산인 금 가격만 상승하고 있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자산 가격이 동반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요즘의 신조어인 '에브리싱 랠리(everything rally)'의 실체다. '에브리싱 랠리'는 자산 간 전통적 상관성이 깨졌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위험자산을 대표하는 주식과 안전자산을 대표하는 채권 가격은 엇갈린 방향으로 움직이곤 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뚜렷한 동행성을 나타내고 있다.
'에브리싱 랠리'는 세상에 풀린 유동성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돈의 힘으로 거의 모든 자산 가격이 오르고 있다. 주춤하던 글로벌 증시가 동반 상승세로 반전됐던 시기는 지난 9월 미국의 금리 인하를 전후한 때였다. 10월 들어서는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파월 의장이 연준이 보유하던 국채를 시장에 매각하면서 유동성을 줄여왔던 양적긴축(QT) 정책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앙은행발 유동성 팽창이 '에브리싱 랠리'의 토양이 되고 있다.
'과잉 유동성'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경제활동에 필요한 유동성 규모를 초과해 공급된 돈의 양이 '과잉 유동성'의 정의다. '과잉 유동성' 규모를 명확한 수치로 특정하기는 어렵다. 실제 경제활동에 필요한 돈의 규모를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일정 부문 추론을 통해 기간별 비교를 할 수는 있다. 화폐, 즉 돈은 실물경제 활동의 보조적 기능을 한다. '거래의 매개' 기능이 대표적이다.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국가 내에서 이뤄진 최종적 거래활동의 합계인 GDP(국내총생산)는 실물경제 활동의 총량과 비슷한 지표(proxy)라고 볼 수 있다. 중앙은행 재무상태표상 자산은 중앙은행이 최초로 경제에 공급한 유동성을 의미하는 본원통화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플레가 현실이 되는 순간, 동반 하락 불가피
'GDP 대비 중앙은행 자산 규모'는 실물경제 대비 화폐 영역에서 풀린 돈의 규모를 가늠하는 잣대로 활용될 수 있다. 중앙은행발 유동성 팽창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부터 본격화됐다. 금융위기 이전 '미국 GDP 대비 연준 자산' 비율은 오랫동안 6% 선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돼 왔다. 그렇지만 금융위기 이후 연준이 양적완화(QE) 등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시행하면서 이 비율은 2014년 10월 25.2%까지 높아졌다. 실물경제 규모에 비해 풀린 돈의 규모가 위기 이전보다 4.2배나 늘어난 셈이다. 이후 경제가 극단적 위기에서 벗어나자 연준은 양적긴축을 통해 시중에 풀어놓은 유동성을 흡수해 이 비율을 코로나19 발생 직전이었던 2020년 1월말 18.9%까지 낮췄다. 이후 코로나19라는 대역병이 창궐하면서 연준은 또다시 유동성 공급을 늘렸다. '미국 GDP 대비 연준 자산' 비율은 2016년 11월말 36.2%까지 급등했다. 사상 유례없는 유동성 홍수였다. 이후 연준은 양적긴축이라는 출구전략을 시행하면서 이 비율을 9월말 현재 21.6%까지 낮췄다. 최고치 대비 많이 낮아졌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보다는 3.6배나 유동성이 더 풀렸고, 코로나19 발생 직전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중앙은행이 풀어놓은 유동성을 실물경제의 활력으로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매우 약해졌다. 실물경제의 기반이 약하니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장기적으로 완화 지향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고, 이런 힘이 또다시 자산시장을 부양하고 있다.
끝은 언제일까? 풀어놓은 돈이 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될 때다. 물가가 불안하면 중앙은행이 돈을 풀기 어렵다. 2022년이 대표적 사례다. 당시 물가가 불안하게 움직이면서 연준이 금리를 올리자 모든 자산시장이 무너졌다.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S&P500지수가 25.4%나 급락했다. 금리가 급등하면서 채권 투자자도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다. 금은 버텼을까? 당시 금 가격도 20.8% 급락했다. '에브리싱 랠리' 이후에는 어디에도 숨을 구석이 없는 동반 하락 장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고, 계기는 물가의 불안이 될 것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물가를 늘 체크리스트에 올려놓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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