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붕괴, 이젠 다르게 찍어야… AI에 ‘변화·생존’ 기대”
격년으로 여는 전남 신생영화제
광양항에 특별관 만들어 상영회
‘서울의봄’ 광화문대치 촬영장소
“장맛비 속에서 영하 12도 연출”
배우 김성균과 뒷이야기 풀어내
“차기작은 액션물과 범죄수사물
신선함 위해 시나리오 두번 엎어”

광양=김인구 문화부장

영화 ‘서울의 봄’(2023)으로 1300만여 관객을 모은 김성수 감독을 지난 23일 전남 광양에서 개막한 남도영화제 시즌2에서 만났다. 남도영화제는 전남의 22개 시군을 돌며 격년제로 열리는 신생 영화제다. 김 감독은 24일 ‘서울의 봄’ 상영회 및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배우 김성균 등과 함께 영화제를 방문했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 상영장의 200여 석이 영화팬으로 가득 찼다. 김 감독은 “이곳이 ‘서울의 봄’의 촬영지였다”면서 “그 이후로 처음이다.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3년 전 촬영하던 그날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에게서 촬영의 뒷얘기를 처음으로 들었다.
상영회가 진행된 곳은 스타인벡코리아 광양항 컨테이너 특별관. 수출 선박용 트레일러가 쌓여있는 곳이다. 유난히 무덥고 장마가 길었던 2022년 6월, 이곳에서 ‘서울의 봄’의 하이라이트 엔딩인 ‘광화문 광장’ 신이 촬영됐다. 이태신(정우성) 장군이 전두광(황정민)의 쿠데타 세력에 맞서 혈혈단신 겹겹이 놓인 트레일러 바리케이드를 뚫고 나아가는 장면이다. 역사적으론 12월 한겨울 추위 속에 세종로 중앙청 앞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실제 촬영 장소는 광양항의 트레일러 세트장, 계절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여름의 초입이었다.
“이 장면을 실제처럼 재현하는 게 가장 큰 숙제였다. 장소 섭외에 고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먼저 세트 촬영을 한 ‘무빙’ 스태프의 소개로 여기를 알게 됐다. 도로 아스팔트, 인도와 가로수, 벽과 문 등 하부 세트는 직접 제작하고 상부는 그린 스크린으로 세웠다. 하부 공사에만 4개월, 촬영엔 3주가 걸렸다. 무더운 열기 속에 장맛비가 내리던 때라 ‘컷’ 사인을 할 때마다 스태프들이 걸레로 바닥의 물기를 닦아가며 정신없이 촬영한 기억이 선명하다. 오죽했으면 배우들에게 ‘지금 영하 12도 상황입니다. 땀 흘리지 마세요’라고 주문했을까. 하하.”
그때는 식은땀이 났겠지만 그로부터 3년 만에 방문한 현장에서 그때의 에피소드를 떠올리는 김 감독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팬들의 질문에 기꺼이 응했다.

김 감독은 1997년 ‘비트’와 1999년 ‘태양은 없다’로 소위 ‘공전의 히트’를 한 스타 감독이다. 그러나 2001년 ‘무사’, 2003년 ‘영어완전정복’을 기점으로 이후 2013년 ‘감기’로 컴백하기까지 10년간 공백기가 있었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무사’ 이후 영화 제작사를 만들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중국에 합작회사도 하는 등 다른 일을 하면서 10년 세월을 흘려보낸 듯하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영화 현장에 있던 게 제일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났고, 다시 하려는 욕심이 앞서다 보니 더 안됐다. ‘감기’로 컴백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문득 이 나이가 되도록 자기 방식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반성도 하게 됐다. 그래서 진짜 하고 싶었던 방식대로 시나리오를 쓴 게 ‘아수라’(2016)였고, ‘아수라’를 좋게 본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가 ‘서울의 봄’ 연출을 제안해서 하게 된 것이다.”
상영회에 함께한 배우 김성균도 그때를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서울의 봄’에서 진압군 진영의 육군본부 헌병감으로 활약했다.
“감독님의 현장에서 배운 게 많다. 감독님은 보조 출연자들에게까지 일일이 상황을 설명했다. 실제 역사 속 그 상황에 들어와 있다는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매일 촬영 전, 쉬는 시간에도 시나리오를 정독하던 모습이 인상 깊다. 그런 걸 보니 배우로서 절로 책임감이 생겼던 것 같다.”
김 감독은 남도영화제에 참여하기 직전에는 4년 만에 부활한 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나이 환갑이 넘어 얻은 ‘천만영화 감독’이라는 타이틀의 무게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할 수 있다. 김 감독은 미쟝센단편영화제 폐막식에서 ‘대상’이 없는 수상작들을 선정·발표하면서 한국영화 위기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요즘 한국영화가 아예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붕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면서 극장과 한국영화의 위기를 넘기 위해서는 “경험하지 못한 화법과 이야기, 새로운 사람들의 등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생각은 광양에서도 같았다. 그는 ‘변화’를 다시 강조했다.
“1980년대 말의 충무로에도 한국영화 위기가 팽배했다. 미국 할리우드 외화의 직배(직접 배급)로 한국영화가 붕괴될 위기에 놓이면서 반발이 심했다. 그때 생각한 것도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매력적인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다르게 찍어야 한다고 믿었다.”
김 감독은 요즘 인공지능(AI) 영화를 공부하고 있다. 한국영화 변화와 생존의 길 중 하나가 AI 영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강윤성 감독의 AI 영화 ‘중간계’를 보고 왔다. ‘무사’의 연출부 후배인 강 감독의 작품이기에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지만, 너무나 훌륭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AI 장편상업영화의 ‘퍼스트 펭귄’(선구자나 도전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많은 과제도 남겼지만 첫발을 내디딘 것은 대단한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이제 관심은 김 감독의 차기작으로 쏠린다. 그는 하이브미디어코프, CJ ENM과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복수로 진행 중이다. 하이브는 액션, CJ는 범죄수사물이다. CJ쪽 프로젝트가 먼저 진행될 것 같은데 최근 시나리오를 두 번 엎은 후 다시 쓰고 있다. 엎은 이유는 관객들의 스타일은 날로 변하는데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도 팔짱을 낀 채 옛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 것 같아서였다. 내년 중에는 촬영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때 김성균 씨는 무조건 같이하고 싶다. 하하.”
김인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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