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보인다는 美, 끝까지 가본다는 韓
대통령실 “여전히 쟁점 남아, 마지막 조정 위해 협상팀 분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 시각) 한미 간에 진행 중인 관세 협상과 관련해 “타결(being finalized)에 매우 가깝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 순으로 방문하는 아시아 순방길에 나서며 전용기 안에서 가진 기자들과 문답에서 ‘이번 방문에서 한국과 관세 협상을 마무리할 것으로 기대하느냐’는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한국)이 준비가 된다면, 나도 준비가 됐다”라고 했다. 한미 간의 입장 차이가 큰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합의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미는 지난 7월 관세 협상의 큰 틀에 합의했지만,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펀드의 투자·운용 방식에서 이견을 보이며 협상을 계속해 왔다. 최근 협상에서도 미국은 연평균 250억달러씩 8년간 2000억달러를 한국이 ‘직접 현금 투자’ 해야 한다고 요구한 반면, 우리 정부는 1년에 최대 150억달러 이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 26일 “관세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희망하는 원론적 발언”이라며 “밀도 있게 협의가 진행 중이지만 구체적 타결 시점은 확정된 바 없다”고 했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도 이날 KBS에 출연해 “여전히 주요 쟁점이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위 실장은 “대통령은 경제적 합리성과 국익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협상하라는 상당히 강한 훈령을 줬고, 그 훈령에 따라 마지막 조정을 위해 협상팀이 분투하고 있다”며 “이번 정상회담 계기에 타결되는지는 확신하지 못한다”고 했다. 29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협상을 타결할 목적으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란 취지다.
대통령실은 “특정 시한을 설정하기보다 국익 극대화 관점에서 상호호혜적 결과가 도출되도록 최선을 다해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다만 위 실장은 이번 정상회의 계기를 “손쉽게 흘려 넘기겠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했다.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관세 담판 앞두고… “트럼프 특유의 막판 압박 시작된 것”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 시각)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면서 한국과 관세 협상에 대해 “타결에 매우 가깝다”며 “한국이 준비가 된다면, 나도 준비가 됐다”고 언급하자, 우리 정부 안에서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막판 압박이 시작됐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오는 29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CEO 서밋 참석차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할 예정이다.
◇“쟁점 해결되지 않은 그대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양국 논의의 핵심은 ‘직접 투자’ 규모”라며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를 두고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했다. 여전히 이견 차가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6일에도 “쟁점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라고 전했다.
통상 전문가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협상 진전 신호’라기보다는 협상의 ‘공’이 한국으로 넘어간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한국이 준비되지 않아 타결이 늦어진다’며 ‘협상 지연의 책임을 한국 측에 돌리려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정인교 전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인하대 교수)은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한국이 말을 바꿨다’고 하고 싶은 것”이라며 “이번에 마무리가 되지 않으면, 결국 지난 7월의 타결 이후 누가 말을 바꿨느냐의 문제로 논의가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지난 8월 미국에서의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서 숙청,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라며 긴장감을 끌어올리지 않았느냐”며 “말레이시아, 일본을 먼저 방문하는 동안 또 한국을 압박하는 발언이 나올 수 있다”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미·중 무역 협상과 관련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향해서도 “그들은 양보해야 한다. (양보하면) 우리도 그럴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미·중 정상회담은 30일 열릴 예정이다.
◇안보 분야 등 합의문 발표 조율
우리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관세 협상을 완전히 마무리 짓지는 못하더라도, 양측 합의 사항을 넣은 합의문을 발표하기 위해 미 측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말 관세 협상 때는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펀드 조성에 합의했지만 이를 ‘문서화’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후속 협의에서 이견이 드러나며 난항을 겪었고, 대미 자동차 관세도 25%로 유지됐다. 안보 분야의 경우 8월 하순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이미 한국의 국방비 증액 등을 담은 합의 사항을 만들었지만, 관세 협상 지연으로 발표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양국 합의로 작성되는 양해각서(MOU)나 공동성명(Joint Statement), 한국 또는 미국 한쪽이 협의 내용을 정리해 발표하는 ‘팩트시트(Fact Sheet)’ 등 다양한 형식을 검토하며 합의문을 준비 중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6일 KBS에 출연해 “팩트시트도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하는 형태가 있고, 서로 합의해서 하는 조인트 팩트시트라는 것도 있다”면서 “조인트로 하면 그것도 공통의 문서이고 합의 문서와 같다”고 했다.
위 실장은 현 상황에 대해 “그런 문서 작업을 해왔고, 안보 분야는 (합의문에 넣을) 문구들이 공통으로 양해가 돼 있는데, 관세 분야는 공통 문서에 이르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대통령실 내부에는 “쟁점을 뺀 합의문을 발표할 거라면 하지 말자”는 의견도 꽤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막판 타결 가능성? “트럼프에 달렸다”
위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특이한 협상가 기질을 갖고 있고 이 대통령도 그런 기질을 가졌다”며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정부 안팎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상 이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무리한 직접 현금 투자 요구를 거두어들여 진전이 이뤄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왔다.
박태호(서울대 명예교수)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궁극적으로 이번 협상의 열쇠는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에 달려 있다”며 “그간 우리가 수차례 방미해 제시해 온 합리적 제안을 토대로 APEC 기간 동안 트럼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만으로도 협상 동력을 다시 살릴 수 있는 성과가 될 것”이라고 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이미 양국이 서로의 입장은 충분히 확인한 상태에서 마지막 쟁점에 대한 선택만 남은 상황으로 보인다”며 “여러 기업이 겪는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절충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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