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에도 중요한 건 ‘재미’...“유치해 보여도 진심 녹아 있어요”
내달 6일부터 수상 기념전

‘밥 아저씨(밥 로스)’ 같은 곱슬머리 반백의 화가는 푸근한 미소에 “재미”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눈이 반짝였다. 지난 21일 경기 고양시 작업실에서 만난 제37회 이중섭 미술상 수상자 화가 곽남신(72). 다음 달 6일 개막하는 수상 기념전에서 선보일 작품을 선정하는 일이 한창이었다. 성인 키만 한 그의 캔버스 속 얼굴 없는 ‘그림자’ 인물들이 슬금슬금 움직이는 듯했다.
곽남신은 1970년대 유행했던 단색화의 영향 아래 옅게 어린 식물 그림자를 그린 그림으로 주목받은 작가다. 하지만 곧 생각의 ‘갱신’ 없이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모두 뒤로한 채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돌아온 뒤 홍익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다채로운 작품 활동을 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돌고 돌아 70대에 다시 보여주는 그림자 세계. 이날 작업실에서 미리 만난 전시 예정 그림들은 20대의 곽남신이 그린 그림보다 위트와 실험 정신이 돋보였고 표현 방식도 한층 다채로웠다. 그가 직접 작업실 중앙에 나와 있는 단순한 흑백 그림 ‘추락연습’을 보며 작품에 담고자 한 의미를 설명했다. 까만 도형 사이로 떨어지고 있는 그림자 인물 그림이다. 평면적인 나머지 부분과 달리 인물 상체 일부가 3차원 조각처럼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서로 다른 차원을 한 그림 안에 병치했는데 입체로 그린 부분을 실재처럼 보이게 하는 건 그림자예요. 그림자 인물을 실재하게 보이게 하는 또 다른 그림자가 있는 거죠. 제 그림에는 허구의 허구가 들어 있어요. 인간 세상이 모두 그림자 같은 허상을 좇아 사는 것이 아닌가. 누구를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이런 생각들을 하며 저만의 즐거움으로 작업을 합니다.”
찰리 채플린을 좋아한다는 그의 작업실엔 ‘모던 타임스’의 찰리 인형이 걸려 있었다. 찰리 채플린처럼 자신의 작품에도 “인간 세상의 덧없음과 애수, 그리고 유머를 담는다”고 했다. 허무를 다루지만 이를 대하는 태도가 무겁지 않고 산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진지함을 깨는 재치 있는 작품 제목은 그의 작품을 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작업을 위해 그는 작업실 한편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철사 등을 구부리며 먼저 ‘놀듯이’ 그림자 인물의 형태를 만든다. 만족스러운 형태를 찾으면 사진으로 찍은 뒤 캔버스 등에 옮기는 식으로 작업한다. 그에겐 ‘재미’가 작업의 1순위다. 곽남신은 ‘완색이유득(玩索而有得)’이라는 ‘중용’ 구절을 들려줬다. ‘가지고 놀다 보면 얻는 것이 있다’는 뜻. “50년 동안 한 가지 주제만 그리는 화가도 대단하지만 저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재미가 중요해서 그럴 수 없었어요. 우리가 멋있다고 하는 것은 익숙한 것을 생산하는 거잖아요. 그걸 창의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우리 세계를 넓혀주고 또 다른 쪽의 감수성을 갖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이중섭 미술상 수상을 계기로 작가 이중섭과 공통점이 있는지 물었다. 곽남신은 “좀 더 멋있는 작가처럼 그림을 생산하려 하지 않고 진지하게 자기만의 경계 안에서 우월감 없이 해나가는 점이 비슷한 점이지 않을까”라며 “큰 사람은 못 되더라도 인류를 구제할 대단한 사고방식이나 재능을 가졌다는 우월감 없이 해나갔던 이중섭의 면모가 좋다”고 했다. “대교약졸(大巧若拙·훌륭한 솜씨는 허술한 듯 보인다)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유치해 보이더라도 진심에서 우러난 좋은 작품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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