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맛대가리’] 진주냉면, ‘전통’이라는 말맛의 무게

조용준 맛칼럼니스트 2025. 10. 2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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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자·남강 등 저마다 원조 주장
영광 오래가려면 서사 투명해야
한 점의 진실 고명처럼 올릴 때
‘맛-전통’ 같은 농도로 느껴져

진주냉면. /조용준 제공

조용준 맛칼럼니스트

얼마 전 을지로를 지나다 ‘박군자 진주냉면 본점’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오래된 느낌은 아니다. 박군자 진주냉면은 특별한 기억이 있다. 2013년 어느 밤, 수원 나혜석 거리의 상인들이 모였다. 한창 저녁 장사를 해야 하는 시간인데도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곳은 마치 유령도시 같았다. 상권을 살리고자 모인 상인들의 고심은 깊었다. 그런데 몇 개월 후 SBS ‘생활의 달인’에 박군자 진주냉면이 소개되었다. 과하리만큼 칭송 일색의 내용이었다. 그래서인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8월의 무더위에도 대기 줄이 도로까지 이어졌다. 한산하던 나혜석 거리는 모처럼 북새통이었다. 주변 카페도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 박군자 진주냉면은 핵점포 부재로 침체한 나혜석 거리에 행운의 핵폭탄이었다.

진주냉면이 궁금해졌다. 족보를 따져보니 진주냉면은 진주의 ‘하연옥’에서 시작해야 한다. 하연옥은 진주냉면의 본산지이다. 하연옥은 가게 이름이자 냉면집 사장의 이름이다. 하연옥씨의 부모님인 하거홍, 황덕이 부부는 1945년에 진주중앙시장에서 냉면집을 시작했다. 이때는 별다른 상호가 없었다. 1962년 진주 중앙시장 전체에 큰 화재가 있었다. 별다른 상호 없이 운영했던 냉면집도 전소했다. 이후 이들은 진주 서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에서 ‘부산식육식당’이라는 상호로 냉면, 국밥, 수육 등을 팔았다. 여름철 냉면의 인기가 좋아지자 1989년에는 아예 상호를 ‘부산냉면’으로 바꾸었다.

여기서 중요한 인물이 한 명 등장한다. 진주 향토 음식 연구자 김영복씨이다. 그는 사라진 진주냉면의 맥을 복원하고자 했다. 문헌과 구전을 대조하고, 마지막 경험자들을 찾아 각자 조리하게 한 뒤 공통분모를 묶어 표준화했다. 그 과정에서 해물 육수와 육전 고명이 더해졌다. 1995년, 그는 완성한 조리법을 들고 부산냉면을 찾았다. 그러고는 보름에 걸쳐 황덕이 사장한테 비법을 전수했다. 이렇게 재현한 음식이 오늘날의 진주냉면이다. 또한 그는 2000년 지역 방송사와 함께 ‘진주냉면을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했다. 이때 명성을 얻으며 부산냉면은 2004년 상호를 ‘진주냉면’으로 바꿨다. 이후 사위가 이를 계승했다. 그리고 2011년에는 상호를 하연옥으로 바꿨다. 하연옥씨의 오빠가 하연규씨, 그의 부인이 박군자씨이다. 그들은 박군자 진주냉면이 전통 진주냉면의 육수 맛을 이어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진주냉면은 1995년에 복원한 음식이다. 과연 그것을 전통의 맛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수원의 남문시장에 있는 ‘남강 진주냉면’이다. 입구에 ‘1820년 그 맛, 그대로 진주냉면이 왔습니다’라는 광고문구가 있다. 1820년의 그 맛이라니. 그 해와 진주냉면은 아무 관련이 없다.

육전을 얹어서 맛 깊은 육수와 함께 먹는 진주냉면은 꽤 괜찮다. 재해석한 진주냉면을 다시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다. 그리고 재현 음식이냐의 여부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음식 한 그릇의 영광이 오래가려면 서사부터 투명해야 한다. 전통 음식은 손맛 위에 정직한 말맛이 얹히기 때문이다. 진주냉면이 한 점의 진실을 고명처럼 조용히 올릴 때, 우리는 비로소 ‘맛’과 ‘전통’이라는 두 단어를 같은 농도로 느끼게 된다.

/조용준 맛칼럼니스트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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