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국가론’ 정부서도 이견…균형잡힌 통일정책 ‘토론의 장’ 열 필요
북·미, 남·북 관계 꽉막힌 상황 …교류 물꼬 틀 방안 발굴했으면
9·19 합의, 10·4 선언 의미 큰데 해당날짜 관련보도 없어 아쉬워
역사적 맥락 등 짚어 쉽게 써야…정욱식 칼럼 등 그런 면에서 도움
북한사회 이해도 높일 수 있게 친절한 기사도 많이 다뤄 주길

외교·안보 분야는 독자들이 이슈를 온전히 파악하기가 어려운 영역으로 꼽힌다. 국제적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파악해야 하고, 역사적 맥락도 놓치지 않아야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범위가 넓은데다 정치 이슈처럼 언론이 매일 다루는 분야도 아니다 보니, 흐름과 맥락을 잡기가 쉽지 않다. 어느 분야보다 ‘친절한 기사 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13기 열린편집위원회 두번째 회의에서는 한겨레의 통일·외교·안보 분야 보도를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는 서수민 시민편집인 겸 열린편집위원장(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제이티비시(JTBC) 보도총괄 출신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김영식 한겨레 후원회원, 심창식 ‘한겨레:온’(한겨레 주주·독자 온라인 커뮤니티) 편집장, 오세욱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김하롬 한겨레 후원회원, 한겨레 창간주주·독자인 정연 전 영락의료과학고 교장이 참석했다. 한겨레에서는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신승근 뉴스룸국 뉴스총괄부국장, 권혁철 통일외교팀장이 참석했다.
서수민 오늘은 한겨레의 통일·외교·안보 분야 보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했다. 최근에도 중국 전승절 행사 등 많은 이슈들이 있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
정연 이번 주제와 관련해 제일 중요한 키워드는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엔드(END) 이니셔티브’ 구상이라고 생각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북한과의 교류의 문이 완전히 닫히고 대결만 남은 상황이었는데, ‘엔드 이니셔티브’ 발표를 듣고 ‘이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도했다. 그런데 이 구상을 두고 ‘구체성이 떨어진다’, ‘실효성이 좀 부족해 보인다’는 지적들이 많은 것 같다. 한겨레도 비슷한 주문을 내놓았다. 사실, 중국 전승절 행사 때 김정은 위원장이 중·러 정상과 나란히 천안문 망루에 서는 걸 보고, 남북 관계 개선이 참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이 ‘교류’일 것 같은데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교류 협력 방안을 갖고 있는지 한겨레가 취재해서 보여줬으면 한다. 북미 관계, 남북 관계가 꽉 막힌 지금 시점에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방안들이 뭔지 발굴해서 정부에 제안해도 좋겠다. 과거에 추진되었으나 지금은 단절된 사업 중 비교적 쉽게 재개할 수 있는 것들을 제시해줄 수도 있겠다.
서수민 한겨레 통일·외교·안보 분야 보도를 보면, 굉장히 깊이 있는 기사들이 많다. 외부에서도 타사와 차별성이 있다는 평가가 많다. 아마도 오랜 경험과 식견을 갖춘 기자들이 있어서 그런 탁월한 보도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전승절 보도에도 다른 언론에선 보기 힘든 기사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 기자들 다수가 정년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 전문성과 탁월성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회사 차원의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김영식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 제시 이후 우리 정부가 방향을 제대로 못 잡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한겨레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의제를 발굴하고 방향성을 제시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9·19 남북군사합의’ ‘10·4 남북공동선언’은 역사적 의미가 큰 선언인데, 해당 날짜의 한겨레 지면에서는 관련 보도를 찾아볼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에스비에스(SBS)가 추석 연휴에 방영한 교양프로그램이 기억에 남는다. 가수 조용필의 2005년 방북 공연 영상을 다시 보여주며 당시 상황을 젊은 사람들에게 얘기해 주는 방식이었는데, 그걸 보면서 울컥했다. 한겨레도 그런 다양한 시도를 해봤으면 좋겠다. 정권이 바뀌면 남북 관계가 확 바뀌면서 국민들이 멀미를 느끼곤 하는데, 한겨레가 중심을 잘 잡아서 멀미를 덜어주는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권석천 한국 사회에서 통일 문제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 같다. 진보와 보수의 생각이 다르고, 진보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젊은 세대와 기성 시대 사이에도 인식의 간극이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언급한 ‘평화적 두 국가론’을 두고는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겨레가 하나의 아젠다(의제)를 제시하기는 참 힘든 사안인 것 같다. 차라리 한겨레가 주도해서 사회적 토론의 장을 한번 열어보는 게 어떨까 싶다. 한겨레를 통해 통일 정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목소리들을 듣고 싶어 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다.
서수민 외교·안보나 남북 관계 기사들은 흐름을 알지 못하면 잘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엘리트 독자들을 겨냥한 듯한 기사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다. 언론이 좀 더 쉽고 친절하게, 맥락을 알 수 있도록 보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사람들 사이의 공감대가 넓어지고 토론도 이뤄질 수 있다.
이김하롬 북한과 관련해 우리나라만큼 소통 장애가 큰 나라도 없을 것 같다. 언론 보도 등으로 인해 냉전적 맥락들이 계속해서 학습되어온 탓이 크다. 이런 점에서 정욱식 칼럼은 굉장히 좋은 기사라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여줄 뿐 아니라 우리가 평소 생각하지 못한 것까지 짚어주기 때문이다. ‘전시작전권 환수와 남북관계의 딜레마를 어떻게 풀 것인가?’와 같은 글이 대표적이다. 북한 문제는 복잡한 맥락을 가진 복잡한 문제다. 복잡하면 복잡한대로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엠지(MZ)세대에게는 그런 기사가 더 소구력이 있다고 본다. 사람들이 의외로 아주 기초적인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통일부 누리집을 보면 ‘민족공동체 3단계 통일 방안’이 여전히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 방안이라고 나오는데, 엠지세대 중에는 그런 게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 방안이 독일식 급격한 흡수통일의 부작용을 줄이려는 보완적인 통일방안으로 등장한 것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그런 역사적 맥락들을 잘 짚어주는 기사들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평화적 두 국가론’도 그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독자들에게 ‘더 나은 진실’을 보여주는 방법이고, 한겨레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세욱 한겨레가 통일·외교·안보 분야 보도를 전반적으로 잘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8월부터 10월까지 ‘한미동맹 재조정’ 이슈를 지속적으로 추적 보도해, 독자들이 복잡한 외교안보 이슈의 전체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아쉬운 점도 있다. 2023년에도 열린편집위에서 외교·안보 분야를 다뤘는데, 당시 회의 내용을 전한 기사의 제목이 ‘관계성 복잡한 국제 이슈…맥락 짚는 친절한 설명 필요’였다. 오늘 여러 위원님들이 지적한 것과 똑같다. 지금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 관련 기사들을 읽으면서 ‘내용은 다 괜찮은데 일반 독자들에게 먹히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이 충분한 설명도 없이 기사에 등장한다. 맥락이 생략되는 경우도 많다. 친절하게 설명을 넣는 것을 군더더기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기사 내용은 좋은데 그게 잘 전달되지 않으면 너무 아쉽지 않나. 시각화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외교·안보 분야는 시간의 흐름이 중요하기 때문에 표로 정리만 해줘도 사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기사 쓸 때 뉴스레터 휘클리에서 하는 방식을 활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정연 오세욱 위원 말씀 듣다 보니, 생각나는 기사가 있다. 25일자 3면에 실린 ‘교류로 대화 열고, 북핵 중단으로 한반도 문제 풀자는 제안’ 기사다. 핵심 정보를 그래픽으로 간결하게 보여줘서 좋았다. 기사를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눠 중간 제목을 넣어 주니까 읽기가 훨씬 편했다.
심창식 통일 관련 의제 설정이 어려운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분단 이후 80년의 세월이 흐르다 보니 식상한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둘째,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경험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통일 논의는 과거 80년하고는 달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이 쓴 칼럼(김정은·트럼프 험난한 재회의 길, 아펙 활용법은?)은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 같다. 최근 왜냐면에 실린 김동엽 북한대학원대 교수의 ‘남북관계,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라’라는 글도 돋보이는 기사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변화하는 국제 질서와 북한 전략에 대한 정확한 독해와 새로운 서사’라는 지적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한겨레가 지금까지 외교·안보 보도를 아주 잘 해왔다고 생각하지만, 향후 보도 방향을 검토할 때 참고했으면 한다. 1988년에 한겨레가 창간 주주들에게 ‘북녘의 산하’라는 제목의 사진집을 보낸 적이 있다. 그 책에 송건호 선생 글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 ‘민주화는 통일로 가는 지름길의 하나일 뿐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한겨레 기자들이 그의 말을 되새겨, 남북교류와 평화통일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해주길 당부드린다.
서수민 위원님들이 한겨레 보도의 탁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를 하면서도, 시각화를 비롯해 다양한 시도를 주문해주신 것 같다. 국내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량 자체가 너무 적은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힘을 빼고 쓸 수 있는 기사, 예를 들면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가벼운 기사도 적극적으로 써주면 좋겠다.
권혁철 ‘3단계 통일 방안’이 수립된 지 30여년이 흘렀지만, 남북 관계는 여전히 1단계인 화해·협력조차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상황에 머물러 있다. 통일을 앞세울 것이냐 평화를 앞세울 것이냐, 남북을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로 볼 것이냐 ‘두 국가’로 볼 것이냐 등은 정답을 찾기 힘든 문제다. 이런 상황에선 현재의 이견을 최대한 풍부하게 드러내는 것도 어떻게 보면 공론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위원님들이 지적하신대로, 남북 관계의 변화 양상을 충실히 드러내고 지금 남북 관계, 북미 관계가 왜 이렇게 뒤엉켜 있는지 등을 맥락을 담아 좀 더 종합적으로 보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정리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열린편집위원들의 단소리 쓴소리
열린편집위원들은 그달 주제에 대한 논의가 끝난 뒤, 한겨레의 논조와 기사 쓰는 방식, 뉴스 서비스 등 콘텐츠 운영 전반에 대해서도 독자 눈높이에서 비판과 제언을 쏟아낸다. 회의에서 나온 위원들의 목소리를 싣는다.
• 가자 전쟁이나 미-중 갈등을 다루는 기사들을 보면, 미국과 이스라엘 쪽 언론 인용 보도가 좀 많은 것 같다. 균형이 필요해 보인다. 김영식 위원
• ‘한·미 극우연대 해부’ 연재는 세계적인 극우 현상을 생생하게 보여준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 정연 위원
• 한겨레 웹사이트에 ’통일’ 카테고리가 없더라. 다른 데는 몰라도 한겨레만큼은 통일 분야를 따로 떼어서 유지하는 게 낫지 않나 싶다. 오세욱 위원
• ’인천세관 마약수사 외압’ 사건이 유튜브를 비롯해 온라인에서는 큰 이슈가 되고 있는데, 한겨레를 포함해 레거시 언론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어서 의아해하는 주주 독자들이 주변에 좀 있더라. 심창식 위원
• 근래 들어 한겨레 지면에 호스피스 의사 박중철의 ‘당신의 마침표’와 같은, 전문성과 현장감이 느껴지는 고품격 칼럼이 많아진 것 같아서 칭찬해주고 싶다. 서수민 위원장
• 개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새만금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꾸준히 보도해줘서 좋았다. 반면, 고교학점제 등 교육 관련 기사에 학생들의 의견이 잘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이김하롬 위원
• ‘캄보디아 납치·감금’ 사건과 관련해, 한국에서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기사를 써보면 어떨까 싶다. 권석천 위원
열린편집위원회가 뽑은 ‘이달의 좋은 기사’
열린편집위원들은 9~10월 한겨레가 생산한 콘텐츠 가운데 33건의 ‘좋은 기사’를 추천했다. 이 가운데 위원들이 가장 좋은 평가를 한 콘텐츠는 ‘초코파이 재판’ 연속 보도였다.
1. ‘1000원어치 ‘초코파이 사건’ 재판, 노조 활동 때문?’ 등 전국부 천경석 기자
한줄평: “사건의 배경을 날카롭게 파고 든 점이 돋보여” “상식에 반하는 판결을 약자인 노동자 처지에서 반박”
2. 귀환 희망 다시 키우는 전향 장기수들 전국부 김용희 기자
한줄평: “전향 장기수의 존재와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
3. 지난달 해수면 온도 ‘역대 세 번째’…긴 가을장마 불렀다 지구환경부 김규남 기자, 전국부 박현정 기자
한줄평: 유례없는 가을 장마에 당황하고 있던 차에 그 궁금증을 해소해준 기사”
4. ‘슈퍼 스파르타’ 이스라엘 폭주…전선 전방위 확대, 중동 질서 붕괴 국제부 정의길 김지훈 기자
한줄평: “가자 전쟁 2년 동안 무너진 중동 질서를 잘 요약한 기사”
5. 휘클리 9월18일 214호(장난 아닙니다) 뉴콘텐츠부
한줄평: “잇달아 벌어지던 어린이 유괴 관련 소식을 잘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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