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동료들과 한 가을소풍 [양희은의 어떤 날]

한겨레 2025. 10. 26.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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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양희은 | 가수

‘여성시대’는 금년 8월부터 상을 많이 받았다.

8월에는 여성시대 50주년 기념 특별공개방송으로 전국 각지에서 오신 당당이(삶의 무게 앞에 당당한 그대, 우리 프로그램 애청자들을 이렇게 부른다)들과 함께 상암 엠비시(MBC) 앞 광장에서 가수들을 초청해 공개방송을 했는데, 그 특집으로 이달의 피디상을 받았다. 한여름에 기획한 ‘영혼의 바캉스’ 특집은 가톨릭, 교회, 절, 원불교의 신부, 목사, 스님, 교무님과 어떻게 이 시대에 마음의 평화를 찾는지에 대하여 많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했다. 그 결과 불교언론문화상의 라디오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생방송 중에는 곳곳의 일터 모습을 애청자들이 보내주는데 김일중(나의 옆지기 진행자)씨가 자기도 여러분의 작업현장을 체험하며 돕고 싶다고 말을 했다. 이어 그렇다면 실천을 해야 한다며 내가 바람을 잡았다. 기분 내키는 대로 말을 하면 반드시 값이 따르니까 그때 기분에 따라 하는 말을 조심하라고 여러차례 얘길 했었다. 그 결과 일중씨는 새벽 4시에 현장에 가서 생수 배달업에 종사하시는 분과 세상 안 해본 일을 하며 안 쓰던 근육을 많이 써야 했고, 따뜻하고 성실한 정남식씨 그분의 모습이 그려진 듯 읽혀서(녹음구성으로) 10월의 피디상을 또 타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라디오는 오히려 진솔하다. 안 보이지만 다 드러난다. 말과 말 사이도 글과 글 사이처럼 행간 같은 거시기가 있고, 호흡의 끊고 맺음이 또한 진실을 알려준다.

잠깐! 여기서 일중씨가 타게 된 또 다른 상장 내용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이달의 진행자상/ 여성시대 디제이/ 김일중/ 귀하의 한마디가 이번 특집의 시작이 되었고, 귀하의 땀방울은 생생한 현장의 숨결이 되어 청취자들께 깊은 감동을 전달했습니다. 입으로 시작해 발로 완성한 방송, 그 진심과 열정에 깊은 박수를 보내며 이 상을 드립니다. 2025년 10월 여성시대 제작진 일동

10월에 당당이들의 사연을 노랫말로 해서 ‘행복해도 괜찮은 당신에게’라는 곡을 발표했다. 노래를 만든 하림과 나, 일중씨, 그리고 4대 종단의 대표 격인 만남중창단 네분(신부, 목사, 스님, 교무님), 초청했던 43명의 애청자들이 녹음을 끝냈고, 며칠 전에 모든 음원사이트에 이를 공개했다. 사람들은 일터, 자동차 안에서 용기, 위로, 힘을 주는 놀라운 곡이라며 감동받았다 했다. 2025년 올해 50주년을 맞은 여성시대 프로그램 제작진분들껜 엄청 일이 많았지만 우리를 지치게 한 여름 지나고 가을 오니, 속속 열매 맺는 듯 뿌듯하다. 게다가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내가 수상하게 됐다는 뉴스! “전 고양시민인데요?” “아, 엠비시가 서울시 상암동에 있으니까요….” “아, 네에….”

가을볕과 파란 하늘이 최고였던 날, 친구들과 케이티엑스 타고 엄마의 그림과 바느질 작품들로 채워서 지난여름 문을 연 부여의 갤러리 카페로 소풍을 갔다. 유일한 밥집이 수리 중이라, 점심이 마땅칠 않아 여행용 트렁크에 콩자반, 오징어 젓갈, 오이지 무침, 장아찌, 더덕 무침, 양념깻잎을 죄 싸 들고 갔다. 조카 놈이 말린 새우를 넣고 시금치 된장국을 시원하게 끓여 집밥을 못 먹은 사람들처럼, ‘역시 집밥’이라며 잘 먹었다. 물장수 상을 만들어 설거지할 게 없었다. 이럴 때 기어이 싸 들고 내려간 억척 어멈의 마음은 썩 흡족하다. 근 10여분 상관으로 여성시대 제작진 7명이 부여까지 차 한대 빌려 타고 교대로 운전하며 와서, 다시 상을 차렸고 정신없이 늦은 점심 밥상을 비웠다. 밥과 국을 파는 곳은 아니지만, 영업 중에 상 차리는 수고로 인당 1만원씩을 받겠노라 했다. 커피와 다과는 뜰에서 자유롭게 자리를 잡아 느긋하게 즐겼다. 하나같이 편안하고 울 엄마 그림이 돋보여서 외갓집 같아서 미술관에서 커피 마시는 기분이라서, 아늑하고 따습다. 외관이 압도적으로 예쁘다. 구석구석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된 구조가 정말 마음에 든다. 쉼과 예술이 합쳐져 좋다. 손님들 계시는 공간마다 정겹고 독립적이었다. 시간과 취향이 멋지게 쌓인 공간. 가을 정취 가득한 뒷마당이 좋더라.

모처럼 매일 만나는 라디오 제작팀, 그리고 라디오를 30년 이상 진행했던 동료들과 함께한 가을 소풍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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