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돈으로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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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 티셔츠를 만들 일이 생겼다.
사장님은 업무 중이었으니 당장 일을 받아줄 수 없었다.
상중이라고 사정을 전하자 그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내 셔츠를 다리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일을 맡기려면 돈은 기본에,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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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 티셔츠를 만들 일이 생겼다. 무지 티셔츠에 로고를 인쇄하는 방식의 굿즈는 인터넷으로 금방 만든다. 나는 프린트가 인쇄된 기존 티셔츠에 새로운 로고를 찍어야 했다. 그러자 일의 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전화로 업체를 찾는 건 불가능했다. 동대문시장을 찾았다. 거기서도 헤매고 졸라가며 겨우 업체를 수급했다. 시장 물량치고는 물량이 적어 사장님을 설득하는 데 한참 걸렸다. 다행히 결과물은 잘 나왔다. 그러기까지의 과정이 꽤 길었다.
그러는 동안 지난번에 길에서 멈춘 차 수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차를 수리해주시는 동네 카센터 사장님께는 자주 혼난다. 그는 차를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자신은 차가 고장 나는 게 싫기 때문에 자기를 자주 찾아오지 말라고 하는 성격이다. 그런 분인 만큼 수리도 적당한 가격에 꼼꼼하게 해 주신다. 이런 분을 보기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혼날 걸 알면서도 이분을 찾은 지 10년이 됐다. 이런 손님이 나만은 아닌 듯하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이분의 가게엔 늘 차가 가득하다.
집 근처 세탁소에도 오래 다녔다. 지금 사는 동네에 이사 온 뒤 내내 다닌다. 계속 가게 된 계기가 있다. 작년 초여름 외할머니께서 별세하셨다. 지방 빈소에 가야 하는데 집에 다리미가 없었다. 급히 출발하며 세탁소에 들렀다. 사장님은 업무 중이었으니 당장 일을 받아줄 수 없었다. 상중이라고 사정을 전하자 그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내 셔츠를 다리기 시작했다. 사정도 사정이지만 몇 년 다닌 내 얼굴을 아시기 때문에 해주셨을 것이다. 감사한 마음이 든 건 물론 평소 쌓아둔 관계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내게 세탁소와 카센터는 지금 사는 동네의 주요 인프라다. 이 동네에서 사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자동차 수리나 세탁은 앱 서비스 등으로 많이 대체되었으나 서비스 품질에 차이가 있다. 구조적으로 보면 앱 기반 서비스는 앱 플랫폼 시스템이 신뢰를 보장한다. 동네 가게에서는 나와 업체 사이에 신뢰가 직접 쌓인다. 신뢰의 직거래랄까. 직거래된 신뢰를 돈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돈을 많이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돈 이상의 요소도 써야 한다. 시간이나 미소 띤 인사 같은 것들을.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속한 업계의 최고 수준 스태프들은 돈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업계의 최고들엔 언제나 일이 쌓여 있다. 그들에게 일을 맡기려면 돈은 기본에,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 관계든 명분이든. 더 많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냐고? 그렇긴 하다. 다만 그게 최고의 결과물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돈이 다가 아니라는 말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돈은 물론 필요하다. 대신 정말 좋은 걸 가지려면 돈 말고 다른 것도 필요하다. 관계, 기술, 전문성 등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가질 수 있다. 자판기에서처럼 바로 뽑아내거나 주식처럼 바로 거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른이 되는 건 뭔가를 사고파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훌륭한 어른은 사고팔아서만은 가질 수 없는 걸 많이 가진 어른이다. 세상 모든 귀한 건 한정되어 있다. 더 귀한 것에는 가격이 매겨져 있지 않다. 가격이 없다면 구매할 수도 없다. 좋은 어른은 그 사실을 안다. 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박찬용 에디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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