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 “내란 종식의 날, 행복한 축가 부르고 싶다”

“완전한 내란 종식, 그 순간이 오면 저는 축가를 부를 겁니다. 이제 좀 행복하자고요.”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그의 스튜디오 ‘참꽃’에서 만난 안치환은 천천히 말을 고르며 입을 뗐다. 그는 본래 행복과 사랑의 노래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내가 만일’ ‘소금인형’ 등은 입에 붙는 멜로디와 가사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저는 사람을 믿는 편이었어요. 인간은 결국 선하다고 믿었죠.” 다만 지난 몇해, 세상의 표정이 달라졌다.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사실처럼 떠돌고, 부끄러움이라는 가치가 사라지자, 그의 문장과 음악은 거칠어졌다. “어느 순간, 인간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이날 나온 정규 14집 ‘인간계’는 그 흔들림을 정면으로 기록한 음반이다. 16곡이 한권의 보고서처럼 묶였다. “정치의 문제가 아니에요. 인간 자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인간계’로 했죠. 다른 세계를 내려다본 게 아니라, 제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을 그냥 정확히 부른 겁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덧붙였다. “그렇다고 희망을 버린 건 아닙니다.”
권력층과 위선자들의 행태를 꼬집은 ‘인간계’ ‘다크코어’ ‘쪽팔리잖아!’는 냉소적 감각을 흔들어 깨운다. 1989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에 실렸던 ‘잠들지 않는 남도’는 지금의 언어로 다시 불렀다. ‘오늘도 또 노동자가 죽었다네’는 태안화력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죽음을 떠올리며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을 담았다. 하지만 ‘유어 낫 얼론’ ‘세상의 빛’은 절망의 끝에서도 함께 버티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건넨다. “분노로만 밀어붙이고 싶지 않았어요. 사람이 견디게 하는 노래를 같이 두고 싶었습니다.” 앨범 첫머리의 ‘일단 한 잠 푹 주무세요’는 더 단순하다. 세상에 시달린 마음에게 내미는, 생활의 말 한마디. “몸이 먼저죠. 일단 푹 자자, 그런 얘기예요.”

그는 자신을 “기타 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번 앨범은 밥 딜런의 색채가 물씬 드러난다. “편곡 등 음악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제가 리듬을 세우면 밴드가 따라 쌓아요. 리듬을 먼저 녹음하고, 멜로디 악기, 보컬 순으로 정리하죠.” 포크록의 뼈대 위로 록과 발라드의 살결이 얹히면서, 곡들은 그의 지하 스튜디오의 공기를 닮은 듯 정갈하게 완성됐다. 어떤 노래는 숨을 길게 들이켜고, 어떤 노래는 리듬을 거칠게 밀어붙인다.
“요즘 시디(CD)를 사라는 건 폭력”이라면서도 실물 앨범을 찍었다. 총 300장으로, 콘서트 관객 위주로 판매한다. “손에 잡혀야 진짜 같거든요.” 오래전 그는 녹음실과 작은 공연장을 손수 마련했다. 비용의 무게가 창작을 짓누르지 않도록, 삶의 구조를 스스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뮤지션이 부담해야 할 기본 비용은 안 변합니다. 버텨온 저 자신이 기특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새로운 환경 변화에도 유연하다. “에이아이(AI)가 만든 음악이라도 더 멋지면 들을 겁니다. 선택은 결국 인간이 하잖아요. 싫으면 안 들으면 되는 거고요.” 다만 마지막 해답은 여전히 사람에게서 찾는다. “음악적 고민이 있을 때 그래도 에이아이가 아니라 먼저 밴드한테 묻고 싶어요. 합주할 때 나오는 예측 불가능한 숨결, 그건 아직 에이아이가 못 하거든요.”
대학 노래패에서 시작해 올해로 데뷔 40년. “1988년부터 노래로 먹고살았다”는 그는 100만장이 우습게 팔리던 시절을 지나, 스트리밍의 해안까지, 같은 걸음을 반복해왔다. 기타를 멘 어깨, 한 호흡 늦춘 문장, 공연장에서 건네는 눈인사…. 이름보다 태도가 오래 남는다는 것을, 시간으로 증명해왔다.
인터뷰 말미, 주제가 건강으로 자연스레 흘렀다. “무대에 서는 사람이 기타가 무거워 보이면 안 돼요. 몸이 버텨줘야 마음도 버팁니다.” 그는 매일 근육 운동을 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담배는 끊었고, 술은 반주 정도로 줄였다. “건강하지 않으면 노래할 수도 없잖아요. 결국 음악은 몸에서 나오니까요.”

앞으로의 장도 이미 써두었다. 사랑과 응원, 나이 든 세대의 체온, 때로는 죽음을 성찰하는 노래를 할 예정이다. “팬들이 원하는 노래, 저도 제일 사랑합니다. 이번엔 세상이 너무 각박해서 잠시 비켜 간 것뿐이에요. 다음에는 따뜻한 노래들로 돌아갈 겁니다.” 그의 말대로 언젠가 세상이 조금 더 평화로워지는 날,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서 노래할 안치환을 기다려본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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