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뒤에 숨은 한국 축구의 어른들…A매치 관중 급감은 '당연' [Deep&wide]

2025. 10. 2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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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초청 축구국가대표팀 친선경기 대한민국과 파라과이의 경기가 열리기 전 관중석 곳곳이 비어 있다. 뉴시스

지난 1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파라과이전 관객은 약 2만2,000명. 나흘 전 같은 장소에서 치러진 브라질전(6만3,000명)에 비하면 무려 4만1,000명이나 줄었다. 무관중 경기로 치러진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면, 2008년 9월 요르단전(1만6,537명) 이후 17년 만에 서울월드컵경기장 A매치 최소관중이다. 이 경기는 특히 손흥민의 A매치 최다 출전 기록 달성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고, ‘레전드’ 차범근 전 감독이 직접 경기장을 찾았기에 최소관중 충격은 더했다.

대한축구협회 자료에 따르면 두 경기 입장권 매출액은 브라질전 57억8,000만 원, 파라과이전은 10억9,000만 원으로, 관객 수(2.85배)보다 더 큰 5.3배 격차를 보였다. 브라질 대비 인지도가 낮은 파라과이전 입장권 가격을 낮게 책정했지만 관객 수 급감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요즘 국내 축구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축구는 오랫동안 최고 인기 스포츠로 인식돼 왔다. 수만 명 관중이 붉은 물결을 이루던 응원 장면은 일상처럼 당연했고, 방송사 생중계는 시청률 보증 수표였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 선임과 해임, 홍명보 감독 등장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4선 과정을 지켜본 팬들이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홈 경기 연속 매진 사례도 옛말이 됐고, 국가대표팀 출전 경기장에선 출전 선수들을 향한 응원과 앞서 언급한 두 인물을 향한 야유가 공존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이강인이 14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파라과이 축구 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상대 수비를 뚫고 돌파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역대 가장 화려한 선수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여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PSG 이강인), 유로파리그 우승팀(토트넘 손흥민) 그리고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팀(바이에른뮌헨 김민재) 멤버를 동시에 보유한 것이 우리 대표팀이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올랐던 역대 최고 축구스타 손흥민이 주장 완장을 차고 매 경기 선발로 나서며 A매치 최다 출전 기록도 경신하고 있다. 게다가 월드컵 본선 11회 연속 진출이라는 성과까지 낸 시기다. 그럼에도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최소 관중 수를 기록했다. 국가대표팀 축구에 더 이상 ‘전 국민의 응원’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어려운 지경이 된 것이다.

엄지성(맨 왼쪽부터)과 김민재가 14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파라과이 축구 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헤더를 하고 있다. 강예진 기자

대한축구협회는 파라과이전 관중 급감의 원인을 ‘추석 연휴 직후 치러진 경기’에서 찾으려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팬들의 외면이 긴 시간 이어진 결과로 보는 편이 오히려 타당해 보인다. 파라과이전 관중이 줄어든 게 아니라 브라질 대표팀의 유명세 덕분에 늘어난 관중 수가 관심 하락 현상을 가린 것 아니냐는 지적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정이 가능한 건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과 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을 향한 반대 여론이 오랜 기간 누적되어 온 탓이다. 협회장과 대표팀 감독을 향해 쏟아지는 홈 팬들의 야유가 A매치의 익숙한 효과음이 되는 동안, 대표팀은 홈 경기를 더 어려워하게 됐다. 홍 감독 부임 이후 치른 17경기 성적을 보면, 대표팀은 홈에서 5승 3무 2패, 원정에서 5승 2무 무패. 낯선 원정지보다 익숙한 서울에서 더 힘을 못 내는 팀이 됐다.

축구대표팀이 누리는 인기에서 애국심과 자부심이 차지하는 지분은 매우 크다.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에 응원을 보내는 이유는, 선수단이 우리나라를 대표해 뛰고 있다는 믿음과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대표팀 구성원이 ‘우리’를 대표하고 ‘우리’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개인의 영예에 천착한다고 여겨진다면, 즉 대표성이 흔들린다면 응원의 이유도 사라진다. 회장과 감독이 부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믿는 순간, 대표팀은 ‘우리의 팀’으로 온전한 지지를 받기 어렵다.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국가대표 10월 A매치 친선전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경기에서 홍명보 감독이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다. 뉴시스

사실, 프로 스포츠는 우리 삶에 필수 요소가 아닌, 선택의 대상이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들여 찾아가는 경기장 직관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적극적 지지의 표현이다. 따라서 그 지지가 흔들리면, 굳이 돈과 시간을 들일 이유도 사라진다. 물론 일부 축구팬 사이에서 제기된 “A매치 직관을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이 호응을 받진 않았지만, 여러 논란의 상황이 길어지면서 직관의 이유가 줄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표팀 축구 직관이 부러움보다 냉소나 반감의 대상이라면? 더 이상 내 SNS에 올릴 만한 콘텐츠가 아닌 것이 된다.

스포츠에만 국한해도, 대표팀 축구를 대신할 '대체 콘텐츠'가 많은 세상이다. 프로야구나 올여름 유럽 클럽들의 내한 경기가 대표적이다. 축구의 경우, 은퇴한 슈퍼스타들을 대거 소집해 치른 이벤트 매치까지 서울에서 열렸다. 대한축구협회가 여러 논란과 의문을 해소하지 않고 방치하는 사이, 팬들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며 대표팀 축구를 뒷전으로 밀어두기 시작했다. 'A매치 직관'이 더는 자랑이나 부러움의 대상이 아닌 게 됐다.

정몽규 회장과 홍명보 감독을 둘러싼 반감이 커진 상황에서, 이를 해소하려는 축구협회의 적극적 노력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반대 여론을 뚫고 4연임에 성공한 회장은 선거 이후 별다른 혁신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외국인 감독 후보들보다 뛰어난 선택이었다고 주장한 감독은 경기장 안팎에서 눈에 띄는 전략과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혁신과 설득 대신 침묵만 길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A매치 직관은 마치 ‘동조 행위’처럼 여겨진다.

어쩌면 파라과이전 관중 수 2만2,000명이란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닐지 모른다. 볼거리와 함께하며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시대, 팬들의 충성심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손흥민의 인기가 팬심의 감소세를 잠시 가려줬을 뿐이다. 한국 축구의 어른들이 손흥민 뒤에 숨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동안, 대표팀 축구의 전성시대는 조금씩 저물고 있다.

서형욱 MBC축구해설위원 유튜브 ‘뽈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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