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은 네모인데, 컵라면 용기는 '동그란' 이유

김아름 2025. 10. 26. 13: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생활의 발견]적재, 제조 편의 고려해 사각형으로 생산
컵라면, '팔도 도시락' 제외하고 대부분 둥근 형태
들고 먹는 외부 취식 많아…취식 편의성 고려
그래픽=비즈워치
[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온통 네모난 것들 뿐인데

한 때 라면을 끓일 때마다 궁금했던 게 있습니다. 왜 어떤 라면은 네모낳고 어떤 라면은 동그랬던 걸까요. 대부분의 라면은 네모난 형태로 각이 딱 잡혀 있는데, 가끔 동그란 면이 있었습니다. 주로 농심 라면들이 그랬는데요. 너구리는 대체로 둥근 면이었던 기억이고 신라면은 어떨 땐 네모난 면, 어떨 땐 동그란 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니었습니다. 원래 라면은 대체로 '네모 면'이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닛신의 '치킨라멘'이 네모였기 때문입니다. 국내 최초의 라면인 삼양식품의 삼양라면도 이를 따라 네모난 모양으로 만들었죠. 쌓아 두기도 편하고 각이 딱 잡혀 있으니 박스에 넣기도 좋습니다.

이 '네모난 세상'에 반기를 든 건 농심이었습니다. 1982년 출시한 너구리는 국내 최초의 '동그란 봉지 라면'이었습니다. 면이 둥글면 냄비에 넣기 좋습니다. 같은 면적이어도 네모난 면은 모서리 부분이 길어 냄비에 걸릴 때가 많죠. 라면을 반으로 쪼개 넣는 것 역시 냄비에 쏙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둥근 면은 냄비에 쏙 들어가죠. 

둥근 면vs네모난 면/그래픽=비즈워치

그렇다고 아무나 이 둥근 면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농심을 제외하면 둥근 면을 만들 수 있는 제조 설비를 가진 곳이 없었죠. 우리가 생각하는 둥근 면 라면이 대부분 농심 제품인 이유입니다. 동그란 면이 네모난 면보다 양이 적어 보인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 때문에 현재 둥근 봉지면을 만드는 곳은 농심과 삼양식품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일부 제품에 국한돼 있죠. 

하지만 '네모'가 정상인 라면의 세계에서 '동그라미'가 정상인 카테고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컵라면입니다. 컵라면은 대부분 둥근 형태입니다. 용기도 당연히 둥근 형태가 대부분입니다. 사각 용기를 쓰는 컵라면은 팔도의 도시락 등 아주 일부에 불과합니다. 앞서 '네모 면'의 장점을 실컷 얘기했는데, 왜 컵라면 세상에선 '동그라미'가 정상인 걸까요? 이번 [생활의 발견]에서 알아봅니다.

둥글게 만들어야 해

앞에서 '네모 라면'이 일반적이었던 이유로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닛신 '치킨라멘'이 네모났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죠. 사실 컵라면도 비슷합니다. 1971년 등장한 최초의 컵라면인 '닛신 컵누들'은 지금의 '소컵' 컵라면과 동일한 형태의 둥근 용기에 담겨 있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컵라면인 '삼양 컵라면'도 지금의 컵라면과 거의 동일한 외형입니다. 

봉지 라면이 네모난 것은 만들고 관리하기가 쉽다는, 다소 '생산 편의'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컵라면이 둥근 건 '소비자 편의'적인 이유가 더 큽니다. 컵라면은 '냄비가 없는 곳'에서 라면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제품입니다. 이 말은 컵라면을 소비하는 공간이 대체로 야외이거나 제대로 된 식사 공간이 없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한 편의점에 진열된 컵라면. 대부분 둥근 형태의 용기다./사진=김아름 기자 armijjang@

실제로 일본에서 컵라면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계기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이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TV에 중계된 이후라고 합니다. 특히 일본은 밥공기를 한 손으로 들고 먹는 문화가 있습니다. 울퉁불퉁한 바닥에 작은 컵라면 용기를 놓고 고개를 숙여 먹으라고 권할 순 없었죠. 

아무래도 네모난 용기는 들고 먹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한 쪽 모서리를 잡으면 무게중심이 맞지 않고, 국물을 마실 때도 모서리로만 마셔야 해 불편합니다. 반면 둥근 용기는 좁은 아래쪽을 잡으면 한 손에 단단하게 고정할 수 있죠. 의외로 용기가 둥글거나 사각인 건 면의 익기나 국물의 보온 등과는 큰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3분 안팎에 익히고 1~2분 내에 먹는 '패스트 푸드'이기 때문에 용기 형태에 따른 차이는 크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네모난 용기 컵라면의 대표인 팔도 도시락/사진=팔도

국내에서 컵라면은 또 한 번 진화합니다. '삼양 컵라면' 이후 국내의 컵라면은 대부분 비슷한 형태였는데요. 1981년 출시된 농심의 '농심 사발면'은 기존의 좁고 긴 형태의 컵라면이 아닌, 우리나라의 밥사발을 연상케 하는 넓고 깊은 형태로 출시됐습니다. 이듬해 얼큰한 맛을 더한 '육개장 사발면'이 출시됐고 육개장은 그렇게 전설이 됐습니다. 출시한 지 40년이 훌쩍 지났지만 육개장 사발면은 아직도 국내 컵라면 시장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죠.

컵라면 용기가 둥근 게 이런 이유 때문이라면, 문화와 환경이 다르다면 용기 모양도 바뀌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맞습니다'. 그릇을 들고 먹는 문화가 없는 서양권에서는 '사각 컵라면'이 꽤 많습니다. 우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팔도 도시락이 있죠. 국내에서는 옛 추억을 되살리는 제품 정도의 영향력이지만 러시아에 가면 '국민 컵라면' 대접을 받는다는 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러시아에서는 컵라면 하면 '사각 용기'를 떠올립니다.

미국에서 판매 중인 짜파게티와 신라면 투움바 컵라면/사진=정혜인 기자 hij@

미국에서도 '사각 컵라면'이 꽤 많습니다. 국내에서는 둥근 용기에 판매되는 짜파게티나 신라면 투움바 등이 미국에서는 사각 용기에 담겨 판매됩니다. 미국 소비자들은 끓는 물을 부어 불려 먹는 방식보다는 물을 붓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방식을 선호하는데요. 전자레인지에 돌리기엔 낮고 넓은 사각 용기가 더 적합하죠. 미국이 '그릇'보다는 '접시'에 면을 먹는 문화가 발달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겁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먹는 컵라면 하나에 이토록 많은 '문화'가 담겨 있다니 참 재미있지 않나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은 것들 중 아무렇게나 대충 만들어지는 건 없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번 주 들어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컵라면의 계절'이 돌아옵니다. 올 겨울 컵라면을 드시면서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용기의 감촉을 느끼며 [생활의 발견]을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