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의 우리술 이야기)벌써 연말, 술의 헌법 따라야 할 때

최미화 기자 2025. 10. 2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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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박운석 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교육원에 가끔 전통주 시음을 위해 사람들이 찾아온다. 2~3개월 과정의 정규반 수강생들이 수업 중에 빚은 술들도 있고 전통주 바틀샵에서 사온 술도 있는 편이다. 전통주빚기 원데이클래스를 마치고 나서 시음을 이어가기도 한다. 때론 동네 사람들이 술을 사고 싶다고 문을 두드리기도 하지만 주점도 아니고 양조장도 아니니 판매하는 술은 아니다.

한국전통주의 매력 중 하나는 숙성할수록 맛과 향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발효과정 뿐 아니라 숙성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향기물질이 만들어져서다. 교육원의 냉장고엔 1년이 지난 술도 있으니 이런 귀한 술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찾아 오는 분들도 많은 편이다.

문제는 처음 한국전통주를 접하는 분들 중에는 부드럽고 마시기 좋을 정도로 달달한 술맛에 알코올 도수를 잊어버리는 일이 잦다는 점이다. 평소에 마시는 알코올 도수 6% 대의 막걸리를 생각하고 홀짝홀짝 잔을 들이키다가 술에 취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한국전통주는 술을 빚는 횟수에 따른 분류법이 있다. 삼양주(三釀酒)와 이양주, 단양주다. 한자로 양(釀)은 '빚을 양'이다. 삼양주는 말 그대로 밑술 한 번과 덧술 두 번으로 세 번 빚어서 만드는 술이다. 마찬가지로 이양주는 두 번 빚어 완성하는 술이고 단양주는 한 번만 빚는 술이다. 술 빚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알코올 도수는 올라간다. 발효환경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가양주로 빚어도 대략 삼양주는 18%, 이양주는 14%, 단양주는 12% 정도의 알코올 도수가 나온다.
양조장에서는 여기에 가수(加水)를 해서 알코올 도수를 낮춘다. 최근에는 맑은술의 경우 가수를 하지 않고 그대로 출시하는 경우도 많다. 삼양주로 빚을 경우 18~19%의 알코올 도수로 시장에 나오는 것이다.
전내기에 가수를 해서 알코올 도수를 낮추어 출시를 하든, 원주 그대로 출시를 하든 그건 양조장의 선택의 문제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터다. 누구는 전내기 그대로의 술을 좋아하기도 하고, 누구는 가수를 해서 알코올 도수를 낮춘 술을 좋아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결론은 술을 즐길 줄 아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점이다.
술을 즐기는 방법 중 최고는 풍류였다. 시인 조지훈은 술만 마시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집과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그래서 내놓은 게 술 취했을 경우에 대비한 행동요령인 호리(壺裡)입법론이다. 술을 마시면 역발상으로 '술이 취해서 집으로 갈 때는 너의 취중의 발길을 정반대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는 제1조다. 그러나 한 번은 술에 취해 호리입법론에 따라 반대방향으로 집을 찾아가다가 엄청 고생을 한 모양이다. 다음 날 바로 조문을 추가했다. '단, 인생의 길에는 취해서 가는 길이 옳고 바를 수도 있다'.
술의 나라 헌법까지 제정을 하기도 했다. 주국헌법(酒國憲法)이다. 주국헌법은 1926년부터 1934년까지 발행된 대중 종합잡지인 '별건곤'에 풍류객 차상찬(1888년~1946년)이 게재한 글이다. 거의 100년 전의 술의 나라 헌법치고는 요즘에도 들어맞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사단법인 차상찬기념사업회 홈페이지에서 주국헌법의 내용을 찾아봤다.
우선 눈에 띄는 내용은 '사람이 술을 먹되 술이 사람을 먹지 않게 해야 한다'(제13조)거나 '술나라 당원의 걸음걸이 보행은 갈지(之)자나 현(玄)자 모양으로 걸어도 상관없지만, 대중교통을 방해해서는 안된다'(22조)는 금지사항이다.
술 나라에서 칠푼이로 인정하는 열 가지 유형의 사람도 있다(제21조). 술 잘 안 먹고 안주만 먹는 자, 남의 술에 제 생색 내는 자, 술잔을 잡고 잔소리만 하는 자, 술 먹고 따를 줄 모르는 자, 남의 술만 먹고 제 술은 안 내는 자 등등이다. 1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요즘이라고 달라지지 않은 내용들이다.
또 술 마시기 좋은 시기는 다음과 같이 정한다(제12조)고 했다. 천 리 타향에서 친구를 만났을 때, 바람이 불고 가랑비 내리는 저녁때, 눈이 하얗게 내린 밤에 달이 밝을 때, 꽃이 피거나 낙엽이 떨어질 때 등이다.
외에 근심에 젖어 우울하거나 슬플 때, 통쾌하여 감정이 북받쳐 올라올 때도 술 마시기 좋은 시기로 정했다. 그런데, 요즘은 통쾌한 일을 보기는 쉽지않다. 뉴스를 봐도, 동네소상공인들을 만나도 근심에 젖어 우울하기 일쑤다. 이래저래 술 마실 일이 많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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