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레슬링은 쇼 아니다” 눈물로 호소한 ‘박치기 왕’ 김일

이한수 기자 2025. 10. 2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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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06년 10월 26일 77세
프로 레슬러 김일.

1965년 12월 1일 프로레슬러 김일(1929~2006)은 서울 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일본에서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다 5개월 전 귀국해 통쾌한 ‘박치기’를 선보이며 최고 인기를 끌던 때였다. 김일은 “프로레슬링은 결코 쇼가 아니고 스포츠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원통하다”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김일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쇼라면 미국이나 일본에서 어떻게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있겠느냐”며 “쇼 같은 운동에 10여 년 훈련을 쌓을 필요도, 고 역도산 선생에게 매를 맞으며 단련받을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당시 신문 기사는 김일이 “울부짖었다”고 표현했다.(1965년 12월 2일 자 4면)

"프로 레슬링은 쇼가 아니다" 김일 기자회견. 1965년 12월 2일자.

사건의 발단은 나흘 전인 11월 27일 저녁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5개국 대항 프로레슬링 선수권 토너먼트 경기였다. 국내파 프로레슬러 장영철은 1회전에서 일본 오쿠마 모토시와 경기를 했다. 장영철은 오쿠마 공격에 일방적으로 밀리며 코너에 몰렸다. 순간 링 세컨드(링 밖에서 선수를 돕는 사람)가 올라가 병과 의자로 오쿠마의 머리를 폭행했다. 경기는 중단됐고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장영철은 경찰 조사에서 오쿠마가 사전 각본대로 경기를 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말이 나왔다. 김일이 기자 회견을 한 날 장영철은 “불상사를 일으켜 죄송스러우며 김일 선수와 팬들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역도산 제자 김일, 8년만에 귀국. 1965년 7월 1일자.

김일에게 사과한 이유는 장영철이 링에서 폭행 사건이 벌어질 때 김일을 향해 마이크에 대고 “한판 붙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김일은 기자회견에서 장영철에 대해 “도전하는 절차도 틀렸거니와 상대조차 안 되는 실력인지라 도시 무시해버린다”면서 “(나는) 외국에 안 가고 고국에서 프로레슬링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김일은 한국계 일본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제자로 일본에서 프로레슬링 선수로 활동하다 1965년 6월 30일 8년 만에 귀국했다. “역도산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한국 프로레슬링을 세계적 수준으로 만들겠다”(1965년 7월 1일 자 7면)고 말했다.

김일(왼쪽) 선수가 거구의 외국 선수를 상대로 필살기인 박치기를 선보이고 있다./조선일보 DB

박정희 대통령은 김일의 경기를 좋아했다. 1965년 8월 11일 밤 한·일 협정 비준을 놓고 국회에서 여야 대치가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던 때에도 청와대에서 김일과 일본 선수의 프로레슬링 중계를 보고 있었다. 그날 밤 김일이 이기자 박정희는 김일과 전화로 통화했다. “김 선수야? 나 대통령인데, 참 잘 싸웠어! 어디 다친 데는 없어?”(2016년 1월 20일 자 A29면에서 재인용)

박정희는 김일을 초청해 원하는 바를 물었고, 김일은 고향인 고흥 거금도에 전기가 들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있다. 2011년 거금도에 김일기념체육관이 개관했고, 2021년에는 체육관 앞에 높이 5m에 이르는 김일의 대형 동상이 섰다.

장영철의 ‘쇼’ 발언은 흔히 프로레슬링 인기가 꺾이게 된 계기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김일 귀국 초기에 국내파 선수들과 갈등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프로레슬링은 197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다.

김일과 이노키. 1993년 2월 26일자.

시인 유하가 쓴 시 ‘프로레슬링은 쑈다!’는 다소 시대착오가 있다.

‘박통 시절, 박통 터지게 인기 있었던 프로레슬링/ 김일의 미사일 박치기에 온 국민이 들이받쳐서/ 박통 터지게 티브이 앞에 몰려들던 프로레슬링/(중략)//저녁 여덟 시면 나를 어김없이 만화 가게에서 붙잡아 놓던/ 그 흥미진진한 프로레슬링이/어느 순간 시들해진 건 무슨 이유일까//(중략)/ 항간에 떠도는 루머 중 가장 유력한 설은,/ 국내파 레슬러 장영철이 프로레슬링은 쑈다라고 외친 다음부터라는/(후략)’

그러나 장영철 ‘쇼’ 발언 이후에도 국민은 김일의 경기에 열광했다. 프로레슬링 경기가 있는 날은 TV 앞에 모여들어 함께 응원했다. 상대 선수가 몰래 감춰온 병따개로 이마가 찢어져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박치기로 통쾌한 역전승을 이끄는 모습을 보며 환호했다. 1967년 4월 29일 장충체육관에서 미국의 마크 루니에게 이겨 WWA(세계레슬링연맹) 세계 챔피언이 됐을 땐 신문 호외가 발행되기도 했다.

김일의 혈투. 1967년 5월 28일자.

전두환은 공수여단장 시절 박정희 대통령에게 “각하, 레슬링은 쇼인데 뭐 하러 보십니까”라고 말했다가 크게 혼이 났다고 한다. 김일은 이를 전해 듣고 “그런 분이 대통령 되면 프로레슬링은 죽겠구나” 생각했다고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밝혔다.(2005년 8월 13일 자 A23면)

김일은 박치기 후유증으로 20년 넘게 뇌혈관 질환을 앓다가 2006년 10월 26일 77세로 별세했다. 27년 전 박정희 대통령이 떠난 때와 같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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