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매국인가...욕심과 방임으로 '슈퍼 을' 신세된 한국 원자력

오지혜 2025. 10. 25. 17: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올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의 뜨거운 감자는 단연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WEC)와의 협정이었다. 50년 동안 한수원·한전이 원전을 수출할 때마다 WEC에 1기당 1조 원 넘게 떼줘야 하고 유럽 등 대형 시장에 홀로 진출하지 않겠다 약속해 '매국 계약'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출을 추진하던 것은 2017, 2018년쯤으로 미국이 사우디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던 때와 겹친다"며 "그런데 한국이 기존 합의와 다르게 원전을 수출하려 드니 사이가 틀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① 성급했던 한수원의 독자 기술 선언
② 자극받은 WEC, 한수원 발목 잡아
③ 코앞까지 온 체코원전... 조급함 ↑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 조감도.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올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의 뜨거운 감자는 단연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WEC)와의 협정이었다. 50년 동안 한수원·한전이 원전을 수출할 때마다 WEC에 1기당 1조 원 넘게 떼줘야 하고 유럽 등 대형 시장에 홀로 진출하지 않겠다 약속해 '매국 계약'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러나 국감을 통해 불공정 계약은 당사자인 한수원뿐 아니라 과거 한국 정부의 욕심과 방임, 한미 외교 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힌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합의를 지금 와서 뒤집기도 쉽지 않아 한국 원자력의 미래를 다시 고민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① 성급했던 한수원의 독자 기술 선언

23일 부산 기장군의 한 마을에서 바라본 고리원전 2호기(오른쪽 두번째)와 영구 정지 8년 만인 지난 6월 해체가 결정된 고리원전 1호기(맨 오른쪽) 모습. 부산=뉴시스

원전 기술이 없던 한국은 WEC(과거 CE) 기술에 의존해 국내 원전을 건설했다. 이후 20년 동안 총 7,000만 달러를 내고 기술을 전수받아 노형 개발에 나섰는데 1997년 합의 때는 WEC가 "3대 중요 기술을 국산화하면 원천 기술에 대한 추가 로열티 없이 외국에 수출할 수 있다"며 "단 미국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것은 사실이니 미국 에너지부(DOE)의 수출 통제 절차는 거쳐야 한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수주 때까지만 해도 이 기술들을 국산화하지 못해 WEC와 협정을 맺고 일감을 떼줬다.

그런데 2017년부터 이 합의가 어그러졌다. 망친 건 한국이었다. 이맘때 한국이 3대 기술을 국산화 및 인허가까지 마쳤고 국내에서는 "기술 자립이 완료돼 해외 수출 시 미국의 동의 없이 수출이 가능하다"고 홍보했다. 명백한 오류였다. 미국 기술을 밑바탕에 뒀으니 수출 통제는 받아야 했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도 "미국의 승인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수원·한전과 시각차를 보이기도 했다. 황주호 한수원 전 사장은 이에 "국민께 제대로 설명 못 드려 죄송하다"고 답했다.

미국과의 사이에서도 잡음이 나왔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출을 추진하던 것은 2017, 2018년쯤으로 미국이 사우디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던 때와 겹친다""그런데 한국이 기존 합의와 다르게 원전을 수출하려 드니 사이가 틀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했다. 실제 2018년 8월 중단된 한미 원자력고위급위원회의는 아직도 복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


② 자극받은 WEC, 한수원 발목 잡다

미국 웨스팅하우스 전경. 웨스팅하우스 홈페이지 캡처

한 차례 파산 위기를 벗어난 WEC는 2022년 10월 한국를 향해 문제 삼기 시작한다. 미국 법원에 "한전·한수원이 수출하려고 하는 기술이 우리 기술을 원천으로 하니 미 정부 허가 없이 수출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소송을 건 것. 이때 한수원은 한전 없이 체코·폴란드에 수출을 추진 중이었다.

독자 기술이라 주장하던 한수원은 이때부터 앞뒤가 다르게 움직인다. 같은 해 12월 DOE에 체코 원전 수출 허가 신고를 한 것. 하지만 DOE는 "신고는 미국 법인이 하라"며 이를 반려했다. 또 이 과정에서 한수원의 기술 자료가 DOE로 흘러 들어갔다.

WEC의 지식재산권(IP) 침해 주장에 맞설 때도 내부적으로는 1997년 합의를 살펴봤다. WEC 기술을 기반으로 했음을 인정해도 3대 기술 국산화 시 추가 로열티 없이 수출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복병이 있었다. 체코가 재실시권, 즉 기술 이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법률 자문 결과 다른 나라에 원전을 지어주는 실시권은 인정되지만 기술을 이전하는 재실시권은 없다는 판단이 나온 것이다. 독자성을 주장하든 안 하든 WEC와의 협상은 피할 수 없었다.


③ 수출 청신호 켜진 체코 원전... 조급함은 최고조

전대욱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직무대행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스텝이 완전 꼬였지만 2024년 7월 17일 한수원이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한국은 잔칫집 분위기가 됐다. 그런데 8월 초 DOE가 산업부와 한수원·한전을 한데 모아 폭탄 발언을 한다. "아르곤 연구소 조사 결과 한국형 원전에 WEC 원천 기술이 포함돼 있다"고 말한 것. 한국 독자 기술이 아니니 IP에 대한 값을 치르라는 압박이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원자력 전문가는 "미국 기술을 기반으로 했음을 인정하지 않는 전략을 취하면서 1997년 합의를 스스로 무용지물로 만들었고 불공정 합의를 맺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수원의 '독자 기술' 주장에 묵인하던 정부는 이번에도 반박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최대 업적인 체코 원전 수출이 걸린 데다 상대가 원자력 통제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니 말이다. 한수원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전대욱 한수원 부사장(사장 직무대행)은 "한쪽은 체코 수출 포기와 끊임없는 법정 싸움이 우려됐고 반대쪽은 체코 수출을 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한국 원자력 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봤다"고 설명했다.

황주호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도 국정감사에서 출석해 증인석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한수원은 첫 단독 수주 결과물인 체코 원전을 성사시키기 위해 협의 과정에서 WEC의 무리한 요구까지 받아들였다. 권향엽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WEC는 당초 협정 이행 기간을 밝히지 않았고 일감 제공 규모도 더 크게 요구했다. 이에 한전 측이 반대 의견을 냈고 지금의 합의를 이뤘다고 한다.

미국이 관세 등으로 압박을 이어 가고 있는 만큼 협정 개정을 당장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종호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과거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미국 싱크탱크에서도 한미 원자력 협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이를 지렛대로 활용해 윈윈 전략을 찾아야 할 때"라며 "협력 방안으로 언급되는 합작 회사도 정부가 함께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독자 노형 개발도 WEC의 IP를 벗어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