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95mm 넘으면 자동 입금”…AI가 만드는 ‘날씨 보험’ 시대 오나

박성준 2025. 10. 2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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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사정 없이 기상데이터로 보상…세계적 확산
AI로 72개 지수 분석, 효용 11%↑·위험 36%↓
“인프라 변화 반영 어려워”…지속가능성이 과제
지난 2022년 8월 8일 오후 서울과 경기북부 등 수도권에 폭우가 내린 가운데 서울 강남구 일대 도로가 침수돼 차량이 잠겨 있다. [뉴시스]
# 지난 2022년 8월 서울 강남역 일대가 물에 잠겼다.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에 지하철역 출구로 물이 폭포처럼 쏟아졌고, 지하차도 차들이 물에 잠겼다. 2010년 이후 다섯 번째 침수였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1조4000억원을 들여 하수관을 확충하고 빗물터널을 건설했지만 침수는 반복됐다. 배수 시스템이 시간당 95mm까지 감당하도록 설계돼 한계가 있었다.
[헤럴드경제=박성준 기자] 기후변화로 극한 기상현상이 증가하면서 전통적 보험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손해 확인과 보상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급증하는 재해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특정 기상 기준만 충족되면 자동으로 보험금이 지급되는 지수형(Parametric) 보험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다만 지역 인프라 변화와 기후 패턴을 지속해서 반영할 수 있는 기준 설계가 관건이다.

웬준 주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는 24일 진행된 보험연구원 산학세미나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면 지수형 보험의 가장 큰 약점인 베이시스 리스크(지수와 실제 손실 간 불일치)를 크게 줄일 수 있다”며 “기후위기 시대에 보험의 보호 격차를 메우는 유력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는 숫자로 확인된다. 뮌헨재보험에 따르면 과거 1980년부터 지난해까지 전 세계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6조7000억달러(약 9000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이 중 보험으로 보상받은 금액은 3분의 1 수준이다. 나머지는 개인이나 정부가 떠안았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발표한 글로벌 리스크 조사에서 극한 기상현상은 14%로 2위(1위는 무력충돌 23%)를 차지했다. 미국 농업보험에서는 2017년 옥수수 보험료 34억3000만달러 중 62.1%가 정부 보조금이었다. 정부 지원 없이는 재해보험 시장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비 많이 오면 자동 보상”…AI가 보험 조건을 설계

이런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수형 보험은 실제 손해 확인 없이 미리 정한 기준만 넘으면 자동 보상한다. 예컨대 ‘6~8월 강수량 50mm 이하면 100만원 지급’ 같은 식이다. 인도 대표 투자은행인 ICICI는 지난 2003년부터 농민 대상 강우량 보험을 판매 중이다. 케냐는 가축 보험에, 카리브해 국가들은 허리케인 보험에 적용한다.

기존 보험은 손해사정사가 현장을 방문해 조사하고 서류를 검토한다. 몇 주가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든다. 반면 지수형 보험은 손해사정 비용이 거의 없고 보상이 빠르며, 도덕적 해이가 적다.

주 교수 연구팀은 미국 일리노이주 옥수수 생산 데이터 94년치(1925~2018년)와 72개 기상 지수를 딥러닝 모델에 학습시켰다. 강수량, 기온뿐 아니라 증기압, 이슬점, 습도 등을 포함해 신경망이 복잡한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AI 설계 보험은 기존 대비 농민 효용 11.6% 증가, 위험 36.4% 감소, 최악의 상황에서 손실 구간(5% VaR)도 평균 63달러가량 완화됐다. 보험료는 29.09달러에서 29.32달러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인접 주에서도 검증한 결과, 효용 개선 6~9%·위험 감소 19~25% 등의 효과가 나타났다. 주 교수는 “실제 농작물 피해는 강수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며 “기온, 습도, 바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AI가 이런 패턴을 학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챗GPT에 쓰이는 ‘트랜스포머’ 모델로 연구 범위를 확장했다. 미국 전역 대두 생산 데이터 12년치와 25개 가뭄 지수를 분석한 결과, 북부는 난방도일·남부는 냉방도일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같은 지수형 보험이라도 위스콘신과 텍사스는 완전히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주 교수는 “AI 기술을 활용하면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보험 설계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24일 서울 여의도 보험연구원에서 ‘기후변화 리스크와 지수형 보험’의 주제로 진행된 제63회 산학세미나에서 웬준 주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박성준 기자]
같은 비, 다른 피해…지수형 보험의 ‘기준 리스크’

하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올해 8월 강원 강릉시는 극심한 가뭄에 단수 사태를 겪었지만, 55km 떨어진 속초시는 문제가 없었다. 강수량 차이는 85mm로 비슷했지만, 속초는 과거 8차례 단수 경험 후 지하댐을 건설해 같은 날씨에도 피해가 달랐다.

이날 토론자인 김석영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손해사정 비용과 기준 설정 비용 중 어느 쪽이 더 큰지, 지수형 보험의 기준은 몇 년이나 유효한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남역도 마찬가지다. 1조4000억원을 들여 배수 능력을 높였지만 ‘시간당 95mm’ 기준은 여전히 한계다. 인프라가 개선되면 과거 기준으로는 리스크를 정확히 반영할 수 없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인프라 변화를 반영해 기준을 계속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그 비용과 불확실성이 커지면 소비자와 보험사 모두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AI 기술로 어느 정도 줄일 수는 있지만, 지역별 인프라 수준, 시설 개선 등 변수가 많아 베이시스 리스크를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보완 방안으로 공공-민간 파트너십(PPP)을 제시했다. 정부가 기상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본 비용을 지원하면, 보험사는 AI로 정교한 지수를 개발하고 상품을 판매하는 식이다. 주 교수 연구팀 시뮬레이션 결과, 두 가지 협력 방식 모두 보험사는 수익성을 확보하고 농민 효용은 5~10% 개선됐다.

주 교수는 “정부가 데이터 인프라와 초기 비용을 지원하면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전통 보험으로 커버 안 되는 영역을 보완하는 수단으로는 가치가 있다”면서도 “한국 도입 시 인프라 수준, 지역 특성, 지속적 기준 갱신 체계를 자세히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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