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로 남은 사람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은 이름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된 창업자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콘텐츠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흥부전-126][브랜드로남은사람들-66]토마스 버버리
가을의 대명사 바바리코트의 기원
여름 더위가 가신지 얼마 안된 요즘, 눈깜짝할 사이 가을이 냉큼 지나가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는 반팔을, 다른 이는 패딩을 동시간에 입는 일이 벌어지며 시공간을 파괴하는 계절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가을. 가을하면 떠오르는 패션의 대명사가 하나 있다. 바로 바바리 코트다.
토머스 버버리
사실 트렌치 코트라는 표현이 맞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날씨가 쌀쌀해지는 가을께 입는 짙은색 계열의 코트를 바바리 코트라고 부른다. 트렌치 코트의 대명사이자 가을의 옷이라고 불리는 바바리 코트는 사실 명품 패션 브랜드 버버리에서 기인했다.
가을의 공기에는 묘한 향이 있다. 비가 오락가락하고 바람이 부는 날, 거리에는 트렌치코트를 단정히 여민 사람들이 스산하면서도 품격 있는 그림처럼 걸어간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엔 늘 버버리가 있다.
낙엽이 흩날리는 런던의 거리를 닮은 색, 묘하게 고독하면서도 단정한 실루엣. 버버리는 단순한 옷이 아니라 계절의 대명사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그 시작은 런던의 화려한 패션 거리도, 왕실의 주문도 아니었다. 한 시골 청년의 집념과 질문에서 출발했다.
시골 재단사 소년, 토마스 버버리의 고민
버버리를 창업한 토마스 버버리는 1835년 8월, 영국 서리주에 위치한 브록햄 그린이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농사와 소규모 상점을 겸하던 평범한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 소년 토마스는 일찍부터 옷감과 실에 흥미를 느꼈다. 마을의 옷가게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며 그는 단순히 옷을 만드는 기술보다 ‘옷이 사람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버버리의 가게
그 시절 영국의 농부들과 사냥꾼들은 비바람 속에서 무거운 모직 외투를 걸쳤다. 젖으면 무거워지고, 말라야 다시 가벼워지는 옷. 버버리는 항상 궁금했다. 왜 이 옷은 항상 사람들을 보호하는 대신 힘들게 하는걸까.
그렇게 성인이 된 토마스는 21세가 되던 해, 작은 모험을 감행했다. 고향에서 멀지 않은 햄프셔 주의 베이징스토크에 자신의 옷가게를 연 것이다. 그는 단순히 양복을 재단하는 재단사가 아니라, 날씨와 싸우는 사람들을 위한 옷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비와 바람을 막는 옷, ‘가바딘’의 탄생
영국은 안개와 비로 유명하다. 1년 365일 비가오는 날씨 탓에 굳이 우산을 쓰지 않고 오히려 비를 맞는게 일상인 나라다. 농부, 사냥꾼, 군인, 여행객 모두가 그저 비를 맞을 뿐이지 피하거나 막는 일은 없었다. 비를 막아주는 방수복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너무 뻣뻣할 뿐 아니라 통기성이 없어 자주 습해지고 몸에 달라 붙었다. 그렇다보니 토마스는 이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했다. 그는 면과 울을 고밀도로 직조하고, 방수 처리하면서도 통기성을 유지하는 새로운 원단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게 1879년, 세상에 없던 옷감 ‘가바딘(Gabardine)’이 탄생했다.
버버리의 트렌치 코트
가바딘은 혁명적인 소재였다. 방수가 되지만 답답하지 않았고, 가볍고 유연했다. 그는 이 원단을 1888년 공식 특허로 등록하며 본격적인 산업화에 나섰다. 입소문을 타며 버버리 매장은 점점 사냥꾼, 탐험가, 군인들로 붐볐다. 사람들은 ‘비 오는 날에도 숨 쉬는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고, 버버리의 이름과 그의 옷은 점차 영국 전역으로 이름을 알렸다.
왕실의 명령을 받은 재단사
버버리의 명성은 곧 런던까지 닿았다. 1891년, 그는 런던 하이마켓에 첫 대형 매장을 열었다. 이후 매장이 있던 자리의 주소는 오랫동안 ‘버버리 하우스’라 불리며 본사의 상징이 된다.
1897년, 북극 탐험가 노르웨이 출신의 프리데요프 난센은 버버리의 가바딘을 입고 북극 탐험에 성공했다. 그 후로 버버리의 코트는 ‘극지에서 입을 수 있는 유일한 코트’라는 명성이 붙었다. 영국 왕실과 군부에서도 버버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노르웨이의 탐험가 프리데요프 난센
1901년, 버버리는 영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 군용 코트를 설계하게 된다. 전쟁에서도 쓰일만큼 튼튼하면서도 실용적인 옷. 이때 만들어진 옷이 바로 오늘날 트렌치코트가 된 그 옷이다.
전쟁이 만든 명품, 트렌치코트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는 영국 장교들의 공식 군복으로 채택된다. ‘트렌치(trench)’라는 단어의 뜻은 참호. 참호 속 진흙과 비, 바람을 견디기 위해 설계된 코트였다. 어깨의 견장과 벨트의 D 링, 비바람을 막는 덧깃과 같은 디테일들 역시 철저히 전쟁을 치르는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처럼 전장에서 탄생한 옷은 영국을 대표하는 의복으로 상징됐고 버버리라는 이름은 군복에서 일상복으로, 패션의 중심으로 넘어온다.
버버리 코트를 입은 영국군 장교
패턴과 로고, 상징의 탄생
1924년은 버버리에게 의미있는 중요한 해 중 하나다. 이 때 버버리는 코트 안감에 독특한 체크무늬를 도입했다. 크림색 바탕에 검정, 흰색, 빨간색이 교차하는 이 무늬는 처음엔 단순한 안감 장식이었지만, 고객들은 이 무늬에 매료되었다. ‘버버리 체크(Burberry Check)’는 곧 브랜드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았다. 스카프·백·우산 등으로 확장되며 영국적 품격의 상징이 되었다. 이 무늬 하나가 버버리를 상징하는 패턴이 된 것이다.
버버리 패턴
1901년, 버버리는 말 탄 기사 위에 방패와 깃발을 든 로고도 선보였다. 그 깃발에는 라틴어로 ‘Prorsum’이라는 단어가 새겨졌다. 전진이라는 의미다. 이 단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토마스 버버리가 평생을 걸쳐 보여준 태도였다. 그는 늘 시대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기능과 미학을 결합한 혁신을 멈추지 않았다. 비를 피하는 옷이 아니라, 비를 이겨내는 옷. 그것이 버버리의 본질이었다.
버버리 로고.
시대를 넘어, 클래식이 된 명품
토마스 버버리가 세상을 떠난 것은 1926년 봄이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이후에도 100년간 이어 내려오고 있다. 트렌치코트는 20세기 영화 속에서도 하나의 문화적 상징으로 살아남았다. 험프리 보가트가 <카사블랑카>에서, 오드리 헵번이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걸친 그 코트가 바로 버버리 코트였다. 영국의 우울한 하늘과, 그 속의 절제된 낭만을 가장 잘 표현한 옷으로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은 그 버버리 코트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에서 버버리코트를 입은 배우들.
버버리의 시작은 패션이 아니라 날씨였다. 끊임없는 비와 안개 속에서 인간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 시도가 브랜드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패션이 아니라 ‘기능’에서 태어난 브랜드였기에, 버버리는 시대가 바뀌어도 본질을 잃지 않았다. 또한 버버리의 옷은 처음부터 멋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실용 속에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것이 오히려 진짜 명품, 즉 럭셔리가 됐다. 디자인이 단순함을 잃지 않은 이유도 이러한 기본에 충실한 원칙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이유는, 처음부터 유행이 아닌 필요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의 브랜드가 한 계절을 상징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버버리가 가진 상징성은 위대하다. 사람을 지켜주지 못하는 옷을 개선하자는 아이디어에서 탄생한 버버리 코트는 이제 정말 짧아진 가을에 잠깐이지만 우리의 몸을 휘감고 또 지나갈 것이다.
[흥부전]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오리저널 시리즈를 연재 중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