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없다” 美 전역에서 ‘反트럼프’ 시위…“미국 역사상 최대 700만 명 운집”
‘고물가·관세’가 화약고…군 동원·사법 장악·이민자 추방에 ‘거센 반발’
(시사저널=김하늬 미국 통신원)
트럼프 2기 9개월 차 미국 시민의 시위가 50개 주 전역을 뒤덮었다. 단순한 반(反)트럼프 집회가 아니라 그의 리더십 스타일, 권력 집중, 국가기구 이용 방식 등에 대한 구조적 비판이다. 한마디로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경고음인 셈이다. 미국 전역에서 사상 최대 규모로 열린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집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 남용에 반대한다"는 메시지가 동시다발적으로 분출됐다. 지난 3월 소규모 인원과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시위는 10월 미 전역 50개 주 동시 집회로 전방위적으로 확산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권 남용에 저항하기 위해 시작된 이번 시위는 이민, 언론자유, 민주주의 위기, 대통령 품격 논란 순으로 다변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은 지금도 '좌파 시위'라며 그 의미를 축소 폄하하지만, 중도층 여론은 이를 민주주의 수호의 움직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비폭력 원칙'과 '권위주의 저항'이라는 집회의 프레임이 부각되면서 단순한 정책 반대가 아니라 정치문화 전환 조짐으로도 해석된다. 주요 외신들은 이번 움직임을 단순한 정권 비판이 아닌 민주주의적 규범 위기의 집단 표출로 정의하며 지켜보고 있다.


"트럼프 권위주의에 대한 불안, 거리에서 폭발"
10월18~19일 주말, 미국 50개 주 2700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벌어졌다. 주최 측 추산 700만 명, 경찰 추산 500만 명 이상의 참여를 기록했다. 워싱턴DC 내셔널 몰(National Mall)에서는 시민들이 'NO KINGS, NO CROWNS(왕도, 왕관도 없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시위대는 미국 헌법 1조 문구가 적힌 팻말을 흔들고, 백악관 앞에서는 시민들의 'We the People(우리는 국민이다)' 합창이 울려 퍼졌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6월 노 킹스 시위보다 200만 명이나 더 많은 인파가 모였다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제에 대한 지지가 약화되고 있다는 엄중한 경고"라고 해석했다. 영국의 가디언(The Guardian)은 "미국이 권위주의로 미끄러지고 있다는 공통된 불안이 거리에서 폭발했다"고 분석했다.
'노 킹스' 운동의 핵심 구호는 단순하다. "No Kings, Only Laws(왕이 아닌 법만 있다)." 참가자들은 '비폭력' 원칙을 선언했고, 각 지역 집회는 축제 형식으로 진행됐다. 워싱턴 현장조사에 따르면 참가자의 절반 이상이 중산층 여성이었고, 다수가 정당 소속이 아닌 독립 성향의 유권자였다. 대다수 참가자는 기존 정당 조직이 아닌 시민 네트워크를 통해 참여했다. 실제 참가자들은 모두 비폭력 원칙을 선언했다. 워싱턴 시위 현장에는 'Democracy is not a meme(민주주의는 농담이 아니다)'라는 손팻말이 주요하게 등장했고, LA에서는 종교단체들이 헌법을 낭독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직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나를 왕이라 부르지만 나는 왕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전투기에서 시위대를 향해 '갈색 액체'를 투하하는 AI 합성 영상을 X(옛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조롱으로 시민을 대했다"고 비판했다. 영상에 사용된 음악의 원작자 케니 로긴스는 "내 노래를 조롱용으로 쓰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항의했다.
시위대의 핵심 불만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의 비민주성'으로 요약된다. 모든 쟁점은 노 킹스 운동의 핵심 메시지인 '권력은 법 위에 설 수 없다'는 한마디로 귀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물가부터 연방정부 셧다운(업무 정지), 관세, 군 동원, 사법 충돌, 언론 탄압, 이민자 추방 논란까지 그동안 일구어온 민주주의 근간을 송두리째 말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反트럼프 넘어 '민주주의 수호' 움직임으로"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및 물가 상승에 대한 대중의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대다수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때문에 최근 몇 달 동안 인플레이션이 상승했다는 데 동의하고, 앞으로 몇 달 동안 관세로 인한 가격 인상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지적했다. 많은 지표가 아직 3%대에 머물러 있지만 관세 도입 이후 소비자가격에 점진적 압력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불법체류자 단속과 추방 명령 또한 미국 시민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들어 '신속추방 명령'이 확대돼 인권단체뿐 아니라 시민들의 반발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민위원회(AIC)는 "트럼프 행정부가 법률·의회·사법부의 권한을 무시하며 이민자 및 반대세력을 국가권력의 수단으로 동원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전국 주요 도시와 국경 지역에 주방위군을 잇따라 배치하면서 야기된 불안감도 표출됐다. 치안 명분의 군 동원에 대해 미국인 다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군 동원 권한에 우려를 표시했다. 10월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의 58%가 "대통령은 외부의 위협이 있을 때만 군을 투입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 조사는 10월3일부터 7일까지 미국 성인 1154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최근 이와 관련한 사법부의 엇갈린 판결도 미국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3명의 판사로 구성된 미 제9구역 항소법원은 10월20일(현지시간) 포틀랜드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주방위군 배치를 허용했다. 지난주 다른 항소심 재판부에서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대한 주방위군 배치를 차단한 것과 상반되는 결과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들이 정부에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학계와 언론은 '노 킹스' 운동을 단순한 거리 시위가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의 자가 면역 체계'로 본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모든 자랑과 허세에도 대통령이 인기가 없고 그의 행정부가 취약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해석했다. 다나 피셔 아메리칸대학 교수는 "이번 시위는 미국 현대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시위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노 킹스 시위가 단지 정책 반대가 아닌 민주주의 자체를 지키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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