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마라톤의 계절, ‘굿즈 언박싱’에 열광하는 러너들

직장인 박모(32)씨는 오는 26일 열리는 춘천마라톤(춘마) 10㎞ 코스에 참가한다. 그는 완주했을 때 느껴지는 쾌감도 좋지만, ‘기념 티셔츠’도 갖고 싶어서 8만원을 내고 춘마 10㎞ 참가를 신청했다. 박씨는 “춘마는 스태프용 바람막이 재킷이 예뻐서 관심을 갖게 됐다”며 “올해 초엔 3㎞도 못 뛰었는데, 춘마 기념 티셔츠 하나만 바라보고 연습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대회 기념품으로 제공되는 브랜드 할인 쿠폰으로 운동복을 더 살 계획이다.
마라톤 동호인이 많아지면서, 마라톤 대회 기념품 인기도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완주도 좋지만, 기념품은 더 좋다’는 말을 할 정도다. 대회 참가자들은 달리기 전부터 기념품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고, 마음에 드는 기념품(굿즈)을 얻기 위해 새로운 대회에 도전한다. 참가하지 못한 대회의 기념품을 중고 거래로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기념품 도착하면 SNS에 ‘인증’… “대회마다 다른 굿즈 받는 재미 쏠쏠”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러닝 인구는 약 883만명이다. 업계에서는 1000만명을 넘었다고 보기도 한다. 달리기가 어엿한 취미 활동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며 전국 곳곳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다. 러너를 잡으려는 주최 측 노력은 굿즈 개발로 이어졌다. 예전에는 기념품이 완주 메달과 배번(등번호) 정도였지만, 요즘은 러너들이 어떤 굿즈를 주는지 보고 대회 참가를 결정하기도 한다.
춘마의 경우 검정색 티셔츠와 완주 메달, 양말, 러닝 에너지 젤, 선크림, 자일리멜츠(잇몸 부착형 자일리톨 캔디)가 기념품이다. 박씨는 “10㎞ 참가비가 8만원인데, 기념품만 받아도 본전은 건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념품이 인기를 끌자 ‘언박싱(unboxing)’도 유행하고 있다. 마라톤 대회 참가자들은 배번표와 함께 도착한 상자를 열며 SNS에 인증하고, 완주 후엔 기념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올린다.
대회 전부터 기념품이 풍성한 대회 목록을 공유하는 경우도 많다. 직장인 서모(35)씨는 이른바 ‘기념품 러너’ 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해 처음 참가한 지방 대회에 4만원을 내고 참가했는데, 기념품으로 티셔츠·선크림·헤어밴드·음료는 물론 스포츠 마사지와 기록 측정 서비스까지 제공받았다. 서씨는 “달리기 자체도 즐겁지만, 대회마다 다른 굿즈를 받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무한도전 로고 그려진 티셔츠, 헬로키티 새겨진 모자도
이벤트성 대회에서는 기념품 경쟁이 더 치열하다. 지난 5월 열린 ‘무한도전 마라톤’은 10㎞ 코스 참가비가 9만9000원이었지만 접수 시작 2분 만에 마감됐다. 이유는 단연 굿즈였다. 무한도전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반바지·양말 세트에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까지 제공됐다.
의류 제품은 대회에 참가하지 않아도 따로 살 수도 있었는데, 전부 다 사면 8만원이 넘어 “참가비가 저렴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회에 참가한 직장인 김모(23)씨는 “‘한정판’처럼 느껴졌다.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캐릭터와 협업한 마라톤도 인기다. 김모(34)씨는 지난 9월 열린 ‘산리오 캐릭터 런’ 참가를 위해 처음으로 러닝을 시작했다. 김씨는 참가비로 8만원을 냈고, 모자·티셔츠·양말·짐색·화장품 키트·캐릭터 메달 등 풍성한 기념품을 받았다.
기념품에는 헬로키티, 시나모롤, 마이멜로디, 쿠로미 등 다양한 산리오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김씨는 “예전에는 해외 대회에서만 이런 캐릭터 협찬 굿즈를 볼 수 있었는데, 한국에도 이런 대회가 생겨 기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마라톤이 소비와 경험이 결합된 새로운 여가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운동을 하면서 선물을 받는다는 마음, ‘공짜를 좋아하는 인간의 본심’이 결합된 결과”라며 “협찬사는 마케팅 효과를, 주최 측은 운영비 절감을, 참가자는 만족감을 얻는 구조로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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