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 분노, 죄책감…기후 위기 극복에 필요한 9가지 감정은
케이트 마블,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

크레타섬에 갇힌 이카루스는 몸에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탈출을 꿈꾼다. 하늘을 나는 쾌감에 “바다와 태양의 중간 거리를 유지하면서 비행하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한 채 높이 날아오른 그는 태양에 점점 더 가까워졌고, 태양열에 날개에 붙인 밀랍이 녹으면서 추락해 죽고 만다. 중용의 덕을 강조한 그리스 신화를 21세기 기후과학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실제로는 높은 산꼭대기일수록 더 춥고, 심지어 만년설로 뒤덮여 있다. 대기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차가워진다. (...) 나는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아는 것, 대기가 위로 올라갈수록 차가워져서 구름과 비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는 경이로운 면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신간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지구과학을 탐구하는 ‘고다드 우주연구소(GISS)’ 출신의 저자가 기후 변화에 관한 과학적 사실과 역사적 논의를 담은 책이다. 원제는 ‘Human Nature: Nine Ways to Feel About Our Change Planet(인간 본성: 지구의 변화에 대해 느끼는 9가지 방법)’. 책 제목처럼 저자가 느낀 9가지 감정(경이, 분노, 죄책감, 두려움, 애도, 놀라움, 자부심, 희망 , 사랑)으로 기후 변화를 조명한다.

지구에 바다가 생기고 바람이 불면서 대기가 순환하는 ‘경이로운’ 사실을 이카루스 신화 같은 예시로 착실하게 설명한 저자는 대기 중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이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부족했다며 ‘분노’하고, 현상의 원인에 자신도 있었음을 되새기며 ‘죄책감’을 느낀다. 극도의 더위와 습도를 동시에 경험하는 ‘습구온도’가 35도를 넘어서면 사람은 야외에서 몇 시간 만에 죽고 마는데, 2020년 아랍에미리트와 파키스탄 기상관측소에서 이미 그 임계점을 넘어선 습한 고온을 관측했다. 현대과학은 임계점을 넘어선 기후와 인간의 폭력성 사이에 분명한 연관 관계가 있음을 밝혀내기도 했다(두려움 편).
지구가 망했다고 낙담하긴 이르다. 산업혁명 초기 단계를 책임진 에너지원은 고래기름이었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세상이 석유를 사용하게 되고, 고래 사냥을 중단하는 국가 간 협약이 도출되면서 고래는 멸종 위기를 벗어났다. 저자는 “석유를 연료로 쓰는 발전소도 고래기름의 운명을 따라야 한다”며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구는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변할 수 있습니다. 기후 변화에 맞서는 것은 거대한 실험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실험을 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저는 미친 과학자니까요."
기후변화에 관한 전문가 시각이 돋보이지만, △로마와 몽골제국의 흥망성쇠 등 자연의 변화가 인류사에 미친 영향에 대한 개인적 해석 △각종 신화와 창작 시나리오에 빗댄 기후 변화 원리 설명 △기후 변화를 연구하게 된 저자의 개인사까지 버무려 집중도가 상당히 떨어진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인용한 마지막 장 ‘사랑’은 저자가 이 책을 어떤 의도로 복잡하게 썼는지, 그 시도가 왜 실패했는지를 보여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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