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벗어난 '탁류' 진짜 주인공은 왈패 '무덕'이었다
<7> 디즈니플러스 '탁류'
편집자주
주말에 즐겨볼 만한(樂)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신작에 대한 기자들의 방담.

천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추창민 감독과 KBS 드라마 ‘추노’의 천성일 작가가 의기투합한 디즈니플러스의 첫 한국 사극 ‘탁류’가 국내에서 6일 연속 시리즈 부문 1위(플릭스패트롤 집계)를 차지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총 9부작인 '탁류'는 조선 중기 경강(한강)의 마포 나루터를 배경으로 힘없는 일꾼에게 불합리한 법칙을 강요해 이권을 챙기는 왈패, 이들의 뒷배인 무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상단 세력이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톱스타 캐스팅도, 궁중 사극만큼 화려한 세트도 없다. 대신 까무잡잡한 얼굴과 봉두난발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민초들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영화 같은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에 호평이 쏟아지고 있지만 유기적이지 못한 극 전개, 캐릭터 배치 등은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본보 문화부 기자들이 '탁류'를 깊게 들여다봤다.

권영은 기자(권): 역사를 알고 보는 만큼 당시 시대상과 위정자들 행태에 나라 걱정을 하면서 보게 만든 드라마였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우리는 담만 치고 있다” “굼뜨고 뒤처진 대가를 언젠가는 치르게 될 것”이라는 최씨 상단 막내딸 최은(신예은)의 대사가 있는데, 이들에게 닥칠 비극이 예상돼 무척 안타깝더라.
고경석 기자(고): 기존 사극에서 보던 궁중이나 양반 등 상류층 중심의 시대극과는 달라 신선했다. ‘추노’가 떠오르기도 했다. ‘정체 미상의 반전 영웅 캐릭터’라는 장르적 클리셰와 조선 시대 부패 관리라는 역사적 소재를 활용해 전체적 만듦새는 무난하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왈패를 비롯해 하층민의 삶을 입체적으로 잘 그렸는지 의문이 남는다.
강유빈 기자(강): 정통사극 자체가 오랜만이다. 연극과 영화 무대에서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들이 다양한 조연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살려낸 점이 좋았다. 그런데 나루터와 왈패, 착취 구조 같은 기본 설정에 더해 많은 캐릭터 각각의 전사까지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다 보니 극 전체가 무겁게 늘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마지막 두 회에서 사건이 급전개된다.
고: 캐릭터 배치도 아쉽다. 왈패 내 악당과 코미디 캐릭터(특히 무덕의 부하들과 덕개 등 엄지들, 윤가·방가 등 검지들)가 자주 중첩된다. 캐릭터 간 역학관계도 입체적이지 않고, 서사적으로 잘 쓰였다고 보기 어렵다. 왈패와 밀고 당기는 역할을 할 것 같았던 최씨 상단 무리는 왈패에게 너무 의존적이다. 최은이 부패 관리, 왈패와 맞설 것이라 예상했는데 주인공을 빛나게 하는 캐릭터일 뿐이었다. 뒤늦게 중요한 역할로 나오는 대호군(최원영)도 장르적으로만 기능하다 사라진다.

권:왈패무덕(박지환)의 캐릭터만큼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연기파로 알고 있었지만 박지환 배우의 인생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사흘 굶어보면 정의나 인간다움을 지키기보다 살아남는 게 지상 과제일 거다. 무덕이 개과천선하지 않고 한솥밥 먹던 시율(로운)을 밀고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썩어빠진 세상 나만 잘 살면 돼. 막 살자. 막 사는 XX 못 당한다”는 무덕의 말은 지금을 사는 젊은 세대 생존방식과도 닮아 있다.
강: 아내는 무덕에 대해 “그 사람, 아주 작지만 선한 마음이 있어”라고 했지만 궁지에 몰리면 의리나 인정은 자취를 감춘다. “항상 흔들리는, 가장 우리 같은 사람”이라는 추창민 감독 말처럼 선역이나 악역으로 단순히 규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캐릭터라 매력적이었다. 여기에 듬성듬성 비뚤게 난 수염 등 분장, 배우의 연기까지 3박자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
고: 시율은 복수극을 위한 액션 영웅 외에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하는 인물이다. 오히려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무덕이 주인공처럼 보인다. 무능과 무력(無力)을 잔꾀로 보완하며, 여러 인물을 자극하고 사건을 추동한다. 하지만 무덕을 ‘미워할 수 없는 악인’으로 가둬 두다 보니 서사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강: 드라마는 선악을 가르기 이전에 내일의 생존 자체가 위태로웠던 시대의 인간상을 보여준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팍팍한 사회와 곳곳에서 벌어지는 아귀다툼도 돌아보게 한다. 그런데 드라마 소개 문구의 ‘혼탁한 세상을 뒤집고 사람답게 살기 위한 운명 개척 드라마’라는 표현은 그리 와 닿지 않는다.
고: 민초의 미약한 힘이 모여 새로운 세상을 향한 변화를 이끈다는 주제를 전하려 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서사의 주 에너지원은 하층민의 억눌린 분노가 아닌, 주인공의 ‘사적 복수’다. 주제와 복수 서사를 좀 더 긴밀하게 연결했어야 한다. 게다가 지도를 둘러싼 암투가 갑자기 끼어들어 산만해졌다. 시율의 복수와 지도는 매끈하게 달라 붙지도 않았다. 최씨 상단의 역할이 ‘지도 지키기’라니 너무 뜬금없지 않나.

권: 디즈니플러스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로 전통 사극을 선보인 건 처음이다. 글로벌 시청자를 겨냥한 플랫폼에서도 퓨전이나 판타지가 아닌 가장 한국적인 사극이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 최근 해외 유수 출판사에 판권을 잇따라 팔아온 한 출판사 대표 말이 해외에서는 우리 생각보다 더 한국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하더라.
강: '탁류'가 톱10 순위에 들었던 국가는 대만, 일본, 홍콩처럼 전부터 한국 정통사극에 대한 수요와 시청층이 있는 국가였다. 플랫폼 자체의 영향력 한계도 있겠지만, 제작진 역시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해외 시청자를 특별히 고려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시즌제로 후속 이야기를 제작한다면 보다 다양한 문화권의 시청자를 K사극에 몰입시킬 방법을 모색해봤으면 좋겠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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