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3년, 긴장의 끈 느슨해질 우려"

원동욱 2025. 10. 25.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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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인 지난해 10월 25일. 이태원 골목에서 인파 사이로 경찰관이 현장을 지키고 있다. [뉴스1]
“지금이 밤 10시15분이잖아요. 매일 이 시간이면, 좀… 그래요.”

지난 18일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12년째 식당을 하는 한모(51)씨는 “가슴에 큰 할큄이 남은 것 같아요”라고 했다. 시간이 장면을 떠올린다면서.

그 식당의 손님인 조윤경(28)씨. “근처가 직장이라 여기서 약속이 종종 생겨요. (속으로) 되돌려 보고 싶지 않은데, 여기만 지나가면 그때가 펼쳐집니다.” 장소가 그 시간으로 데려다준다는 얘기.

그날, 그 골목. 3년 전인 2022년 10월 29일 10시15분경, ‘해밀턴호텔 옆 골목’이었다. 핼러윈을 즐기려던 수백 명이 쓰러졌다. 159명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 가을, 다시 핼러윈 시즌. 이태원의 밤은 북적거렸다. 대부분 2030세대나 외국인 관광객. 1번 출구를 벗어나 ‘그 골목’으로 들어섰다. 낮은 조명도. 그만큼 내리깔린 침묵. 그리고 국화와 사진, 손으로 쓴 편지….

“어쩌면 그 (희생자들의) 사진 중에 제 것도 놓였을 수도 있어요. 삭제 기능이 있다면, 3년이 됐으니, 그날부터 오늘까지만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습니다.” 생존자 이모(30)씨. 그는 “사실 참사 당시엔 기억도 안 날 정도로 패닉 상태”였단다. 그러다가 건넨 한마디. “그런데 이태원을 왜 끄집어내는 거예요?”

언제 어디서든 이태원 참사 같은 대형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문현철 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한국재난관리학회 부회장)는 “압사를 후진국형 사고라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안이함을 부르는 대단히 위험한 인식”이라며 “지금이라도 순식간에, G7 선진국도 비껴가지 않고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실제 그런 안이한 사고와 행동은 선진국 영국을 강타했다. 1989년 4월 15일 영국 셰필드의 힐스버러 스타디움.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리스트의 1988-89시즌 FA컵 준결승전이 열렸다. 수용 관중의 5배가량이 입장하며 97명이 사망했다. 참사 초기엔 관중 책임론이 제기됐지만, 이후 조사 결과 경찰의 인원 배치 실패와 출입 통제 미흡이 원인이었음이 드러났다. 영국의 스타디움이 모두 입석에서 좌석으로 바뀌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이태원 참사 이전 대형 압사사고가 있었다. 1959년 7월 부산공설운동장에서 시민 위안잔치 중 쏟아지는 비를 피하려다가 64명이 압사했다. 1960년 1월에는 설을 앞두고 서울역에 몰린 승객들이 계단에서 쓰러지면서 31명이 사망했다. 2005년 10월 경북 상주 시민운동장 가요프로그램 녹화 직전 좁은 출입문에 방청객이 몰리면서 11명이 명을 달리했다.

그런데, 이 상주 사고와 이태원 참사는 공통점이 있었다. 경사로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계단에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1980년 2월 부산 초등생 1000여 명이 학교 계단에서 한꺼번에 넘어졌는데, 그중 5명이 사망했다.

지난 20일 오후 6시40분, 서울 지하철 2호선 사당역. 4호선과 만나는 이 환승역은 퇴근 시간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출구 방향을 찾느라 몇 명이 멈칫했다. 인파의 흐름도 순간 출렁거렸다. 잠시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사람들은 다시 한꺼번에 계단으로 몰렸다. 그 속의 직장인 김모(36)씨가 혀를 내둘렀다. “무섭다. 살아서 집에 가는 게 기적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기자도 김씨를 따라 숨을 헐떡였다. 누군가 “어서 타라”며 지하철의 ‘좁은 문’으로 욱여넣었다. 문 교수는 “계단과 경사로, 좁은 문 등 문제의 본질은 ‘사람이 많음’이 아니라 동선의 얽힘”이라며 “환승역 동선을 인지심리·건축공학 관점에서 물 흐르듯 설계해야 하는데, 도쿄 지하철에 비하면 우리의 안내 체계는 10분의 1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안전사고의 위험이 큰 지하철 환승역과 도심 축제, 대형공연도 ‘잠재 재난’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다음 날인 21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3호선 대화역에서는 수만 명이 쏟아져 나왔다. 근처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내한공연을 찾은 6만 명 중 대부분이었다. 공연장과 가까운 3번 출구로 인파가 몰렸다. ‘정체’ 수준이었다. 30대 임성빈씨는 “병목 구간인 3번 출구와 횡단보도까지 사람이 몰려 내가 걸어간 게 아니라 밀려가는 듯했다. 문득 이태원 사고가 머리를 스치더라”고 말했다. 근처에 거주한다는 김효근(48)씨도 “여기서 공연이나 행사가 자주 열리는데, 이태원 참사가 떠오를 때도 있다”고 밝혔다. 이날 오아시스 내한공연은 경찰과 공연 주최 측 요원 100여 명의 안내와 통제로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3년 전 이태원에서는 지자체도, 경찰도, 소방도, 누구도 통제하지 못했다. ‘그 골목’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생존자 이모씨가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듣는 이가 없었다”고 할 정도였다.

정부는 참사 이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개정했다. 밀집 인파 감지용 인공지능(AI) 폐쇄회로(CC)TV를 늘리고, 주최자가 없는 지역 행사도 관할 자치단체가 안전관리 의무를 지도록 했다. 또 이 개정안에 따라 ‘다중운집인파재난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을 만들었다. 이를 근거로 24일부터 열흘간 서울 이태원과 홍대 등 사람이 많이 몰리는 14곳에 인파위기경보 ‘주의’ 단계를 발령한다. 올 1월 매뉴얼 마련 후 처음이다.

하지만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응급의학과 왕순주 교수는 “매뉴얼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못 박았다. 그는 “개별 대책이 아닌 인프라 수준의 종합 체계가 필요하다”며 “통합 시스템 구축, 역할·권한의 명확한 부여(참여 주체별 임무 규정), 상시 홍보·교육으로 시민 행동 변화를 고도화하는 3축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과 교수는 “AI 인파 감지 시스템을 아끼지 않고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결국 현장에서 결정권을 갖고 재난을 예방하는 역할은 사람이기 때문에 전문 안전 책임자 양성과 효율적 배치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문 교수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진영 논리에 따라 정치적 책임을 묻는데, 문제는 정치가 아니라 안전이고, 진영을 떠나 시스템적인 책임을 묻고 사고를 막기 위해 계속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핼러윈. 그리고 프로야구 포스트시즌과 가을꽃 축제, 크리스마스…. 연말로 갈수록 광장과 도심은 다시 붐빌 예정이다. 그리고 출퇴근 지하철과 설 연휴 서울역….

염 교수는 “이태원 참사 이후 3년, 긴장의 끈이 느슨해질 우려가 있다”며 “재난은 언제든 덮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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