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정파가 대법원 구성하게 되면, 판결 신뢰성 보장 못해"
김창보 전 서울고등법원장이 보는 ‘여당발 사법개혁’

4년 전, 서울고등법원장에서 물러나며 원로 법관으로 재판 업무에 복귀하며 김창보 변호사가 당부한 말이다. “격화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이 재판 과정에 그대로 투영돼 재판 결과를 진영논리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보니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껏 재판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고 말하면서다.
문재인 정부 초기, 김명수 대법원에서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사법 농단’ 격랑을 헤쳐나갔고 이후엔 서울고법원장을 지냈다. 김 전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도 겸직했던 그는 서울고법원장에서 물러나면서 평판사로 이동해 화제가 됐다. “다툼을 중재하고 풀어 주는 게 좋다”던 그는 결국 지난해 정년으로 법복을 벗었다. 그가 물러난 지난해 여름 이후 법원은 유례없는 입법부와 곧이어 출발한 행정부의 압박에 직면했다. 이대로면 곧 ‘개혁’을 내세운 이들에 의해 강제로 수술대에 오를 참이다.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22일 만났는데 공교롭게도 이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희대 대법원장의 거취결단을 다시 촉구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오른쪽)이 지난 13일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 정회 후 이석하고 있다. [뉴스1]](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28/joongangsunday/20251028075050558onmq.jpg)
정치 편향성 안 드러내려 SNS도 안 해
Q : 대법관을 기존 14명에서 12명을 늘려 26명으로 증원하겠다고 한다.
A : “대법관 증원 문제가 갑자기 나온 문제는 아니다. 대법원의 사건 적체 문제는 오랫동안 지적되어 왔다. 대법원에 매년 약 5만6000건 정도의 사건을 맡겨지고, 대법관 1인당 5000건 정도를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게 대법관을 충원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대법관을 두 배 늘려서 1명이 2500건을 처리하면 되는 건가? 지난 80년간 대법관은 12~15명 내외에서 유지됐다. 두 배가량 늘린다면 사법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건데, 신중한 논의와 토론을 거치며 국민적인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해야 한다.”
Q : 민주당은 입법 사안이라고 말한다.
A : “물론 입법은 입법부의 권한이다. 하지만 사법부도 헌법상 동등한 삼권 중 하나이고 독립된 헌법기관이며 이해 당사자다. 사법부와 논의하며 추진해야지, 지금처럼 해선 곤란하다고 본다. 국회에서 어떤 다수 세력이 주도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반드시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이면 나중에 정권이 바뀌고 원상회복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있나. 게다가 국회 안에서 정략적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는 세력도 있지 않나. 정치 공방 가운데 강행할 문제는 아니다.”
Q : 여당 대표는 “대법관을 늘려주겠다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하던데.
A : “대법원 구성은 민감한 이슈다. 어떤 정권이든 자기 쪽 성향을 가진 사람을 대법관으로 임명하려는 경향이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대법관은 순차적으로, 점진적으로 교체해야 집단의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특정 정파에서 임명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대법원을 구성하면, 그 판결의 신뢰성이 보장되겠나. 가령 다음에 정권이 바뀌어서 대법원 구성이 바뀌고 판결도 달라지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어떻게 되겠나.”
Q : 민주당 안대로라면 대법관 26명 중 22명을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A : “굳이 한다면, (대법관 임기가 6년 임을 감안해 26명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1년에 4명씩 교체하는 식으로 가는 게 좋다. 이렇게 하면 대법관 구성이 골고루 섞이게 되고, 토론과 합의를 통해 대법원의 판결이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민주당 안대로 올 연말 전후 확정되면 이 대통령은 2027년부터 3년 간 4명씩 증원분을 임명한다. 자신의 임기인 2030년 6월 초까지 조 대법원장을 포함, 10명의 임기만료 대법관의 후임도 임명한다. 내년과 2030년(각 20명)을 제외하곤 7명(2027년), 5명(2028년), 6명(2029년)이 된다. 김 변호사가 적절하다고 보는 숫자를 크게 상회하는 셈이다.
Q :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재판이 1·2심 다르고 대법원에서 이례적인 속도로 파기환송되면서 사법부 신뢰에도 영향을 끼쳤다.
A : “매끄럽게 됐으면 법원에 대한 신뢰도 높아졌을 텐데 참 안타깝다. 재판 기간도 상당히 길지 않았나. 유·무죄야 법관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절차대로 따박따박 잘 정리가 안 되면서 문제가 커졌다. 법원이 잘못한 부분이 많다.”
김 변호사는 대법관 증원 시 우려되는 문제로 ‘하급심 부실’을 꼽았다. 그는 “대법관을 보조하는 연구관이 현재 100명 정도인데, 일선 판사들이다. 대법관 12명이 늘어나면 다시 100여 명의 판사가 연구관으로 충원되면서 하급심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오히려 하급심 강화가 필요한데, 되려 대법원이 비대해지면서 머리만 커지는 역행”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 재판 파기환송, 법원 잘못 많아
Q : 그럼 하급심 판사 증원이 먼저인가.
A : “사실, 그게 본질은 아니다. 그보다 고민할 점은 우리 사회에 재판 건수가 너무 많다는 거다. 한국처럼 모든 분쟁을 다 법원으로 가져오는 경우는 드물다. 상고심 제도의 본질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삼세판’이라며 모든 사건을 대법원까지 가려고 하는데 어느 선진국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 대법원이 하는 건 법률심(사실관계는 다루지 않고 이전 재판의 법리 해석과 적용만 따지는 것)이다. 하급심을 충실히 해서 1심에서 끝내되, 예외적으로 항소해서 2심에서 마무리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반대다. 마치 모든 사건을 3번 다 재판받아야 하는 것처럼 인식되어 있다. 특히 정치인 재판은 예외가 없다. 사실 우리 소송법에도 상고(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판결을 신청) 이유가 제한되어 있는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거다.”
Q : 여권에선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도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다.
A : “사실상 ‘4심제’라는 우려가 나오지 않나. 헌법소원에 대해 ‘한정적으로만 한다’고 하지만 지금 대법원만 봐도 그게 지켜지겠나. 상고가 제한되지 않아서 대법원 재판이 많은 게 아니다. 헌법소원이 허용된다면 아무리 사유를 제한한들 대법원 못지않게 헌재 재판이 많아질 것이다. 사실상 4심제 사회가 되는 거다. 이런 건 한 번 물꼬를 트면 막을 수가 없다. 누구나 다 헌법소원을 받자고 달려들 거다. 이게 사회적으로 얼마나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되겠나.”
Q : 독일 사례도 든다.
A : “한국과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다. 독일은 노동법원·행정법원 등 전문 분야별로 법원이 따로 있어서 대법관이 100명이 넘는다. 한국처럼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결론 내는 게 어렵다. 그래서 헌재에 한 번 더 맡기는 길을 열어둔 거다. 참고로 주요국의 대법관을 보면 미국은 9명, 영국은 12명, 일본은 15명이다. 지금 추진하는 대로 대법관이 26명이 된다면 전원합의체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을 거다.”
Q :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조 대법원장에게 거취를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A : “정권에서 임기를 무시하고,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에게 맡기려는 건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헌법에서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임기를 각각 5년과 6년으로 달리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정권과 관계없이 법원의 독립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비리가 있어서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물러나라고 하는 거는 너무 심하다. 삼권 분립을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데 사법부의 수장을 존중하고 예우해야 하지 않나. 정권에 따라서 마음에 안 드는 삼부 요인을 쫓아내면 나라는 엉망이 된다. 이승만 대통령 때도 김병로 대법원장과 불화가 컸지만, 임기는 보장했다. 당시 김병로 대법원장이 사법부에 불만을 표하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억울하면 항소하시오’라고 말하며 버틴 건 유명한 일화다. 이것이 이정표가 되어서 80년간 사법 독립제도가 유지됐다.”
Q : 사법부가 행정부와 입법부에 포위된 형국이다.
A : “군사 정권 시절에도 법원과 대법원장을 존중했다. 그런데 오히려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서 오히려 법원을 자꾸 흔들려고 한다. 왜 그럴까. 법조인이 정계로 많이 들어가서 생기는 폐단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법조계에 대한 이해를 정파적으로 이용해 개인이나 소속 정당의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이러면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정립할 수 없다. 법관 개인의 비리는 엄격하게 꼬집고 처벌할 수 있다. 그런데 재판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재판을 공격해서 판사를 몰아내려고 하는 건 국민에게 옳게 보이지 않을 거다. 어쩌다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안타깝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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