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가 마이너스 수익, 해외 부동산펀드 악몽…"차라리 주식 샀더라면"
위기의 해외 부동산펀드

‘트리아논’ 국내 1호 해외 공모 부동산펀드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대 연 7.5% 배당수익률을 내세워 인기를 끌었던 이지스자산운용의 해외 부동산 펀드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29호’(트리아논 펀드)가 오는 31일 만기를 앞두고 청산 수순을 밟는다. 이 펀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금융 중심지의 트리아논 빌딩에 투자한 상품으로, 2018년 국내 1호 해외 공모형 부동산펀드로 주목받았다. 당시 기대 수익률은 연 6.4~7.5%, 설정 규모는 약 3700억원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공실(빈 사무실)과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자산가치가 하락했고, 운용 주체인 현지 특수목적법인(SPC)이 ‘기한이익상실(EOD)’을 선언하면서 지난해 10월부터 도산 절차에 돌입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현재 현지 법원 주도로 도산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만기연장을 위한 수익자 총회를 개최할 실익이 없다”며 “자산 처분이 완료되기 전까지 펀드는 ‘만기 미연장’ 상태로 존속되며, 청산 절차에 관한 주요 사항은 성실하게 안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융권은 트리아논 빌딩의 매각가가 대출금 수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에 따라 투자자는 지금까지 받은 배당금(원금의 약 16.4%)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원금을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총 3700억원 규모인 이 펀드는 기관 대상 사모펀드 1835억원과 개인 대상 공모펀드 1875억원으로 구성됐다. 이 펀드에 2500만원을 투자한 60대 A씨는 “선순위 대출이 많아 매각돼도 남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며 “그런 위험을 미리 설명 들었다면 가입하지 않았을 텐데, 판매사는 보상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 같은 심각한 해외 부동산펀드 손실은 트리아논펀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국내 설정된 해외 부동산펀드 24개 중 23개(95.8%)가 운용순자산이 설정액을 밑도는 손실 구간에 들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1월 현지 대출 만기와 4월 펀드 만기를 앞둔 미래에셋운용은 이번 매각대금으로 대출 원금 일부를 상환하고, 이후 만기 연장 또는 신규 대출 등 출구(Exit) 전략을 확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펀드의 나머지 보유 자산(매입가 1억880만 달러)이 7900만~9110만 달러 수준에 매각될 경우 최대 49.8%의 원본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펀드의 모집액은 965억원이다. 미래에셋운용은 과거에도 미국 오피스 빌딩과 브라질 부동산 투자에서 원본 대부분을 잃은 전례가 있다. 운용사 관계자는 “잔여 자산 매각 또는 리파이낸싱을 통해 펀드 만기 연장을 추진 중이며, 투자자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투자자들, 단체 소송 등 법적 대응 움직임
원금 손실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자는 금융감독원 민원 제기와 함께 단체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자산 매각으로 손실이 확정되면 이번 사태가 단순 투자 실패인지, 불완전판매 피해인지를 둘러싼 공방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금감원은 앞서 전액 손실이 발생한 ‘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2호(벨기에펀드)’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현장 검사에 착수했다. 이 펀드는 2019년 “정부기관 입주로 안정적이며 연 7%대 수익이 가능하다”고 홍보하며 904억원을 모집했다. 금감원은 “판매 과정에서 위법 소지가 있었는지 점검 중이며, 조사 결과에 따라 다른 해외 부동산펀드로 검사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는 2018~2020년 사이 우후죽순 판매된 해외 부동산펀드 상당수가 잇따라 손실을 내는 상황과도 맞물린다. 시장에선 이 같은 흐름에 따라 추가 점검과 제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원철 한양대 교수는 “부동산 금융투자 행태가 여전히 후진적 구조에 머물러 있다”며 “위험성이 큰 상품을 ‘안정적’이라 인지한 판매사의 수준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KB국민은행은 트리아논펀드와 벨기에펀드 투자자에게 최소 40%에서 최대 80%까지 은행의 배상 요인과 투자자의 책임 요소를 종합해 자율 배상을 진행 중이다. 한국투자증권도 녹취 등 증빙을 통해 불완전판매가 입증되면 투자설명 위반과 투자성향 등을 종합해 개별 보상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다수의 판매사는 “손실 규모가 확정되지 않았다”라거나 “문제가 확인되면 보상을 검토하겠다”며 구체적인 배상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기연 법무법인 기상 변호사는 “개인 투자자가 복잡한 금융 구조를 파악하고 증거를 모으기는 어렵다”며 “피해자가 많고 금액이 큰 사안일수록 금감원 민원을 통한 자율배상이 현실적 구제책”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금감원의 판단이 향후 소송에서도 유리한 근거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트리아논펀드 투자자는 단체소송에 나설 예정이다. 노윤상 법무법인 정윤 변호사는 “현재 20여 명이 단체 소송 의사를 밝혔으며, 이달 말 만기 이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면서 “투자 설명서상 위험 요인이 명시돼야 하는데 당시 판매사와 운용사 모두 이를 제대로 인식·고지하지 않은 과실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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