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푸드페어링’ 문경서 개막…25일까지 열려
전통음식 궁합 경연·도자기 술잔 체험 등 ‘문화 향유형’ 소비 전환
아자개장터 야간 상권 활성화…“브루어리 기반 체험관광 첫 모델” 평가

전통주 산업이 단순한 '특산품 소비' 차원을 넘어 관광·문화산업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현장에서 확인됐다.
24일 문경 가은아자개시장 일원에서 개막한 '우리술 푸드페어링'에는 비 소식에도 불구하고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행사는 25일까지 열린다.
행사장을 찾은 문경시민 김모(63) 씨는 "술 맛을 보러 왔다기보다 옛 문화와 풍습이 담긴 이야기를 들으니 더 재미있다"며 "시장도 다시 살아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올해 행사는 '전통주, 문화와 만나다'를 주제로 전국 1200여 종의 증류주·청주·탁주·약주·과실주가 한자리에서 선보였다. 또 문경바람, 교동법주, 오미자 막걸리 등 경북을 대표하는 전통주 시음·판매 부스를 열어 관광객을 맞이했다.

특히 술과 어울리는 전통음식의 궁합을 겨루는 '푸드페어링 경연'이 함께 열리며 전통주의 새로운 소비 방식을 제시했고, 도자기 술잔 빚기·전통 조리 체험 등 가족 참여형 프로그램까지 결합되면서 체류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현장 판매자들은 "예년에는 판매 위주였다면 올해는 '문화 체험' 문의가 훨씬 많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문경시 관계자는 "전통주가 지역 브루어리(소규모 양조장) 중심의 체험관광 콘텐츠로 발전해야 지속 가능성이 생긴다"며 "이번 행사는 그 방향성을 확인한 첫 사례"라고 말했다.
현장에는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오란다 만들기, 전통 도자기 술잔 체험, 무드등·민화촛대·노리개 장식품 만들기 등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떡메치기 체험장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행사장 맞은편 '아자개장터 푸드테마파크'에서도 막걸리와 전통 안주가 곁들여진 상차림이 이어졌다. 평소 주말 관광객 위주로 운영되던 장터가 행사 기간 '야간 체류형 명소'로 변모하면서, 문경시가 추진 중인 '전통시장 재생형 관광거점' 정책이 본격 가시화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막식에 참석한 신현국 문경시장은 "이번 축제는 지역 상권 활성화와 문경 전통문화의 재발견을 겸한 자리"라며 "방문객 흐름이 시장 상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개장한 '아자개장터'에는 국밥, 칼국수, 돈가스 등 10여 개 점포가 운영 중이며,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다"며 "많은 분들이 방문해 지역 상권 활성화에 힘을 보태달라"고 당부했다.
이정걸 문경시의회 의장은 축사에서 "조금 전에는 재해로 순직하신 분들을 위한 위령제에 다녀왔는데, 이곳은 그와 달리 웃음과 활력이 넘치는 축제의 현장"이라며 "오늘 하루만큼은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로 마음껏 힐링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번 축제가 문경의 전통문화와 음식, 그리고 지역경제를 알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공연무대도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지난 8월 문경트롯가요제 인기상 수상자 장혜진 양이 개막 무대를 열었고, 대상을 수상한 가수 장민 씨의 아들 장현욱 씨가 아버지의 음악적 재능을 이어받은 무대로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어 '히든싱어5 박미경 편' 우승자 이효진 씨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열기를 더했으며, 마지막으로 '장구의 신'으로 불리는 박서진 씨가 등장해 현장을 뜨겁게 달궜다.
체험 부스에서는 민화촛대·노리개 장식품 만들기 등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가족 단위 방문객이 특히 몰렸다.
경북도 관계자는 "전통주는 이제 '향토 특산물'에 머물지 않는다"며 "문화·관광이 결합된 복합축제 모델로 발전시켜 외국인 관광객 유치까지 연결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번 '우리술 푸드페어링'은 전통주의 향과 전통음식의 깊은 맛, 그리고 사람과 문화가 어우러진 복합 축제로, 지역경제와 관광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행사를 찾은 한 30대 방문객은 "플라스틱 컵에 시음하던 기존 행사와 달리, 도자기 술잔 체험을 곁들여 마시니까 음미 자체가 달랐다"며 "여행지에서 '경험'으로 남는다는 의미가 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