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연했던 그날 그 모습”…116년전 안중근 의사와 동지들

김미혜 기자 2025. 10. 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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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였소. 첫째,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둘째,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 넷째, 고종 황제를 폐위시킨 죄. 다섯째,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킨 죄. 여섯째,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죄. 일곱째, 한국인의 권리를 박탈한 죄. () 열두 번째,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 열다섯번째, 일본과 세계를 속인 죄."

일본 검찰관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를 묻자 안중근 의사는 위와 같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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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 유리건판 사진 고화질 복원
하얼빈 의거 직후…당당한 표정·자세 주목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에서 1909년 10월27일 오전 찍힌 것으로 추정되는 안중근 의사. 국사편찬위원회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였소. 첫째,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둘째,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 넷째, 고종 황제를 폐위시킨 죄. 다섯째,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킨 죄. 여섯째,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죄. 일곱째, 한국인의 권리를 박탈한 죄. (…) 열두 번째,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 열다섯번째, 일본과 세계를 속인 죄.” 

일본 검찰관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를 묻자 안중근 의사는 위와 같이 답했다.

대한제국 독립을 외치며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던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116년만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식민지의 어둠 속에서도 의연했던 그의 형상이 고해상 유리건판 사진을 통해 드러나며 잊힌 동지들의 얼굴 또한 함께 빛을 되찾았다.

국사편찬위원회는 23일 하얼빈 의거 직후 러시아와 일본 당국이 촬영한 안중근 의사와 동지들의 유리건판 사진을 고해상 디지털 자료로 공개했다. 해당 유리건판은 조선총독부가 원본을 복제한 것으로 일반 필름보다 해상도가 높고 내구성이 뛰어나 당시 중요한 자료 보존에 쓰이던 매체다.

러시아 동청철도 헌병관리국 조사실에서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30분에서 오후 10시10분 사이 찍힌 것으로 추정되는 안중근 의사. 국가편찬위원회

가장 주목받는 사진은 이토 히로부미 저격 직후 러시아 동청철도 헌병관리국 조사실에서 촬영된 안 의사의 모습이다.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30분에서 오후 10시10분 사이로 추정되는 이 사진에서 안 의사는 포박되지 않은 채 당당히 서 있다. 그의 표정과 자세는 체포된 포로가 아니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신념을 관철한 한 투사의 결연함을 보여준다.

이튿날인 10월27일 오전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에서 찍힌 것으로 추정되는 두장의 사진에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포승줄에 묶인 안 의사의 모습이 담겼다. 러시아 측에서 일본으로 신병이 인계된 뒤의 장면으로 일제는 11월9일 통감부에 보고해 복제본을 제작하고 이를 동지 체포에 활용했다.

왼쪽부터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국사편찬위원회

이번 공개 자료에는 안 의사와 뜻을 함께한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등 동지들의 사진도 포함됐다. 이들은 차이지아거우역에서 거사에 참여하거나 연락을 맡았던 인물들로 러시아 관헌에 체포된 뒤 10월31일 일본 측에 인계됐다. 사진은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탁공규(왼쪽), 이진옥(오른쪽). 국사편찬위원회

또한 하얼빈 한인 동흥학교 교사였던 탁공규와 일본 기록에 ‘밀정’으로 언급된 이진옥의 얼굴도 새로 확인됐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각 사진과 함께 촬영 시점, 장소, 인물 정보 그리고 기존 기록의 오류를 바로잡는 해제(解題)를 공개했다. 안 의사와 동지들의 뜻을 되새기고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에서 1909년 10월27일 오전 찍힌 것으로 추정되는 안중근 의사. 국사편찬위원회

1910년 3월26일 안 의사는 뤼순 감옥 사형장에서 32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형 집행을 앞두고 자신을 데리러 온 간수에게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라고 남긴 마지막 한마디에서 죽음조차 꺾을 수 없었던 그의 당당함과 기개를 엿볼 수 있다.

116년이 흐른 오늘, 선명하게 복원된 유리건판 속 그의 눈빛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다. 그 의연한 모습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시대를 초월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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