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대신 증발을 택한 배우, 설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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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설경구가 연기자로 데뷔한 지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1996년 영화 <꽃잎>으로 스크린에 첫발을 디딘 그는 이후 <공공의 적>(2002)의 강철중, <오아시스>(2002)의 홍종두, <해운대>(2009) 등 한국 영화사의 굵직한 장면마다 존재해왔다. 화려한 스타의 궤도보다 연기라는 본업에 집중하며 카메라 앞에서 인간의 가장 솔직한 얼굴을 꺼내온 배우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걸 연기하고 싶었다"

설경구를 말할 때 <공공의 적>의 강철중은 빼놓을 수 없다. 거칠고 불같지만 정의감에 흔들리던 그 형사는 한국 영화 속 '형사 캐릭터의 전설'로 남았다. 강철중은 설경구였고, 설경구는 강철중이었다. 그의 연기는 장르의 틀을 넘어 한 시대의 정서를 대변했다. 그 이전에는 <오아시스>가 있었다. 장애를 지닌 남자의 눈빛과 숨결로 세상을 울린 그 연기는 수많은 배우들에게 '왜 연기를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이유를 동시에 남겼다.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설경구는 그 한 작품으로 한국 영화의 한 페이지를 새로 썼다.
이번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는 그의 필모그래피에 또 다른 결을 더한다. 변성현 감독과의 네 번째 협업으로, 일본항공 351편 공중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재난·범죄 스릴러다. 설경구는 이름도, 출신도 모호한 해결사 '아무개'를 연기하며 홍경·류승범 등과 함께 극을 이끈다. 1970년대의 고증된 미장센, 변성현 감독 특유의 반어와 풍자가 어우러져 '쿠션 없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이번에도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철저히 덜어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더 많은 걸 느끼게 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설경구는 살을 빼고 표정을 비우고 말수를 줄였다. 그렇게 완성된 '아무개(영화 속 그의 캐릭터 이름)'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 이름 없는 인간의 초상이다.
설경구는 변성현 감독과의 네 번째 작업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을까. 그는 솔직하게 "이걸 또 해야 하나 싶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곧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한마디로 모든 것을 설명했다. 두 사람은 이상하리만큼 코드가 잘 맞는다. 말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결을 알아차린다. 변 감독의 시나리오가 늘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고든다면, 설경구는 그 세계를 몸으로 증명해내는 배우다. "네 작품 모두 결은 다르지만, 결국 인간의 본질을 묻는다는 점에서는 같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설경구는 '아무개'라는 캐릭터 이름부터 낯설었다고 했다. "그 시대에 있을 법한 인물도 아니고, 마치 세상에 툭 던져진 사람 같았다." 감독에게 "섞여야 하느냐"고 묻자, 변 감독은 "섞이지 말자"고 답했다. 그 한마디가 캐릭터의 방향이 되었다.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 그게 '아무개'였다.
그는 이번 역할을 위해 체중을 크게 감량했다. 권력자 곁에 있으면서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을 만들고 싶었다. "감독이 '이제 그만 빼라, 너무 없어 보인다'고 할 정도였다. 그래도 그 '없음' 속에서 새로운 무게를 찾고 싶었다." 존재감이 강하지 않아도 보는 이의 마음에 오래 남는 인물, 그것이 그가 추구한 연기였다.
설경구는 <굿뉴스>를 "오케스트라 같은 작품"이라 표현했다. "변성현 감독은 지휘자고, 나는 그 안의 작은 악기 같은 존재다. 아주 짧은 소리라도 정확한 타이밍에 나와야 앙상블이 맞는다. 잠깐 등장하더라도 톡 튀어나오는 소리 같은 배우가 되고 싶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그는 연기의 또 다른 방향을 찾았다. "이번엔 폭발이 아니라 증발에 가깝다. 소리 없이 증발하듯 존재를 흩뿌리는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 <공공의 적>의 강철중이 직선적인 폭발이었다면, <굿뉴스>의 아무개는 남들이 눈치채지 못한 자리에서 서서히 번지는 인물이다.
변 감독, "설경구는 조용하지만 강한 사람"

변성현 감독은 그런 그를 두고 "설경구는 조용하지만 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폭발하지 않아도 화면을 흔드는 배우다. 존재 자체가 영화의 리듬이 된다." 실제로 그는 테스트 촬영 당시 설경구의 걸음걸이만 보고 "됐다"고 확신했다.
현장은 팽팽했다. 변 감독은 자신감이 생기기 전까지 아침, 점심도 먹지 못했고, 배우 역시 살을 줄이며 극한의 긴장감을 유지했다. "감독이 '(살을 많이 빼서) 너무 없어 보인다'고 했을 때, 이상하게 기뻤다." 존재의 무게를 덜어내는 일이 곧 그의 연기였기 때문이다.
<굿뉴스>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답게 시대적 고증에도 공을 들였다. 실제 70년대에 사용된 비행기를 공수해 촬영했고, 공항 세트 또한 세밀하게 재현했다. "굉장히 공들여 찍은 영화다. 작은 디테일까지 완벽하게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변 감독 역시 "고증은 지키되, 영화적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려 했다"고 밝혔다.
설경구는 <굿뉴스>를 단순한 납치극이 아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로 정의한다. "믿음과 선택, 인간의 본성에 대한 영화다. 요즘 세상에 '좋은 뉴스'가 드물잖나. 이 영화가 그런 질문 하나쯤 던질 수 있으면 좋겠다."
설경구는 화려한 말보다 진심으로, 존재보다 부재로 또 한 번 스크린을 흔들 준비를 마쳤다.
하은정 기자 hah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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