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내한테 잘해주노?”…설레고 불안한 21세기 소년의 성장기 [리뷰]
J-POP 소재로 한 최초의 한국 독립영화
10대 청춘의 풋풋함·서툼이 주는 ‘매력’
![[㈜트리플픽쳐스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24/ned/20251024142544619rsum.jpg)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지구가 멸망할 것이란 종말론이 유행처럼 번지던 그때,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는 그 길 위에서 마음들은 하나 같이 흔들렸다. 불안은 시끄럽게 요동쳤고, 기대와 설렘은 소리 없이 퍼져나갔다. 21세기의 시작을 알린 2000년대. 단지 1에서 2로 숫자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우리는 그것을 새 시대라 불렀다.
영화 ‘너와 나의 5분’은 그 시절의 설레고 불안한 공기를 가득 머금고 모든 것이 낯설고 모든 것이 새로운 시간을 공유하는 두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피터팬의 꿈’, ‘찾을 수 없습니다’, ‘부끄럽지만’ 등 단편을 통해 독보적인 시선과 서정적인 감성을 보여준 엄하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는 고등학생 경환(심현서 분)의 시선을 따라간다. 배경은 2001년 대구 수성구. 라디오에서는 두려움의 잔재들을 애써 지워낸, 2002년 월드컵을 향해가던 시절의 희망 가득한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영천에서 올라온 경환은 새로 전학해 온 학교의 모든 것이 낯설다. 쉬는 시간, 경환은 분신처럼 들고 다니는 MP3의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이윽고 흘러나오는 일본 밴드의 음악에 빠져들려는 찰나, 익숙지 않은 목소리가 보컬과 겹쳐 경환을 파고든다. 흥얼거림의 진원지는 짝꿍이자 반장인 재민(현우석 분). 둘은 서로의 음악 취향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트리플픽쳐스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24/ned/20251024142544888gmzq.jpg)
재민은 망설이지 않고 경환과의 거리를 좁힌다. 경환은 따뜻하게 다가오는 재민이 싫지 않다. 좋아하는 만화도, 가장 좋아하는 곡도 다른 두 사람은 틈틈이 이어폰을 나눠 끼고, 같은 음악을 들으며 온전히 그들만 듣고 느끼는 5분을 공유한다. 늘 혼자였던 경환의 쉬는 시간, 외로웠던 그의 하굣길은 어느새 재민과 함께다. 그렇게 두 사람의 5분들이 겹겹이 쌓여가고, 그 안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도 커져간다. 함께 버스 뒷자리에 앉아 집으로 가던 길, 경환은 재민에게 묻는다. “와 내한테 잘해주노?”. 속이 보이는 투명한 질문에 재민은 딴 곳을 보며 들릴 듯 말듯 대답한다. “그냥, 니라서.”
경환의 안에서 재민이 차지하는 공간은 하루하루 커진다. 그리고 어느 날, 경환은 재민에게 지금까지 자신이 숨겨온 비밀을 털어놓는다. 어렵게 꺼낸 경환의 고백에 대한 재민의 답은 무엇일까. 차갑기만 한 시선 속에서 두 사람의 감정이 맞게 되는 결말은 무엇일까.
영화는 변화를 외치지만, 여전히 멈춰있던 세상을 이야기한다.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세상은 경환을 차갑게 바라본다. 대중매체에 등장한 하리수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아무로 나미에 노래를 듣고 만화 드래곤볼과 이누야샤를 보는 경환을 ‘오타쿠’라 놀리던 시절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극장가를 휩쓸고, 동성애가 하나의 대중 코드로 자리 잡은 오늘의 시선에선 마냥 먼 옛날 같은 이야기다. 감독은 본인이 경험한 2001년의 대구라는 시공간을 모두 영화에 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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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감독은 “대구 출신이라 자연스럽게 배경을 정했다.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하리수 씨가 공중파에 출연했던 일이나 교과서 문제로 한일 문화 개방이 잠시 멈췄던 사건, 일본 문화를 좋아하면 배척받았던 분위기 등이 떠올랐다. 이러한 것들이 제가 다루는 이야기의 폭을 넓혀줬다”고 했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두 주인공의 감정이다. 경환 역의 심현서, 재민 역의 현우석의 서툰 듯 풋풋한 연기는 오히려 10대의 불안하지만 섬세한 감정 변화를 극대화한다. 친구 이상, 하지만 연인은 아닌 그 사이를 오가는 두 사람 사이의 온도차도 선명하다. 영화는 경환의 감정에 깊이 이입하게 만들면서도 재민의 감정은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동성 간의 로맨스란 공식에 쉽게 대입하기 어려운 ‘너와 나의 5분’은 따지고 보면 2001년을 살았던 경환의 성장기에 가깝다.
영화가 주는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음악이다. 영화는 주인공 경환과 재민의 감정과 시대적 감성을 글로브의 대표곡 ‘디파쳐스(DEPARTURES)’와 ‘페이시스 플레이시스(FACES PLACES)’에 온전히 실어낸다. J-POP을 소재로 한 첫 한국 독립 영화이기도 하다. ‘오래도록 엎어둔 채 두었던 액자 속 우리 두 사람의 사진, 그 미소만은 아직도 빛나고 있어요.’(글로브 ‘디파쳐스’ 가사 중) 프레임 한쪽에 과감히 새겨놓은 가사는 주인공의 감정과 일치돼 흐르고, 신시사이저와 발라드를 오가는 멜로디는 따뜻한 듯 차갑고, 가득 찬 듯 공허한 시대의 감성을 담는다. 꾸밈없는 미장센들과 어우러진 음악, 그 시절 MP3에서 흘러나오는 1990년대의 음악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사이에 있는 시절의 단면을 떠올리게도 한다.
![[㈜트리플픽쳐스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24/ned/20251024142545455fzfr.jpg)
영화에는 외로움이 있다. 동시에 사랑이 있고, 자유에 대한 갈망도 있다. 정의할 수 없이 뒤섞인 감정 속에서 10대 청춘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여정을 이어간다. 영화는 세기말을 지나온 스스로의 서툰 여정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모습까지 괜스레 돌아보게 만든다. ‘아직도, 아직도, 아직도 나는 찾고 있어. FACES, PLACES.’ (글로브 ‘페이시스 플레이시스’ 가사 중). 아마도 영화가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11월 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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