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슘페테리언에게 돌아간 2025 노벨 경제학상] AI發 기술혁명으로 ‘창조적 파괴’ 재조명… “혁신 성장론의 귀환”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성장이다. 그래서 202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세 명이 고무적이다.”
데이비드 헨더슨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원은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10월 13일(이하 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 칼럼에서 이같이 평가했다. 지난 10년간 빈곤과 복지, 저개발 국가의 경제개발, 여성의 경제활동, 좋은 경제 제도 등 비(非)경제적 요인을 통한 경제성장 해법을 규명하는 연구에 높은 점수를 줬던 노벨상위원회가 이번에는 ‘혁신 주도 경제성장’에 주목한 것을 고무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스웨덴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이날 창조적 파괴를 통한 경제성장을 연구한 조엘 모키어(Joel Mokyr·79·네덜란드) 미 노스웨스턴대 교수, 필리프 아기옹(Philippe Agh-ion·69·프랑스) 프랑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피터 하윗(Peter Howitt·79·캐나다) 미 브라운대 교수 등 세 명을 202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모키어 교수가 약 116만달러(약 17억원) 상금의 절반을, 아기옹 교수와 하윗 교수가 나머지 절반을 나눠 받는다. 노벨위원회는 “새로운 기술이 어떻게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 수 있는지 보여줬다”고 선정 사유를 설명했다.
존 해슬러 노벨경제학상 선정위원장은 “수상자들의 연구는 경제성장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창조적 파괴’를 유지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정체될 것”이라고 했다.
창조적 파괴 이론·실증 모델 정립에 기여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모키어, 아기옹, 하윗 교수는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만든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를 추종하는 ‘슘페테리언(chumpeterian)’으로 볼 수 있다. 슘페테리언은 기술 발전을 통한 혁신이 산업혁명 등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끈다고 믿는 경제학자들이다. 이들은 혁신을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존 질서를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핵심 동력으로 본다. 역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에서는 케네스 애로(1972년), 로버트 솔로(1987년), 조지프 스티글리츠(2001년), 에드먼드 펠프스(2006년), 폴 로머(2018년) 등이 슘페테리언으로 분류된다.
모키어와 아기옹, 하윗 교수 모두 창조적 파괴가 경제성장을 이끄는 방식을 규명하는 학문적 업적을 쌓았다. 경제사학자인 모키어는 18세기 산업혁명을 모든 창조적 파괴의 출발점으로 보고 ‘하키 스틱’ 비유를 통해 인류 번영의 방식을 이론적으로 개념화했다. 긴 평평한 스틱 부분은 산업혁명 이전 수 세기 동안의 경제 정체기를, 짧고 날카로운 블레이드 부분은 산업혁명 이후 미국과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지속된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상징한다. 노벨위원회는 “(모키어 교수는) 과학적 돌파와 실용적 응용이 서로를 강화하고 지속적 경제성장을 이끄는 메커니즘을 설명했다”면서 “(이런 메커니즘이) 기존 이익에 도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에 개방적이고 변화를 허용하는 사회의 중요성도 입증했다”고 했다.
아기옹과 하윗 교수는 1992년 논문에서 창조적 파괴를 둘러싼 수학적 모델을 구축했다. 기업이 생산공정을 개선하고 품질이 더 나은 신제품을 위해 투자하는 방식, 기존 최상위 제품 보유 기업이 경쟁에서 밀려나는 과정을 수학적으로 규명했다. 특히 현대 경제학에서 성장 이론을 창시한 로버트 솔로는 기술 변화가 성장의 주요 동인이라는 점을 규명했으나, 기술 변화가 발생하는 원인을 설명하지 못해 이를 외생적 요소로 규정했지만, 아기옹과 하윗 교수는 기업의 의사 결정과 경쟁 과정에서 기술혁신이 발생했다고 해, 이를 ‘내생적’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혁신을 추상적 외생 변수가 아니라 기업가 정신과 연구개발(R&D) 투자에서 비롯되는 경제 내 동태적 메커니즘으로 정립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기존 제품의 생산방식을 더 저렴하게 개선할 경우 특허를 통해 특허 기간 독점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강력한 유인이 생긴다는 점을 규명했다. 다른 기업도 여전히 신제품 개발이 가능하므로 특허가 부여하는 일시적 독점은 경제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결론도 도출했다.
모키어 교수가 기술혁신이 경제성장을 이끄는 과정을 이론적으로 모델링했다면, 아기옹과 하윗 교수는 다양한 요인이 어떻게 상호작용해 성장을 가져오는 기술혁신을 촉진하는지를 수학적으로 입증했다. 모키어 교수 연구를 두 교수가 보완한 것이다.
AI가 만들 미래에 대해서는 엇갈린 시각
경제학계에서는 이들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 배경으로 최근의 인공지능(AI) 혁명을 꼽는다. AI가 18세기 산업혁명에 비견되는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으로 부상하는 현재의 경제 상황이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 과정을 이론·수학적으로 입증한 이들 연구의 학문적 성취를 돋보이게 했다는 시각이다.
이런 이유로 AI 혁명을 이들이 어떻게 인식하는지도 큰 관심을 모았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 후 각각 소속 대학이 주관한 수상 기념 간담회에서 AI의 미래에 대한 전망에 이목이 쏠렸다. 모키어 교수는 “AI가 인류를 멸종시킬 괴물이라는 발상은 디스토피아적 공상과학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사람의 이야기”라는 낙관론을 강조했다. 그는 “망치라는 도구는 집을 짓는 데 쓰일 수 있지만 카인이 아벨의 머리를 내리치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며 “화약부터 AI, 유전공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AI의 위험성을 과대평가하지 말라는 지적이다.
반면, 하윗 교수는 현재의 AI 투자 열풍을 1990년대 말∼2000년 초 ‘닷컴 버블’에 비유했다. 그는 “AI는 엄청난 기술이고 경이로운 가능성이 있지만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다” 면서 “규제 없이 순수한 사적 유인만으로는 사회 전체에 최선이 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어 “AI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하려면, (실업 같은) 피해자가 너무 많이 발생해 정치적 반발이 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상반된 입장은 인류 역사에서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기술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는 제도의 한계를 지적한 모키어 교수의 연구 활동과 창조적 파괴 개념에 기반한 기술 발전이 혁신을 통해 경제성장에 기여하지만, 동시에 기존 산업과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것을 수학적 모델로 입증하는 데 공헌한 하윗 교수의 연구 업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아기옹 교수는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물결은 세계 경제성장과 혁신에 좋지 않다”면서 “개방성이 성장의 원동력이며, 교역과 개방에 장벽이 생기는 곳에는 먹구름이 드리운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중국과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는 유럽 국가들은 국방, 환경, AI, 생명공학 등의 분야에서 전략적 산업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Plus Point
올해도 지한파 학자들 ‘노벨 경제학상’ 영예2024년 노벨 경제학상은 한국을 포용적 성장의 모범 사례로 제시한 대런 아제모을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부인이 한국계인 사이먼 존슨 MIT 교수 등 지한파 경제학자에게 돌아갔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도 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는 학자들에게 돌아갔다. 하윗 교수는 하준경 대통령실 경제성장수석의 스승이다. 한국은행 재직 중 미국 브라운대에서 유학한 하 수석은 하윗 교수에게 논문을 지도받으며 슘페터의 혁신 성장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로 성장했다. 아기옹 교수는 2021년 한국은행 연구진과 함께 쓴 논문에서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개혁한 한국의 산업 정책이 혁신 주도 성장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수상 소감을 발표하면서 한국 경제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모키어 교수는 “한국이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이뤘지만, 앞으로도 나라를 개방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해 온 대로 국경을 열어두고 세계 최고의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 했다. 하윗 교수는 “한국처럼 성공한 나라가 혁신을 계속하고자 한다면, 강력한 반독점 정책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의 고령화 문제 해법에 대해 “한 나라에서 실행되는 아이디어가 반드시 그 나라 내부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아이디어에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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