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대신 AI로 뜨거웠던 두바이…5일 간 열린 GITEX가 한국에 남긴 것 [파일럿 Johan의 아라비안나이트]
“명함 400장 돌렸는데 실제 계약은 7건이에요. 작년보다 3배 늘었죠. 비결요? 올해는 AI 없으면 아예 상대를 안 해주더라고요.”
지난 10월 14일 저녁 두바이 월드트레이드센터(DWTC)를 빠져나오는 한 한국 스타트업 대표의 목소리엔 피곤함과 동시에 흥분이 묻어났다.
중동·아프리카 최대 IT(정보통신) 전시회인 자이텍스 글로벌(GITEX Global) 2025가 5일간의 대장정 끝에 막을 내렸다. 180개국 6800개 기업, 2000개 스타트업, 그리고 1조1000억달러(약 1500조원)를 쥔 중동 투자자 수천명이 모인 이 거대한 기술 장터에서 한국은 무엇을 얻어왔을까.

작년만 해도 “우리도 AI 준비 중입니다”라는 말로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올해는 달랐다. AI가 없으면 바이어들이 부스 앞을 그냥 지나쳤다. 3년 연속 참가한 한 벤처투자자는 “작년 GITEX는 AI 데모였고, 올해는 AI 장사였다”고 말했다.
전시장 곳곳이 마치 공상과학(SF)영화 세트장 같았다. 눈에 끼는 스마트 콘택트렌즈로 혈당을 재고, 칩을 인체에 심어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하며, AI가 유전자를 편집해 질병을 예방하는 기술 등이 선보였다.

자이텍스 중간에 열린 각종 콘퍼런스에서 참가자들은 “AI로 실제 돈을 버는 방법을 논의하는 단계로 넘어왔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기업 AMD의 자이드 가타스(Zaid Ghattas) 중동 총괄은 “AI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했다”고 말했고,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Oracle)의 미겔 베가(Miguel Vega) 부사장은 “이제 AI은 실험이 아니라 실전”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AI 보안 기업 에임인텔리전스가 자이텍스 AI 경진대회인 ‘슈퍼노바 챌린지(Supernova Challenge) 2025’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상금 30만 달러(약 4억원)와 더불어 글로벌 1위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박하언 공동창업자는 “세계 무대에서 한국 기술을 인정받아 영광”이라며 “글로벌 진출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주최 세미나에서는 한국의 AI 경량화 기술과 UAE의 스마트 시티 구축 경험이 공유됐다. 특히 한국 기업 Botai AI의 비디오 에이전트 기술이 UAE 도로교통청(RTA) 실증 사업으로 이어지는 등 실질적인 협력 사례가 소개됐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은 에너지, 모빌리티, AI, 로봇 분야 10개 스타트업을 엄선해 보냈다. 대구시는 스마트 교통안전 솔루션 기업 등을, 한국정보통신기술산업협회는 AI 인프라 기업 등을,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은 로봇 플랫폼 기업들을 지원해 참가했다.
전시회 기간 중에는 예상치 못한 이벤트도 있었다. 13일 저녁 한국무역협회와 콘텐츠진흥원이 공동 개최한 ‘한-중동 오픈이노베이션 서밋’에서 10여 개 스타트업이 5분 피칭을 이어가던 중, 맨 마지막 순서에 유니콘 기업 퓨리오사AI의 백준호 대표가 깜짝 등장한 것. 공식 브로셔에 없던 순서였기에 현장이 술렁였다. 한 참석자는 “물 마시다가 깜짝 놀랐다”며 웃었다.
마크 저커버그의 1조2000억원 인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유명한 유니콘 기업이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한가운데 쏠렸고, 행사가 끝나고 나서도 백 대표에게 다가가 서로 명함을 교환하려고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KB금융팀은 5일 내내 현지 VC와 투자사를 부지런히 만났다. AI, 핀테크, 블록체인, 사이버보안 트렌드를 파악하고 두바이 정부 기관과도 미팅했다. KB금융은 자체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KB스타터스’를 운영 중이다. 유망 스타트업과 GITEX에서 만난 중동 투자자·바이어를 연결해 혁신 기술 상용화와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겠다는 포부다.
이번 두바이 참관에 대해 현장에서 만난 KB금융 관계자는 “시장조사 차원의 방문”이라고 말했지만 업계에서는 KB가 중동에 직접 진출하는 신호탄을 쏘기 위해 온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금융권도 이제 글로벌 스타트업 판에 뛰어들어야 살아남을 것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금융 전문가의 말처럼 KB금융의 행보는 다른 금융사들에게도 자극제가 될 전망이다.

주최 측에서는 올해 자이텍스 성공에 힘입어 벌써 내년 일정까지 발표했다. 자이텍스 2026 전시회는 내년 12월 7일부터 11일까지 엑스포 시티 두바이(Expo City Dubai)에서 열릴 예정이다. 10월에서 12월로 일정을 옮긴 이유는 두바이 문화·관광 성수기를 노렸기 때문이다. 전시회 보고, 쇼핑하고, 공연 즐기는 ‘기술 축제’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더 커진 무대에서 ‘중동 AI 전쟁’의 서막이 본격적으로 올랐다.
※ 도움말 및 참고자료= GITEX 운영위원회, 코트라 두바이 무역관, 한국무역협회 UAE지부, 한국콘텐츠진흥원 두바이 지사,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세미나 자료, KB금융 참관단, 전시회 한국기업 다수 인터뷰 종합
[원요환 UAE항공사 파일럿 (前매일경제 기자)]
john.won3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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