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선택, 그 폭력 앞에 드러난 나의 폭력성 [.txt]

요새 인터넷에서 흔한 ‘밸런스 게임’이라는 게 있다. 가령, 평생 원하는 종류의 커피 마시기 대(vs.) 평생 커피 끊고 1억 받기, 이런 양자택일 선택을 묻는 놀이이다. 이 게임은 양쪽의 선택지가 비슷한 무게를 가지고, 보상이 확실할 때만 재미있어진다. 커피를 원래 마시지 않는 나로서는 당연히 1억을 선택할 것이다. 이처럼 양쪽의 균형이 맞지 않을 때, 즉, 속어 표현으로 “밸붕(밸런스 붕괴)”일 때는 게임 요소가 부족하다. 더욱이 그 돈을 줄 사람도 없으니 선택 자체가 의미 없다. 하지만 더 균형이 맞고, 더 무겁고, 더 큰 대가가 있다면 어떨까? 예컨대, 딸이 납치됐는데, 범인이 “경찰에 신고하고 딸과 영영 이별하기 vs. 아내에게 당신의 비밀을 고백하기”라는 밸런스 게임을 제안한다면? 소설 ‘밸런스 게임 지옥’의 시작이다.

성공한 영화감독 정필규, 어느 날 그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모로스라는 이 발신자는 납치한 딸을 돌려주는 대가로 9번의 밸런스 게임을 제안한다. 선택을 고민할 시간은 10초, 선택지는 1분 안에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렇게 내놓은 첫번째 밸런스 게임이 바로 저 위의 질문이다. 선택을 요구하며 모로스는 외친다. “액션!”
이 소설은 한편의 속도감 있는 영화를 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액션, 리테이크나 줌인, 클리프행어, 시점 쇼트 등 영화 용어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33개의 장에서 아홉번의 밸런스 게임이 펼쳐진다. 독자, 아니, 관객은 정필규와 함께 달려가며, 딸을 찾아내야 한다. 물론, 초반에 나오듯이, 이 질주의 동력은 정필규 본인의 과오이다. 첫번째 게임에서 정필규가 아내에게 숨긴 비밀이 없다면, 양쪽 선택지의 균형이 맞지 않고 게임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택지의 무게, 바로 ‘밸런스 게임 지옥’의 핵심이다. 궁지에 몰린 주인공이 에스엔에스(SNS)나 전화로 정체 모를 범인의 지시를 받아 행동한다는 설정 자체는 썩 새롭지 않다. 그중에서도 영국의 드라마 시리즈 ‘블랙 미러’의 시즌 3 에피소드인 ‘닥치고 춤춰라’가 떠오른다. 이 에피소드에서 불법 촬영을 당한 패스트푸드점 직원은 해커의 지시를 따르다가 끝내는 자기 내면의 괴물과 마주한다. 이 소설의 흐름도 유사하다. 결국 정필규는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 속에서 자신이 타인에게 저지른 폭력을 보게 된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에게 그나마 선택권이 있다. 무거운 두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때마다, 우리는 정말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아니, 어떤 사람이 되어간다.
작품의 결말도 하나의 밸런스 게임으로 느껴진다. 남에 의해서 파멸하기 vs. 스스로 사과하고 회개하기.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고를 것인가? 선택에 따라 책의 의미는 달라진다. 한편, 작가에게도 이는 밸런스 게임 같다. 현실적이고 정교한 도덕적 고찰로 의미 끌어올리기 vs. (더 이상적일지는 모르지만) 독자에게 단순하고 명쾌한 해소의 감정을 주기. 작가가 무엇을 선택할지는 시작부터 명확해 보이지만, 직접 확인해도 좋겠다.

박현주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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