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답하다] 자유무역 불씨, 경주 APEC에서 다시 타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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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공동선언이 보호무역주의 확산 속에서 자유무역의 가치를 얼마나 담아낼지가 주목된다. 트럼프 행정부 재집권 이후 관세 전쟁이 이어지면서 '세계무역기구(WTO) 규칙 기반' 다자무역 원칙이 선언문에서 후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경주선언이 자유무역 의지를 얼마나 담을지는 미국발 관세조치로 흔들리는 WTO 체제 관련 표현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1∼2024년 APEC 정상회의 공동선언에는 모두 'WTO가 그 핵심을 이루는(WTO at its core) 규칙 기반의 다자무역체제'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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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상소기구 마비… 美 반대와 中 견제 맞물려
전문가 “주최국 韓, 다자무역 복원 외교 주도해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를 기념하는 멀티미디어쇼가 18일 오후 경북 경주시 보문호 수상 공연장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23/dt/20251023171250570bfag.jpg)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공동선언이 보호무역주의 확산 속에서 자유무역의 가치를 얼마나 담아낼지가 주목된다. 트럼프 행정부 재집권 이후 관세 전쟁이 이어지면서 '세계무역기구(WTO) 규칙 기반' 다자무역 원칙이 선언문에서 후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자유무역 지지 문구의 수위가 조정될 경우 APEC의 상징성과 다자통상체제의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는 가운데 통상 불확실성을 돌파하려면 다자무역 원칙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23일 정부에 따르면 외교부가 '경주 선언'으로 불릴 APEC 공동선언문 조율의 막바지 작업에 들어갔다. 외교부는 각국이 참여하는 공동작업팀을 꾸려 통상 선언문 초안을 마련 중이며, 최종 문구는 오는 29~30일 경주에서 열리는 외교·통상 합동각료회의에서 정해질 전망이다.
경주선언이 자유무역 의지를 얼마나 담을지는 미국발 관세조치로 흔들리는 WTO 체제 관련 표현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발언하는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23/dt/20251023171249048zigg.jpg)
◇상징만 남은 다자무역체제
2021∼2024년 APEC 정상회의 공동선언에는 모두 'WTO가 그 핵심을 이루는(WTO at its core) 규칙 기반의 다자무역체제'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그동안 공동선언에는 '규칙 기반의 자유무역질서'(rule-based free trade order)나 '자유무역체제'(free trade system)' 등의 문구가 사용돼 왔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회의에서는 해당 문구를 포함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앞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에는 미국 대통령의 본행사 불참으로 정상회의가 파행을 겪었고, 그 종료 이후부터 관련 표현이 다시 선언문에 담기기 시작했다. WTO 단어 자체가 남더라도 핵심 표현이 빠지며 의미가 약화될 것이란 관측이 커지고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예전처럼 쓰던 표현은 이번에 사용하기 어렵다"며 "미국과 중국이 모두 참여하는 만큼, 공동선언에 담길 수 있는 수준은 '공정한 무역'(fair trade) 정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가늠자 역할을 했던 지난 5월 제주 APEC 통상장관회의에서도 WTO 관련 표현의 비중이 다소 축소됐다. 회의에서는 WTO의 중요성에 공감하며 예측 가능하고 기업 친화적인 투자환경 조성을 위한 공동 의지를 재확인했다.
회원국들은 글로벌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에 우려를 공유하고 WTO가 현대 통상 이슈에 대한 논의를 심화하려는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무역·투자 환경 조성을 위한 APEC의 역할을 강화하기로 뜻을 모았다. 회의에 참석한 응고지 WTO 사무총장은 "WTO가 다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무역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실효성 있는 기구로 거듭나겠다"며 "WTO가 포괄적이고 의미있는 개혁을 달성하도록 APEC 통상장관들의 정치적 지지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회의 초기에는 회원국 간 입장차도 적지 않았다. 중국은 공동성명에 '다자주의 강조'와 '보호주의 반대' 문구를 포함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이 한창이었던 만큼, 미국을 직접 자극할 수 있는 보호주의 등 비판 문구는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멈춘 WTO 상소기구… 미중 통상 패권 의 그늘
다자무역체제 복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WTO는 핵심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교착 상태에 놓여 있다. 현재 WTO의 분쟁해결제도 가운데 상소 절차는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김세진 산업통상부 통상분쟁대응과장이 쓴 '조건부 자유무역 시대'를 보면, WTO 상소기구는 2019년 12월부터 상소를 심리할 위원 부족으로 기능이 정지됐다. 마지막 남은 위원의 임기가 2020년 11월 만료되면서 기구는 완전히 공석이 됐다. 이는 미국이 2017년부터 신규 위원 임명과 재임명을 지속적으로 반대하며 상소기구 재가동을 막아왔기 때문이다. 협상이 교착되면서 WTO 회원국들은 새로운 분쟁해결 규칙을 갱신하거나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구체적 절차가 마련되지 않은 기존 제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WTO 상소기구의 신규 위원 임명과 재임명을 반대한 배경에는 WTO에 대한 불신과 중국 견제 의도가 맞물려 있다. 2001년 중국은 WTO에 가입해 무역 자유화의 이익을 누리면서도, 경제 전반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했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수출 중심 성장 전략을 이어가며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했다. 이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제조업은 중국산 제품과의 경쟁 압력에 시달렸다. WTO의 비차별 원칙과 시장 개방 의무로 인해 각국은 관세나 수입할당(쿼터) 등 대응 수단을 적극적으로 쓰기 어려웠다. 이런 점은 지난 5월 제주 APEC 통상장관회의에서 중국이 공동성명에 다자주의 강조와 보호주의 반대 문구를 넣자고 적극 제안한 배경으로 풀이된다.
통상 전문가는 "최근 미국이 그동안 공석이던 WTO 대표부 대사를 새로 파견했다"며 "형식적으로는 여전히 WTO 체제에 참여하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미국이 최근 '턴베리 체제'를 내세우며 손해 보는 자유무역이 아니라 '자기들 입장에서의 공정무역'을 강조하고 있어, 이번 경주선언에서 WTO 중심의 통상체제 유지라는 표현을 쓰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유무역 깃발 내린 美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최근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WTO가 주도하고 명목상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고 166개 회원국의 무역 정책을 규제하도록 설계된 현재의 이름 없는 세계 질서는 유지될 수 없고 지속 불가능하다"며 "가장 큰 수혜자는 국유기업과 5개년 계획을 세운 중국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체결한 협정을 거론하며, "공정하고 균형 잡힌, 국가 이익 중심의 새로운 무역 질서가 출범했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턴베리 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중국의 부상이 뚜렷해지면서 이번 경주 선언에서도 자유무역 문구의 의미가 약해질 수 있다는 대목이다.
◇경주 APEC, 외교 축 넓혀야
APEC은 자유무역 논의의 상징이자 세계 교역의 중심축으로 평가받는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자유무역은 성장의 동력이자 경제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우리나라의 대외 교역에서도 비중이 크다. 수출의 74.7%, 수입의 67.5%가 APEC 회원국과의 거래에서 발생한다. 10대 교역 상대국 가운데 중국, 미국, 베트남, 일본, 호주, 대만, 홍콩 등 8개국이 APEC 회원국에 속한다.
APEC은 그간 지역 경제통합과 역내 번영 증진을 목표로 균형 잡힌 성장, 포용성, 지속가능성, 혁신, 안정성을 추구해 왔다. 경주 APEC 정상회의의 주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내일(Building a Sustainable Tomorrow)'이며, 핵심 의제는 '연결(Connect)·혁신(Innovate)·번영(Prosper)'으로 정해졌다. APEC 비전이 지향하는 개방적이고 회복력 있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자유무역주의의 가치를 공동선언에 담을 필요가 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EU와 호주, 캐나다, 일본 등이 WTO를 살려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만큼, APEC이 그 흐름을 지지하는 선언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정부가 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빠졌다고 해서 WTO가 힘을 잃은 것은 아니다"라며 "APEC이 그 흐름을 지지하는 선언을 내고 우리가 이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APEC 주최국으로서 회의의 방향을 우리가 세팅해야 하며, 트럼프의 들러리가 돼선 안 된다"면서 "미국은 내부 분열이 심하고 임기 완수 여부도 불확실한 만큼 EU·호주·뉴질랜드·멕시코·아세안 등 '라이크 마인디드'(like-minded) 국가들과의 외교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종=강승구 기자 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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