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푸틴과 회동 취소”…회담장소 헝가리도 도마위 [디브리핑]

정목희 2025. 10. 2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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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쓸데없는 회담 원치 않아…적절치 않다 느껴”
젤렌스키 “親러 오르반 헝가리 총리, 중재 자격 없다” 반발
ICC 기소된 푸틴 맞이하려던 헝가리…‘규범 위반’ 논란 확산
오르반 헝가리 총리, ‘외교적 승리’ 자평했지만 끝내 무산
2017년 7월 7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2차 회동이 결국 취소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논의하기 위한 푸틴 대통령과의 회동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을 취소했다. 적절치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지점에 이르지 못할 것 같았다”며 “그래서 회동을 취소했지만, 우리는 미래에 회동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결정한 배경에 대해선 “제재할 때가 됐다고 느꼈다.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밝혔다.

같은 날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협상에 러시아가 진지하게 임하고 있지 않음에 따라 러시아에 추가 제재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제재 대상으로 지정된 기업은 ‘로스네프트 오일 컴퍼니’, ‘루코일’ 등 러시아의 대형 석유기업 두 곳과 그 자회사들이다. 재무부는 이들 기업이 러시아 연방 경제의 에너지 부문에서 활동한 사실이 있어 제재 대상으로 지정됐으며, 이들 기업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모든 법인은 자산이 동결된다고 밝혔다.

트럼프, 푸틴과 2차 회동 전격 취소 이유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가자 휴전 합의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도 끝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해왔다. 지난 16일 푸틴 대통령과 통화한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2주 내에 헝가리에서 미러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측 사전 협의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방안에 대한 이견이 표출됐다. 러시아는 평화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우크라이나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전체 지역을 포기해야 한다는 요구를 굽히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나는 쓸데없는 회담을 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며 “시간 낭비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회담 장소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대해서도 유럽 각국은 크게 동요했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친(親)러 성향인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입장에 기울어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해법을 모색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고 지난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미·러 정상이 지난 16일 통화하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곧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하자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곧바로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조직위원회 구성을 지시했다. 구체적인 일정과 의제 등은 라브로프 장관과 루비오 장관이 이번주 중 만나 협의할 예정이었으나, 이마저도 무산됐다.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발표된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르반의 친러 행보, EU 내부 분열 부추겨”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로이터]

회담 장소로 부다페스트가 선택된 것은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오르반 총리는 헝가리가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임에도, 러시아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EU 내에서 반(反)주류 노선을 취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한 EU 외교관은 “아무도 이 결정을 좋아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속으론 모두 이를 갈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의 귄터 크리히바움 EU 담당 장관은 “전쟁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지 논의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서도 “우크라이나가 협상 테이블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합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오르반 총리가 러시아 제재를 완화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거부해온 점을 고려하면, 부다페스트는 결코 적절한 회담 장소가 아니다”며 “우크라이나를 곳곳에서 막아서는 총리가 우리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거나 균형 잡힌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요청이 있다면 부다페스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별도의 회담을 열 의향은 있다”고 덧붙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FP]

젤렌스키 대통령은 회담 장소로 헝가리를 제안한 인물로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 스티브 위드코프를 지목하며 불만을 표했다. 그는 “(회담 장소로) 스위스, 오스트리아, 바티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튀르키예 등 훨씬 적절한 후보지가 많았다”고 꼬집었다.

ICC 기소된 푸틴 맞이하려던 헝가리…“국제 비난 자초”

푸틴 대통령은 현재 전쟁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된 상태다.

따라서 그를 부다페스트에 초청하는 것은 헝가리가 국제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가 된다. 헝가리는 ICC 탈퇴 의사를 밝혔지만 내년 여름까지는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FT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오르반 총리와의 통화에서 “그는 우리가 좋아하는 지도자”라며 “푸틴도 그를 좋아하고, 나도 그를 좋아한다. 헝가리는 안전한 나라이고 오르반은 훌륭한 주최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르반 총리는 트럼프-푸틴 회담 추진과 관련해 “우리는 단순한 주최국이 아니다. 부다페스트가 평화 회담을 열 수 있는 장소로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치적 성취”라며 EU를 비판했다.

그는 “유럽 지도자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만 보내면서 러시아와의 외교 채널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워싱턴의 싱크탱크 ‘디펜스 프라이어리티’의 제니퍼 카버나 애널리스트는 “이번 회담은 오르반에게 큰 승리”라며 “그는 오랫동안 고립된 지도자로 여겨졌지만 이번 결정은 그 이미지를 뒤집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이번 회담이 내년 봄 헝가리 총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오르반 입장에선 헝가리가 터키나 걸프 국가처럼 ‘누구와도 대화 가능한 나라’로 격상되는 것 자체가 큰 정치적 이득”이라고 분석했다.

또 부다페스트라는 도시 자체가 우크라이나에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1994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미국, 영국과 함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구소련 시절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안전보장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푸틴은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고,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그 약속을 스스로 깨뜨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다른 ‘부다페스트 시나리오’는 긍정적일 수 없다”고 경고하면서도 “만약 이번 회담이 진정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EU 외교장관회의에서도 일부 외교관들은 “이미 한 번 부다페스트에서 체결된 합의가 있었고, 그 결과는 우크라이나에 좋지 않았다”며 “역사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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