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산업 쇠퇴하자 방산으로 갈아타…위기를 기회로 바꾼 질롱[인구 절벽을 넘어선 도시들]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찾은 호주 남동부 빅토리아주의 대표적인 산업도시인 질롱에선 이런 표현을 쓰는 기업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호주에서 시드니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2대 도시 멜버른에서 약 75km 떨어진 질롱에는 방산과 신소재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첨단 기업이 자리잡고 있다. 이로 인해 인구 및 경제 성장세도 두드러진다.
인구 30만 명의 질롱에는 약 100년간 미국 포드자동차와 그 협력 업체들의 공장이 자리했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메카인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를 본떠 ‘호주의 디트로이트’로도 불렸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급속한 세계화로 자동차 관련 공장들이 속속 폐쇄되면서 도시 전체가 위기를 맞았다.
시 당국은 자동차 대신 방산, 신소재, 보건의료, 에너지 관련 기업 유치에 공을 들였다. 불과 11년 전인 2014년만 해도 로이터통신 등이 ‘디트로이트’와 ‘실리콘밸리’의 갈림길에 있는 도시라고 평가했지만 이제 명실상부한 첨단 도시로 거듭났다.
● 車→방산, 양모→탄소섬유로 변신
포드차 공장이 영구 폐쇄됐던 2016년 채 24만 명이 되지 않았던 질롱의 인구는 채 10년이 안 되는 기간에 6만 명 이상 늘었다. 현재 인구의 약 20%가 최근 5년 안에 유입됐다.


1840년대부터 양모를 영국에 수출했던 질롱은 각종 털과 섬유 등을 가공하는 기술도 발달했다. 이런 전통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공학 계열이 강한 지역 명문 디킨대에서는 ‘탄소 섬유’ 연구가 활발하다. 탄소 섬유는 철보다 훨씬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나 방산, 항공우주, 자동차, 건축 등에서 각광받는 첨단 소재다. 양모와 신섬유 산업에 연관성이 많다는 데서 착안해 관련 시설들이 이 학교에 자리 잡은 것이다.
지역 기업의 이익단체 질롱제조협회(GMC)의 제니퍼 코넬리 최고경영자(CEO)는 “질롱의 기업인들은 산업 쇠퇴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당국, 업계, 학계가 모두 합심해 미래 산업으로의 전환에 나섰던 것이 오늘날의 질롱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인구의 약 10%인 3만여 명이 보건의료 분야에 종사한다. 당국이 적극적으로 디킨대와 협력해 민간 및 공공병원을 적극 육성한 결과다. 주민들은 굳이 멜버른까지 가지 않아도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한다. 내년 중 문을 열 여성·어린이 전문 병원에 대한 기대도 크다.
호주 국립경제산업연구소(NIER)에 따르면 2018~2023년 5년간 질롱의 지역총생산(GRP)은 연평균 5.4% 성장해 호주 1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일자리(5.1%), 인구(2.2%) 증가율 또한 각각 전국 1,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질롱 도심에 위치한 열교환기 스타트업 ‘콘플럭스’의 마이클 풀러 창업자는 “직원 55명 중 약 40%가 다른 지역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이 회사는 3D 프린팅 적층제조 특허 기술을 사용해 기계의 열을 식혀 주는 고성능 열교환기를 만는다. 글로벌 기업인 에어버스와 허니웰 등에 납품하고 있다. 그는 연고가 전혀 없는 질롱에서 창업한 이유를 묻자 “기술 인력이 많고, 이들의 거주 만족도 또한 높다”며 “기업하기 좋은 인프라와 문화를 갖췄다”고 강조했다.
● 멜버른 집값의 70%에 젊은 층 몰려


지난해 멜버른을 떠나 질롱에 정착한 30대 주민 샤비 씨는 “멜버른에 비해 생활 수준이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주거비 등이 훨씬 덜 들고 환경도 자연친화적”이라며 “온 가족이 질롱으로 온 것에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시는 도시 재생 사업에 6억6700만 호주달러(약 6200억 원)를 투입했다. 또 신규 주택 단지 개발에 착수해 13만9800가구를 추가 공급할 예정이다. 스트레치 콘텔즈 질롱 시장은 “30, 40대들이 자녀와 함께 둥지를 틀기 좋은 곳으로 인정받은 게 도시 부활의 주요 요인”이라며 “현 추세대로라면 2041년경에는 인구가 40만 명을 넘어 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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