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서 기밀 빼돌린 中스파이 2명, ‘무죄’로 풀려난 이유가…中이 ‘적’이 아니라서?
노동당 정부, 중국이 ‘적’이냐는 검찰 문의에 확인 거부
야당 보수당 “중국 눈치 봤다” 비난…그러나 보수당 정부도 중국을 ‘도전’ ‘경쟁국’으로만 정의
중국을 겨냥했던 영국 검찰의 스파이 재판이 돌연 무산됐다. 영국 검찰은 작년 4월 중국에 체류하는 영국인 교사와 그의 친구인 의회 보좌관 등 2명이 중국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며 민감한 정보를 베이징 당국에 넘겼다고, ‘공식기밀법(Official Secrets Act)’에 따라 기소했다. 검찰 측은 “확실한 사건(slam dunk case)”라고 공언했다. 혐의를 입증할 두 사람 간 방대한 통신 기록도 있었다.
그런데 10월 6일 첫 공판을 앞두고, 영국 검찰은 갑자기 공소를 취하했다. 두 사람의 스파이 활동내역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검찰이 이들을 기소한 근거인 ‘공식기밀법’ 상의 ‘적(an enemy)’에 중국이 해당되느냐는 문의에, 현 노동당 정부가 끝내 ‘적’이라는 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11년에 제정된 ‘공식기밀법’에 따르면, 스파이 행위로 간주되려면 “국가의 안전ㆍ이익에 해로운 목적이 있고” “그 정보가 적(enemy)에게 직ㆍ간접적으로 유용하다고 판단돼야” 한다. 지난 100여 년 간 영국 법원은 몇 건의 판례에서 ‘적’을 “전쟁 또는 적대 행위 중인 나라(나라의 대리인)”로 규정했다.
따라서 영국 검찰은 두 사람의 재판을 앞두고, 계속 노동당 정부에 “중국이 적인지” 문의했다. 그런데 끝내 “적”이라는 답을 듣지 못하자, 결국 “5%가 부족해서” 공소를 취하한 것이다. 두 사람은 무죄로 풀려났다.
영국 국내 정보기관인 MI5의 수장인 켄 맥컬럼은 16일 “중국의 스파이 활동이 매일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있고, 지난 주에도 적발했다”며 “스파이 사건의 공소 취하는 매우 실망스럽다”라고 말했다.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2024년 4월 보수당 의원의 보좌관이자 의회 연구원이었던 크리스토퍼 캐시(30)는 중국에 거주하는 컨설턴트 친구인 크리스토퍼 베리를 통해 2021년 12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중국 측에 “영국의 안전과 이익을 해치는 정보”를 수집ㆍ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다. 두 사람은 그 전 해인 2023년 3월에 체포됐다.
캐시는 대(對)중국 강경파 보수당 의원들의 연구 모임인 ‘차이나 리서치 그룹(China Research Group)’의 간사를 맡아, 영국의 대중(對中) 전략과 비(非)공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베리는 영국 검찰이 중국 측 정보요원으로 파악한 ‘알렉스’를 통해 ‘민감한 정보’를 요청 받으면, 보좌관 캐시에게 의뢰해 이를 ‘알렉스’에게 전달했다. 이렇게 34건 이상의 정보를 중국 측에 넘겼다는 것이다.

영국 총리실 직속의 매슈 콜린스 국가안보 부(副)보좌관이 작성한 법정 ‘증언’ 문서에 따르면, 2022년 5월 베리는 ‘알렉스’에게 의회를 방문한 타이완 국방부 관리들의 명단과 이들이 의원들과 만나 타이완의 방어 전략 등에 대해 나눈 비밀 회의 내용을 전달했다.
또 ‘알렉스’는 중국 신장에서 강제노동으로 생산되는 제품에 대한 영ㆍ미의 규제 입장을 물었고, 캐시는 관련 정보를 베리에게 보냈다. ‘알렉스’는 또 중국 통신기업 화웨이에 대한 영국 정부의 입장을 최우선 순위로 보고하라는 지시도 베리에게 내렸다.
2022년 7월, 베리는 중국 항저우에서 당시 당서기를 만났다. 콜린스 부보좌관은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문서에서 그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했다고 밝혔다. 이 조건에 맞는 인물은 현재 시진핑의 최측근인 차이치(蔡奇)다.

의회 연구원 베리는 캐시가 중국 공산당의 고위층과 만났다는 말을 듣고 “지금 너, 스파이 행위에 들어선 거야”라고 답했다. 콜린스 부보좌관은 “중국의 최고위 인사가 베리를 만난 것은 그가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인물이라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썼다.
영국 검찰이 공소를 취하하자, 중국 외교부는 “이번 사건은 중국 간첩 혐의가 완전히 조작됐다는 걸 입증했다”며 환영했다. 그러나 풀려난 두 사람은 “법정에서 결백을 증명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고 반발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전달한 정보는 언론 보도 내용이거나 추측에 기반한 것이었다고 항변했다.
◇야당, 정부가 중국 투자에 눈 멀어 “물타기”
야당인 보수당 측은 키어 스티머 노동당 총리가 중국 투자를 유치하려고 “사건을 축소시켰다”고 비난한다. 스타머 총리는 작년 11월, 6년 만에 처음으로 시진핑 주석과 면담한 영국 총리였다. 이전까지 중국의 홍콩 민주화 운동 탄압과 사이버 공격 등으로, 양국 사이는 악화됐었다.
콜린스의 ‘증언’ 문서는 “중국의 첩보 활동은 영국의 경제적 번영과 안정성, 민주 제도의 통합성을 위협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어 “영국 정부는 이해, 협력, 안정 강화를 위한 중국과의 건설적인 관계를 추구한다”고 했다. 결국 이 후속 문구로 인해, 영국 검찰은 법적으로 “중국이 영국의 적(敵)”임을 입증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캐시와 베리 두 사람이 스파이 행위로 체포ㆍ기소됐을 때 정권을 잡았던 보수당 정부도 중국을 ‘적’이나 ‘국가 안보 위협’으로 선언한 적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보수당 의회와 정부 문서들은 기껏해야 “체제적 경쟁자” “시대를 구분 짓는(epoch-defining) 체제적 도전”이라고만 했다. 그러면서 “협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새 국가안보법은 ‘외국 세력’으로 확대
영국 언론은 이번 사건이 광범위한 스파이 행위를 하는 중국을 대하는 대부분의 나라가 겪는 곤혹스러움, 즉 중국을 경쟁적 파트너로 볼지, 적으로 볼지에 대한 고민을 반영한다고 평했다.
그러나 ‘적’으로 규정하지 못해 스파이 재판이 무너지는 일은 영국에선 더는 발생하지 않을 예정이다. ‘공식기밀법’이 2023년 제정된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새 법은 스파이 활동을 모든 ‘외국 세력(foreign power)’과 관련된 행위로 확대했다.또 MI5는 최근 중국을 ‘국가적 위협(state threats)’ 항목에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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