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 14억 당첨됐는데, 돈은 못 받는 복권

주말마다 복권을 찢거나 구기는 분 많으실 겁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종이 한 장에 셀 수 없는 소망을 담았건만, 운명은 항상 다른 번호를 선택합니다. 누군가의 ‘인생 역전’ 꿈을 안고 세상 밖으로 나온 종이 한 장. 일주일 동안 ‘빳빳한 희망’으로 있다가, 결국은 찢기고 구겨져 휴지통에 버려지기 일쑤입니다.
살면서 벼락 맞을 확률을 과학적으로 정밀히 계산할 수는 없겠죠. 그래도 체감상 ‘벼락’보다 ‘돈벼락’ 맞을 확률이 훨씬 희박한 것 같습니다.
부산 기장군에 사는 중년 남성 A 씨가 이 말도 안 되는 확률을 뚫었습니다. 무려 1168만8000분의 1의 가능성. 거북의 털, 토끼의 뿔을 찾는 게 더 쉬워 보이기까지 하는데요. A 씨는 지난달 해외 복권 구매 대행업체를 통해 미국 ‘파워볼’을 샀습니다. 그러고는 정말 놀랍게도 2등에 당첨됐죠. 당첨금은 무려 1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4억 원. 비록 1등은 아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얼마나 꿈같은 일입니까.
A 씨는 구매 대행업체에 당첨금 수령을 요청했습니다. 업체 측은 A 씨의 복권이 2등에 당첨됐다고 확인해줬죠. 또 보름 안에 당첨금을 주겠다며, 다시 전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A 씨가 맞은 것은 ‘돈벼락’이 아니라 ‘날벼락’이었습니다.
보름이 지나도 구매 대행업체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새 업체 측은 A 씨가 회원 가입했던 계정도 삭제해버렸죠. A 씨는 복권에 당첨되고도 당첨금을 만져볼 수 없게 됐습니다. 우선 당첨금을 받으려면 실물 복권을 들고 미국 현지로 가야 하지만, 대행업체는 스캔본만 전달해줄 뿐 실물을 주지 않습니다. A 씨 손에 그 중요한 ‘종이 한 장’이 없는 겁니다. 또 우리나라에서 대행업체 등을 거쳐 해외 복권을 구매하는 건 명백한 불법입니다.
그저 희망에 투자했던 A 씨의 꿈이 산산조각 날 판입니다. 거의 손에 잡았던 일확천금이 구경도 못한 채 사라진 셈이죠. 결국 A 씨는 최근 기장경찰서에 구매 대행업체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해외 복권 구매는 현지에서 직접 사지 않은 이상 불법입니다. 만약 대행업체를 통해 구매한 해외 복권이 고액에 당첨됐다 해도, 실물을 가진 업체 측이 이를 순순히 내어줄 가능성이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미국 등 해외 복권 구매 대행업체를 쉽게 찾을 수 있죠. 포털사이트나 유튜브에서 검색만 해도 수두룩하게 뜹니다. 저마다 ‘간편’ ‘안전’ ‘합법’ ‘즉시 지급’ 등 문구로 영업합니다. 이뿐인가요. 길을 가다가 ‘미국 복권’ ‘유럽 로또’라고 적힌 키오스크를 보신 분도 있을 겁니다. 키오스크로도 해외 복권을 살 수 있습니다.
명백히 불법인데 이런 구매 대행이 성행하는 이유가 뭘까요. 간단합니다. 우리나라 로또보다 확률은 훨씬 낮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당첨금이 많기 때문입니다. 미국 복권 ‘파워볼’이나 ‘메가밀리언’의 1등 당첨금은 종종 조 단위를 넘죠. 말 그대로 ‘인생 역전’에 목을 매는 서민이 그만큼 많은 겁니다.
지난 2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해외 복권 구매 대행이 사실상 단속 없이 방치되는 것을 두고 쓴소리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국민의힘 정연욱(부산 수영)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유튜브와 SNS를 중심으로 ‘미국 로또 구매 대행’이라는 불법 광고가 확산하는데도 정부가 아무 조처 없이 방치하고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정 의원은 “형법 제248조는 해외 복권의 판매·알선·광고를 모두 금지하는데도 일부 온라인 플랫폼에서 ‘합법 투자’ ‘공식 인증 대행’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해외 복권 구매, 당첨금 수령 대행을 홍보한다”며 “정부가 허용한 복권은 국내 로또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방송통신위원회는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는 ‘주무 부처가 아니다’며 관여하지 않는다”며 “국민 피해가 뻔히 발생하는데도 방치한다면 이는 단순 무관심이 아니라 방조”라고 꼬집었습니다.
법은 금지하는데, 단속이나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 급기야 이번 A 씨 사례와 같은 피해도 발생했죠. 이에 정 의원은 불법 광고 전면 차단, 대행업체 실태 조사와 수사 의뢰, 국민을 대상으로 한 홍보·경고 캠페인 추진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등에 촉구했습니다.
줬다가 뺏는 것은 안 주는 것보다 나쁩니다. 줘야 할 것을 주지 않은 것 역시 몹쓸 짓입니다. 주겠다는 거짓말로 세금이나 수수료 등을 뜯어가는 것도 사기꾼 행태입니다. 더는 종이 한 장에 수많은 희망을 담은 서민이 좌절하거나 피해 보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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